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나는 연극이다] 두 번째 이야기

제발 좀 똑똑하게 하시라

최윤우_연극평론가
80호 2015.11.19
요즘 잘 지내시나? 이런 간단한 인사 하나를 건네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왜?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잘 지내시나? 이런 간단한 인사 하나를 건네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왜?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맞지 않으니 다시 생각해봅시다, 논리를 갖고 설명하면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던 의도를 따지고, 다시 바꿔 역할과 명분으로 물어보면, 그 직을 벗었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어 인간적인 예와 도를 갖고 우리 모두 힘든 세상에 직면했으니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합시다, 손 내밀면 (이해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니… 그야말로 환장지경이다.

원래 비극이라는 것이 동시성을 갖기 때문인가. 요즘처럼 한꺼번에 숨 쉴 틈 없이 몰아쳐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들이 한 순간의 폭풍으로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라니. 아무리 냉정하게 돌아봐도 이해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은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알 수 없는 ‘불안장애’를 남기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적어도 나에게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되짚어보는 것은 당연지사요,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고 있는지, 과연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다. 하여 필자는 최근 목도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다음과 같은 주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세밀함이라도 갖고 움직여라.

기득권을 가진 세상의 어떤 곳에서도 내 편을 만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사회는 그 정도의 너의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저돌적이고 부끄럽게 하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검열'이라는 말을 이렇듯 공공연하게 회자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치졸함이야,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경주마의 눈가리개라고 치더라도,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행정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는 현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이다. 그것도 행정의 편리성과 효율성 때문이라니.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감각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발, 두 개 갖고 싶으면 하나는 내려 놓을 수 있는 세밀함이라도 갖고 움직여라.


둘째. 청년들의 ‘파법씨어터’에 답할 수 있는 역량 정도는 품어라.

일곱 살 난 필자의 딸은 ‘잭과 팡’이라는 팝업만화를 좋아한다. 종이 한 장을 넘기면 사막으로도 가고, 공룡시대로도 갔다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도 따는 10분짜리 만화. 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여서.
연극적 상상력은 그보다 넓고 풍부하고 그 지향하는 바가 더 없이 확장되는 예술이라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지 못해, 아차! 나의 (개인적인) 잘못이라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 의도를 모르고 월권을 행사한 행정가를 조사해보겠다고 말 한다면, 그렇게 이 문제가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그 ‘팝업’의 상상력을 펼치치 못한 채 ‘파법’의 현실적 목소리를 갖고 맞설수 밖에 없는 예술가들의 분노에 답하시라. 그것이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한다’는 비문을 뛰어 넘어, 그야말로 예술이 흥미로운 삶을 만들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므로.


셋째. 연극의 본질이 늘 한결 같았음을 기억하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상황은 늘 바뀌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가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끝이 없는 것과 같다. 근본이 명확하면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굉장히 사소하지만 큰 이야기다. 연극이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을지 모를 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원제도의 공모체계가 없어져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40년 동안 있었던 나의 것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는 것에 대한 항변이고, 예술상이 누구에게 주어졌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에게는 당연한 절차와 체계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있느냐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여, 제발 좀 똑똑하게 하시라. 적어도 지원기관과 창작자와 관객이 하나의 관계망으로 움직이기를 소원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예술의 지향점이라면, 그것이 예술 지원기관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라면, 단연코! 혼란의 시기를 넘어설 수 있는 똑똑한 정치가 필요한 때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