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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은 말

박혜선_연출가, 극단 사개탐사 대표
58호 2014.12.18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옳은 말을 하고, 옳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이건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욕구이다. 아니, 꼭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거짓된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당연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꿀이 없다면 벌들은 모이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옳은 말을 하고, 옳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이건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욕구이다. 아니, 꼭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거짓된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당연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꿀이 없다면 벌들은 모이지 않는다. 물론, 그 중 경험이 없는 벌들이 그 주위를 맴돌아 희생되거나 허탕을 치긴 하지만. 그렇다, 희생되거나 허탕을 치지 않기 위해 옳은 것에 더 매달리는 것이다. 인간들도 희생되거나 허탕을 치는 걸 피하기 위해 옳은 말을 하고,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이 옳은 말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말인지 참으로 분간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옳지 않은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고, 항상 옳은 말에 귀 기울이고 옳은 말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왔는데, 자라면서는 ‘선의의 거짓말’에 더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라는 대의명분으로, 또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라는 감언이설로, 또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라는 최면으로 옳지 않은 말을 듣고도 모른 체, 아니면 속는 체 한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사회 속 또 다른 진실이 되어 우리를 길들여 놓는다. 그래서 우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옳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의 기준조차 모호해진 상태 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옳은 소리도 분위기를 봐 가면서 해야지, 안 그러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겠어…” 함께 대형 기획 작품에 대한 토의를 하던 중, 한 사람이 아주 논리적이고 옳은 방향성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망 있는 대표가 갑자기 전혀 다른 것에 꽂혀선 그 의견을 무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표의 기존 명망을 따르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작품은 그것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방향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고, 옳은 의견을 낸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는 상황에 대한 그 선배의 결론이었다. 물론 그 공연의 일반 관람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왜 그 작품이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명망 있는 대표와 그 주변인들이 그것이 옳다는 최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에 그 쪽 평단은 그 공연에 대해 후한 평을 내렸다. 그래서 모두가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말 무엇이 옳았던 것인지 모두가 헛갈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옳은 말과 옳지 않은 말을 가릴 수 있는 기준조차 모호해진 현실의 상태… 참, 뭐라고 해야 할 지 막막하다. 정말 한심한 상황이지만, 그런 일들이 너무도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보니 그냥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옳은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참 웃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