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고재열의 리플레이]

음식 문화권력을 위한 조선일보의 무리수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79호 2015.11.05
비판에 앞서 칭찬부터 하자. 조선일보가 광고대행사 웰콤퍼블리시스월드와이드(이하 웰콤)와 함께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를 만들겠다며 코릿(Kor+eat) 리스트를 만들었다.

비판에 앞서 칭찬부터 하자. 조선일보가 광고대행사 웰콤퍼블리시스월드와이드(이하 웰콤)와 함께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를 만들겠다며 코릿(Kor+eat) 리스트를 만들었다. 음식전문가 100명이 10곳의 음식점을 추천해 상위 50곳의 맛집 리스트를 발표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정성적 평가밖에 없었던 음식점 평가와 관련해 정량적 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음식점 평가의 객관적 지표로서 진일보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선일보와 웰콤은 코릿에 선정한 업체들과 사업을 벌였다. 양사는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제주에서 ‘2015 코릿 페스티벌’을 열었다. 일단, 자신들이 맛집을 선정한 음식점을 자신들의 사업에 동원했다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뒤늦게 합류한 다른 행사에 해를 끼쳤다.

‘2015 코릿 페스티벌’은 제주올레걷기축제를 비롯해 이 기간 동안 제주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주로 이뤄졌다. 제주올레걷기축제에는 푸드트럭을 운영했는데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축제 행사가 한참 진행 중인데 코릿 행사는 끝났다며 관객들 사이로 트럭을 가로질러 끌고 들어와 짐을 옮겼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푸드트럭 영업을 합법적으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푸드트럭을 합법적으로 영업하려면 일단 구조변경 승인이 된 트럭이어야 한다. 조리가 필요해서 가스 불을 쓰는 경우 가스안전관리필증인가가 있어야 하고 위생교육을 받은 수료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소사용 허가가 되어 있어야 영업 허가증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고 영업한 것인지 의문이다. 참고로 40여 대의 푸드트럭을 동원한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에서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푸드트럭만 참여시켰다.

그리고 상위 50곳으로 꼽힌 음식점들이 푸드트럭을 운영하게 한 것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축제 현장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것은 특혜에 가깝다. 매출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에서는 이 기회를 청년창업자들에게 주었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웰콤은 이 기회를 상위 50위 안에 드는 음식점에 주었다. 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코릿의 음식점 평가 자체에도 맹점이 많았다. 맛이 없는 집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음식문화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문제다. 한마디로 철학이 없었다. 폭발하는 미식 취향에 기대어 또 하나의 문화권력을 탐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이런 식이면 음식점 줄 세우기고 어설픈 협찬 끌어모으기밖에 안 된다. 코릿에는 대략 다음의 네 가지가 없었다.

하나, ‘음식의 현대성’이 없었다. 고전적인 의미의 맛집 혹은 세련된 집을 찾는 것은 쉽다. 하지만 ‘현대 미식’의 철학은 볼 수 없었다.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이 그랬듯이 단순히 미각과 시각적 완성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과 미술 사상을 풀어가는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처럼 ‘생각하는 미식’을 꾀하는 것이 ‘현대 미식’의 경향인데 이번 선정 과정에서는 이런 관점을 볼 수 없었다.

둘, ‘음식의 한국성’이 없었다. 한국에서 정하는 맛집이 반드시 한식집일 필요는 없지만 한국의 음식가치를 부여잡고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 재료나 조리방식이 아닌 철학 차원에서, 이를테면 ‘자기 자신을 위한 최고의 요리사는 자기 자신’이라는 한식적 가치가 부여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셋, ‘음식의 향토성’을 모욕했다. 미슐랭가이드 프랑스맛집에 파리 식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음식점 중 추천 순위 안에 있는 집은 전부 도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셰프들이 지역에 내려가서 그 지역 산물에 최적화된 레시피를 개발한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독했다. 이번에 선정된 50곳 중에는 단 한 곳만 지방의 음식점이었다.

넷, 이 정도 품을 들여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은 일종의 기준점을 잡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준점을 잡아주지 못했다. 전통을 지켜가며 기준을 지켜가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기준이 되어주는 맛이 있어야 여기서 가지를 쳐 나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준점에 대한 탐색이 안 보였다. 조선일보의 맛집 리스트에서는 우리 음식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음식점 리스트에서는 우리 음식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품어보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