[오이디푸스]
좌표에 없는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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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
이 극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들은 과장된 몸짓을 한다.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을 관객에게 드러내 보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다리를 전다. 극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오이디푸스를 만나러 온 노인은 오이디푸스를 애타게 찾는 소리를 지르며 무대 위로 오른다. 어린이는 테이레시아스와 오이디푸스의 대화를 들으며 때에 따라 각각의 발화자의 태도를 대변하는 몸짓을 하기도, 청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몸짓을 하기도 한다. 어른인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물들은 각각 독수리, 염소, 말, 개의 모습을 재현하는 소리를 내며, 금강석은 우리가 듣지 못하는 목소리를 우리가 어색하게 느낄 수 있게끔 말을 마디마다 끊어서 발화한다.
오이디푸스는 노인과 어린이와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 극의 초반에서 오이디푸스와 크레온이 만났을 때도 그들은 함께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 같은 몸짓을 하며, 따라서 그들은 마치 어른이 되어 자신의 공간을 구획하기 이전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왕비의 남편과 왕비의 오빠는 그 나라의 어른으로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그 모든 존재들과 달리, 이오카스테는 현실의 몸짓을 한다. 너무도 잘 알려진 신화이기에, 우리는 이오카스테가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동시에 어머니임을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라는 '주인공'의 지위를 근거로 할 때, 이오카스테는 가장 비현실적인 존재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오카스테는 진실을 아직 알고 있기 이전에도, 아내로서의 사랑과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뒤섞인 모습을 띤 채 오이디푸스를 대한다.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에게 그가 예전에 아이를 낳았을 때 그를 어떻게 하였는지 물을 때,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이야기한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가 존댓말을 할 때 팔짱을 끼며 장난스럽게 왜 그렇게 하냐는 태도를 취하고, 반말을 할 때 다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오이디푸스를 무릎에 눕히거나,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하는 행동처럼 빗으로 머리를 빗다가 진실을 알아차려 가면서 웃음과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한편
무엇이 진실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한 등장인물, 혹은 하나의 등장하는 존재가 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테이레시아스가 말하지 않으려 하던 그것이 진실인가? 사신이 이오카스테에게 가져온 것은 진실인가? 오이디푸스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진실인가? 그가 다른 것을 알아내고 싶은 것은 아닌가? 아니면 신탁을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오카스테가 말하는 것처럼 신탁이 반쪽짜리 진실이라면, 진실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 자체를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는다. 그것을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떤 이들은 비밀이 비밀인지 모르면서도 그것을 알아내려고 한다. 다른 어떤 이들은 비밀을 모르는 사이에 말하고, 어떤 이들은 비밀이 비밀인지 모르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비밀은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잃어버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고 하기 위해서, 그 진실에 대해 완전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비밀을 밝히고자 한다면 그 진실은 영원히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이 애초부터 없던 그것이라고 할지라도, 없어지거나 없는 것으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진실이 없는 그 상태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고통스러운 것을 알고 나서도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는 이 연극이 아니더라도 죽지 않되 자신에게 눈을 찌르는 형벌을 내림으로써 극복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끌어안는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미 죽은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를 보며, 그가 극복으로서의 포기를 택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을 찌르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보면서, 그러면서 못 본 체하지 않는 것이 극복하지 않는 태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이디푸스가 죽지 않지만, 죽지 않기에 그가 해야 할 비극 속의 영웅으로서의 태도를 다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추방해달라고 하며 몸을 숨기는 것은 성공한 영웅의 태도가 아니다. 그가 비겁하기 때문이 아니라, 비밀과 진실이 복잡하게 얽힌 이 현실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웅이라는 존재가
성공할 수 있을까?
즉, 오이디푸스는 실패한 영웅이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존재가 성공할 수 있을까? 다시 이 극에 등장하는 다른 존재들을 생각해 본다. 어린이는 테이레시아스와 말하지 못하는 목동의 모든 것을 듣고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 동물들은 모든 것을 보고 기억하여 몸짓을 하며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고, 그것만으로도 잠재력이 있는 매체(medium)가 된다. 매체가 된다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체들이 담거나 옮기는 것들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판단 대상이 된다. 어린이와 동물들은 어른이 되지 않고, 인간이 되지 않는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침대 위로 기거나 뛰어서 올라간 동물들은 침대를 일상의 공간이 아니게 만든다. 금강석으로 남아 침대 아래에서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다가도, 캄캄한 그 공간에서 침대 위로, 무대 위로 올라온다. 모든 것의 아래에서 동물들이 움직인다. 진실을 폭력적으로 들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이오카스테는 어린이와 동물들과 유사하다. 물론 그들의 결말이 다르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오카스테는 자신에게 다가온 많은 다른 국면의 진실들에서 주변의 위치에 있고 싶었으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더 이상 주변에 있지 못하도록 특정한 지점으로 몰아간다고 느꼈다. 그것이 불가피하다고 느꼈기에 모순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에, 생존의 차원에서 죽음에 다다른 것이다. 이오카스테는 혼란이라는 주변에 있다.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라고 불린다. 하지만 사이의 존재라는 것은 완전함의 정도라는 기준에 따라 설정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간상에서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웅은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을 놓칠 수 있고, 자신이 주변의 이들과 닮았다는 사실을, 혹은 같다는 사실을 잊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신과 인간 중 어느 곳에도 다다르지 못한 채, 죽지도 살지도 못한 존재가 된다.
-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트로폴리스 Ⅲ 오이디푸스
- 일자 26. 9. 24 - 10. 18
- 장소 명동예술극장
- 작 소포클레스, 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 강량원 번역 송전 각색 정진새 주최 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