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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극이다] 세 번째 이야기

연극을 ‘말하는 힘’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최윤우_본지 편집장, 연극평론가
82호 2015.12.17
최근 며칠 사이, 사회정치 면의 헤드라인은 내년에 있을 총선과 이를 둘러싼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각각의 첨예한 주장과 대립일 것이다. 그 사이에서 누구의 혹은 어떤 경우의 선택과 판단이 옳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본질이 함몰되는, 즉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신념(?)이 수많은 형용사만 남발하고 또 다른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는...

최근 며칠 사이, 사회정치 면의 헤드라인은 내년에 있을 총선과 이를 둘러싼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각각의 첨예한 주장과 대립일 것이다. 그 사이에서 누구의 혹은 어떤 경우의 선택과 판단이 옳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본질이 함몰되는, 즉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신념(?)이 수많은 형용사만 남발하고 또 다른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심경 역시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갖는다.
즉, 안타깝게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상황이 곧 우리가 속해있는 현실이므로 입을 닫고 생각을 버리려고 한들, 벗어나서도 벗어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연극에서 흔히 회자되는 ‘거리두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하여, 적절한 숙고와 행동의 방식도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이 순간이 가장 고민스럽다. 근원이 무엇이었느냐가 보이지 않을 때, 좇아가야 할 명확한 깃발이 보이지 않을 때 말이다.

바야흐로! 연극계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벌써 시작된 연극계 총선(?)이 그렇다.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를 시작으로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서울연극협회, 2월에 있을 한국연극협회, 한국소극장협회 등 줄줄이 앞으로의 3년 동안 연극계 민단 단체를 이끌 집행부를 걸고 ‘선거’를 치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연극계는 3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선거에 돌입한다!!) 물론, 지금껏 그래 왔듯, 아마도 대다수의 연극인들조차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안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하고 아까운 지면을 빌어, 필자의 마지막 칼럼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연극을 말하는 힘’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를 직시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2015년 한국연극계는 마치,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시련>처럼 광폭하게 전개되는 거짓과 진실, 본질과 왜곡 사이에서 혼란스러웠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곳곳에 침잠돼 있다.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 어떤 공간보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연극동네에서 개개인의 목소리가 흩어 지지 않고 하나로 모인 것도 이례적이었던 지난 사건들은 분명 올해의 연극계를 수식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연극(예술)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항변, 그것의 본질은 다음 세대의 지향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연극계 총선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새로운 3년을 준비하겠다는 출마자들의 변에는 지금 연극계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담겨있다. 누군가는 상생과 협력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 시대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말한다. 또한 반목과 대결을 끊고, 편향된 입장을 버리겠노라 선언하며 세를 모으기도 하고, 연극인들의 복지와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수많은 공약들 사이에는 실현성이 엿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다짐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다보면, 뭔지 모를 헛헛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지금. 우리 시대에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마주하고 있는 것보다, 핍진해질 만큼 핍진해진 시간들을 겪으며 말하고자 했던 것보다, 연극이 어떻게 그 본성을 획득하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담론보다는 연극이라는 단어를 업고 그 주변을 수놓는 주장들이 가득하다는 인상 때문이다.

연극을 말하는, 말할 수 있는 힘은 뭘까. 무대에서 공연을 통해 발현되는 것, 혹은 무대 밖에서 격론을 벌이는 어떤 사안에 대한 고집스러움, 술자리에서 통음하며 힘들게 쏟아내는 연습의 과정,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복잡, 미묘해진 감정들…. 그 모든 것에는 ‘연극하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여, 지금 연극계를 위해 일하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내어놓는 말들이 힘을 가지려면, 연극을 이야기 하기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인식과 그것이 다시 자연스럽게 연극계 안에서부터 흘러나오게 할 수 있는 연극성의 회복을 말하는 순간부터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단연코 연극은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연극을 말하는 힘은 연극 그 자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그것이 모든 방법과 지향보다 우선될 때, 그때 비로소 앞으로 시간을 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열리지 않겠는가.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