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극이다] 첫 번째 이야기
나를 다시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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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참 갑갑하다. 1908년 태어났으니, 대한민국에서 100년을 넘게 ‘연극’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온1 내가, 요즘처럼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하지 못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만큼,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답답함이다. (사이) 조금 잠잠히 생각해보니, 사실 그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처한 상황이 굉장히 낯설고 당혹스러운 이유가 있다면, 아마 ‘과거의 그 암울했던 시절’이 다시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거나,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 기억이다. 1989년 이전2까지,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미리 알려줘야만 세상과 만날 수 있었던, 즉 나 스스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의 결과를 미리 알려달라는,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부조리한 일상을 견뎌야 했던 시절이 끝나던 순간의 기억이다.
그래, 해방이다! 비로소 팔순이 되어서야 나의 말과 생각과 정서가 오롯이 나를 만나는 이들의 관점으로 상상하고 증폭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나를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타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1. (학자들 간 명확한 시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지만) 한국연극史에서는 1908년 원각사의 <은세계>를 한국 현대연극(신연극)의 출발로 기록하고 있다. -필자 주
- 2. 1986년 민주화항쟁을 거친 이후 1989년 공연법 내 ‘사전검열제도가 폐지’되었다. -필자 주
그로부터 지난 30여 년 가까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 나의 태생적 본질에 근접한 모습으로 세상과 만나왔다. 물론, 나의 태생적 본질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획일화될 수 없는 생각과 관점을 펼쳐놓는 자유로움이며, 규정화될 수 없는 삶과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식견의 다양성이다. 유희와 난장으로 흥겨운 한바탕 질펀한 놀음이고, 사소한 문제로 내 탓, 네 탓 어깃장 부리며 삿대질, 주먹질해가는 객기이기도 하다.
볼 빨개진 새신랑, 새색시 한밤 이뤄지는 역사적인 초야를 달빛으로 물들게 하는 사소함부터,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나의 사회적 본능을 활용하는 이들과 함께 숨 한번 고를 수 있는 찰나의 공감을 여는 것이 바로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야 할 방식이자 본성일 뿐이다.
하여, 그리 길지 않은 30여 년의 세월이 나에게는 더 다양한 이름과 모양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시절이기에, 100년을 넘은 인생의 뒤안길에서 가장 신명 나고 즐거웠던 순간임을 자부하는 것이다.
헌데, 그런 시절이 채 3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최근 나를 활용하고 살아가게 하는 방식을 달리 말하는 유령들 탓에 마음이 버겁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 도달한 결론은 하나다. 내가 원래 누구였는가를 잊은 탓이려니. 결국 나는 나를 인식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다시 알려줘야 할 필요성과 수고로움을 상기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나를 활용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존재한다. 하지만 진정한 나의 모습은 나를 활용한 사람들보다는 잉태된 나의 요소요소를 바라보는 일명 ‘관객’이라는 이들의 시선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관객이라 함은 세계와 우주를 움직이는 질서이자 형식이다. 그런 거대한 품 안에서 움직이는 나를, 이미 100년을 넘게 살았으며, 앞으로도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영원함을 사는 나를, 100년도 살지 못하는, 하여 감히 재단할 깜냥도 없는 者들에게서 피어나는 중상모략이 더 이상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활용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아마도 그것이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이나 앞서 내가 친절하게 설명했듯, 나는 특정한 누군가의 이념이나 시선으로 규정되지 않는 독특하고 멋진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 관점이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한들, 내가 분명하게 견지해왔던 신념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즉, 무대라는 세상에서 나는 참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왔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것, 상식을 상식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것, 역사를 역사라고 말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자유로운 시선과 인식의 다름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내가 100년을 넘게, 아니 나의 선조가 수 천 년을 넘게 간직하고 지켜온 숙명이자 존재의 이유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못하므로 나는 그것을 회피할 수도 없는 입장인 즉, 나를 활용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