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극단 종이로만든배 <내 아이에게>

세월호 재현의 어려움과 코로나 시대의 애도

하은빈
178호 2020.04.16
[2020 세월호:극장들] 기획의 첫 연극 <내 아이에게>는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인해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된 공연은 아쉬움을 남겼다.
[2020 세월호:극장들] 기획의 첫 연극 <내 아이에게>는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인해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된 공연은 아쉬움을 남겼다. 배우들의 얼굴은 조명에 반사되어 이목구비를 볼 수 없었고 연주되는 음악과 대사들이 겹칠 때면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 공연이 세월호 재현이 수반하는 필연적인 어려움을 비껴가고 있다고도 느꼈다. 재현 자체가 불완전하게 송출되면서 세월호가 갖는 재현불가능성의 지점 또한 불분명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 아이에게>가 드러낸 세월호 재현과 그것이 남긴 아쉬움에 관해 적어보고자 한다. 이 연극이 강하게 호소하듯 세월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애도되고 추모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곧 세월호를 어떻게 구상화하고 시각화할지에 대한 논의로, 즉 재현에 관한 질문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에게>가 그린 세월호는 어떤 난점들과 함께 랜선을 타고 도착했다.
극은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흘러간다. 한 축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1인칭 관점에서 개인이 겪은 세월호 참사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풀어가는 것이며, 다른 한 축은 그러한 개인의 아픔이 자기 자신의 비극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 차원으로까지 넓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극은 2014년 4월 16일부터 시작된 유가족의 시간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TV 속보를 통해 소식을 처음 접하던 순간, 아이와 나눈 짧은 전화통화, 거친 바다의 생경한 풍경, 진도에서 보낸 기약 없고 불가해한 기다림의 시간들이 차례차례 소환된다. 교차하고 몰아치는 감정의 밀도는 높지만, 어머니 역의 배우는 쉬이 휩쓸리지 않고 침착한 독백을 통해 온몸으로 맞이했던 재난을 증언한다.
이어 연극은 세월호가 개개의 고립된 고통을 연결하며 다른 사회적, 역사적 사건들과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세월호 참사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개인의 고통은 또 다른 고통들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마르틴 니묄러의 저명한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인용되고, 4.3사건, 5.18 민주화운동, 대구 지하철 사고 등의 참사 유가족 목소리가 세월호와 공명한다. 연극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유가족의 깊은 슬픔이 점차 "진실에 다가서는 숭고한 의지”로 승화되어감을 보인다.

연극 <내 아이에게>의 눈에 띄는 특징은, 전하고자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매우 직설적으로 발화한다는 것이다. 극이 후반부에 이를수록,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올바로 규명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호소가 거듭된다. 이렇듯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내 아이에게>의 실천적 면모는, 인권연극제, 광장극장 블랙텐트, 304낭독회 등 여러 정치적 연대의 장소들에서 매년 이 연극을 상연해온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이번 공연은 현장 활동가 밴드인 ‘몹쓸밴드’와의 협연으로 그러한 성격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연극이 갖는 실천적 면모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무심코 동원하는 재현의 진부성에 있다. 연극 <내 아이에게>는 세월호의 비극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그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는데, 이는 자칫 포착하기 어려운 사태를 지나치게 선형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진실을 누락하거나 곡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가령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은 세월호를 가리키거나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노란색 종이배는 세월호의 상징적 오브제로서 프리지아 꽃다발과 함께 공연 내내 무대 전면에 놓여있고, 멀지 않은 무대 한편에는 참사의 어린 희생자들을 은유하는 빨간색 운동화가 위치한다. 철사줄에 매달려 가볍게 팔랑거리는 노란 나비들은 희생자들의 환영적 이미지가 되어 무대를 날아다니고, 배우들의 의상과 ‘몹쓸밴드’의 악기들 위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 추모에 대한 의지와는 별개로, 이러한 종류의 직설적 시각화는 이 극이 다루는 사건의 여러 결을 단순하고 편평하게 만든다는 인상을 주었고 광장과 극장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 극이 그리는 피해당사자의 면모는 자칫 어떤 종류의 ‘피해자다움’에 관한 관념을 설파하거나 고착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극의 소개글은 “세월호 유가족이 겪어낸 고통스러운 하루하루 일상”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보여준다”고 밝히고 있으나, 그럼에도 공연은 재난의 희생자들에 대한 상투적 전형으로부터 일정 정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한없이 맑고 바른 모습으로 그려지며 상실의 슬픔을 더하는 회고된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하고, 회복 불가능하게 붕괴된 삶의 폐허 가운데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삶을 지속하고 운동을 이어가는 어머니의 초월적 면모가 그러하다.
그러나 재난이 피해 당사자에게 안기는 고통은, 이러한 전형성으로 표현 가능한 함량을 넘어서는 막대한 진실로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극장은 불가해한 진실이 가지는 역설적 재현불가능성을 숙고하고, 애도에 대한 경직된 규범을 유통하거나 재난 이후의 삶이 취해야 하는 모종의 틀거리를 은연중에 생산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관음증적 소비를 낳고, 기대와 불일치하는 삶에 대한 불만과 비난으로 이어져 결국 피해당사자에 대한 이차적 소외와 억압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공연에서 진부성의 틀을 드물게 뚫고 나오는 낯선 순간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순간들은 주로 영영 달라져버린 세계의 낯선 사물과 감각들에 대한 묘사에서 느닷없이 출현했다. 다섯 시간 거리를 세 시간 반만에 달려갔던 그날의 60만 원짜리 과태료 고지서, 모르는 사이 하얗게 센 머리의 낯섦, 아이 없이 하는 서투른 염색, 웃음에서 시작해 울음으로 끝나는 희미한 옛 농담. 배우의 독백을 통해 슬며시 떠올랐던 이런 선연한 감각들은,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는 관객의 빈곤한 상상력을 찢고 어떤 의외성을 만들어냈다.

덧붙여, 연극 <내 아이에게>의 실시간 중계 형식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갈림길에 선 공연예술의 위치를 표시하는 듯했다. 현재 많은 공연들이 실시간으로 공연을 스트리밍하거나 녹화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차원의 극장 접근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극장이 갖는 고유의 현재성을, ’지금, 여기’라는 공연예술의 강력한 효과를 내려놓아야 한다면 공연예술은 과연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더군다나 부유하는 극장의 시공간이 공동체적 애도라는 과제를 만날 때에 새로이 추가되는 고민들이 있다. 극장이라는 공동체의 장 없이, 몸과 몸의 만남 없이 우리는 어떻게 서로와 연결되고, 교감하고, 닿을 수 있을까? 광장 없이 이루어지는 추모, 각각의 밀실이 만나는 애도가 가능하다면 그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2020세월호: 극장들]은 “‘극장’을 물리적 장소로 국한하지 않고, 비대면 플랫폼을 통하여 ‘극장’이라는 공간 개념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 극장들이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했으면, 무대와 객석의 외연을 새로이 넓혀 개개의 삶에 접속하고 공동체를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제공 : “2020 세월호: 극장들”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내 아이에게_2020세월호: 극장들
일자
2020.4.7.(화) ~ 4.8(일) *유튜브 채널을 통한 비대면 영상 중계
장소
성북마을극장
작/연출
하일호
조연출
김지은
기획
김은미
진행
우민정, 최수임
출연
김보경, 손인수, 정희영, 한경애, 김진희, 방선혜, 정진명, 몹쓸밴드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2020sewoltheaters/posts/130848791835948
유튜브채널
http://bitly.kr/S1DME4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