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님이 발견한 우주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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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철도와 기차를 사랑하는, 모 연출가의 중학생 아들은 멀리서 지나가는 기차만 보고 목적지와 차편 명을 읊는다고 한다.
사례2. 음악을 사랑하는 모 작가는 한때 부품 하나 나무 하나 공들여 모으고 깎아 직접 만든 수제 앰프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칠 줄도 모르는 고가의 기타를 샀다고 한다.
사례3. 한때 콜라에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였던 모 연출1)은 콜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렌지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결국 국내 시판되는 모든 오렌지주스를 맛만 보고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주위에 한둘쯤은 있을법한 이러한 사례는 소소한 놀라움과 약간의 걱정, 대상에 따라서는 동경 혹은 비웃음을 동반하는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더욱 기발한 대상, 상상을 초월하는 사례를 접하는 게 일상의 한 부분이 될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 공중파 채널에서는 대놓고 이들을 검증(!) 하는 프로그램까지 나왔으니, 이를 두고 “능력자”라고 쓰고 “오타쿠 (a.k.a.오덕후;덕후)”라 읽는다.
MBC 프로그램 <능력자들>의 스크린샷(출처: imbc.com)
의미심장하게도, 이 프로그램은 예능국이 아닌 시사교양국에서 만든단다.
덕후의 아이콘이랄 수 있는 밀덕2)부터 시작해서 버스덕후, 성우덕후, 편의점덕후, 거의 부스러기만한 조각만 “보고” 무슨 빵인지 맞추는 빵덕후 등등 온갖 기상천외한 대상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만만찮게 집요한 검증이 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인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출연한 덕후자들의 하나같이 “덕후스러운” 표정과 말투였다. 그 덕후스러운 표정과 말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쓰잘데기없이 직업정신을 발휘해 분석한 필자의 결론은, 그것이 자신이 발견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나눌 수 있는 상대(상황)을 만났을 때의 가벼운 흥분상태라는 것이었다.
오타쿠(おたく)는 일본어의 2인칭 대명사로 동호지 혹은 동호 모임에서 서로에 대한 존칭으로 의견을 묻고 나누는데서 시작해 일반명사처럼 굳어진 사례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쓰이는 우리말을 굳이 찾아보자면, 2인칭으로 쓰이는 ’님’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님 생각은 어떠셈?”, “오타쿠 생각은 어떠셈?” 하다 보니 이렇게 서로를 부르는 이들을 오타쿠라고 부르게 되었다는가 보다. 그러고 보면 ‘오타쿠’라는 개념에는 무언가를 통해 우주를 발견한 누군가가 자신이 발견한 경이로운 세계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현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닐까.
오타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취향’이다. ‘내’경험을 통해 주체적으로 형성한 취향 안에 깊이 파고들어 또 다른 우주를 찾아내고 이를 서로 나누며 하나의 ‘계’를 형성하는 것이 오타쿠 현상이라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오타쿠 문화가 발달한 문화권일수록 취향시장이 공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를 예술시장에 적용시켜보면, 이러한 취향시장은 창작물의 다양성을 지켜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다른 것과 다른 고유한 것을 만들어내면 그것을 찾아내는 수요자층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타쿠’라는 개념이 생겨난 일본에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고유한 음악장르와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 좋은 예가 되겠다.3)
- 1) 무려 25년 전 필자의 이야기이나, 당시엔 편의점에서 파는 오렌지쥬스는 5종 이내밖에 안됐다.
- 2) 밀리터리 덕후
- 3) 2012년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음악소프트(CD+디지털음원) 매출은 약 43억 달러로, 41억 달러인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음반(CD) 매출이 80%로 디지털 음원을 크게 앞선다. CD라니, 동네 음반가게라니!
덕중의 덕은 역시 양덕(출처: nytimes.com)
시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산업의 관점으로 재화를 분류하는데 쓰이는 ‘경험재’라는 개념이 있다. 가격이나 기능 등을 통해 손쉽게 그 상품의 특성을 예측하고 소비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실용재’나, 어떤 유행이나 계급에 포함되는 상징적 효과를 얻기 위해 소비여부를 결정하는 ‘상징재’와는 달리, 경험재는 소비를 한 후에야 그 특성을 알 수 있으며,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이 소비의 가치를 매길 수 있다. 그 경험재를 다루는 대표적인 시장이 바로 공연시장이다.
‘스트레스 해소용’, ‘데이트용’등 실용적 요소나 ‘구라파 르네상스극장 박스석에서 오페라글라스로 시력검사하는 우아한 귀족 간지나는’ 상징재의 요소를 논외로 한다면, 경험재에 해당하는 공연은 그래서 광고나 홍보를 통해 그 실체를 전달하거나 예측하기가 곤란하다. 기껏해야 ‘재미나다’, ‘새롭다’, ‘상 많이 받았다’ 등의 홍보로는 내 경험을 예측할 수 없으며, 기껏해야 줄거리 소개로는 극장에서 내가 만날 순간들을 요약할 수 없다. 많은 관객들이 이러한 예측과 실체의 간극으로 인해 놀라운 선물을 받기도, 실망해서 다시는 극장을 찾지 않기도 한다. 아, 그렇다면 정녕 공연은 복불복인가.
이 때 믿을 수 있는 거라곤 오로지 내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 내 취향, 내 관점, 그것을 나누는 “님 생각은 어떠셈?”, 즉 덕성이다. 섬세한 공연일수록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덕성을 요구한다. 어떤 홍보문구, 기사, 평론도 우리의 경험과 취향을 대변하지 못하며, 우리가 세계를 발견하고 그렇게 발견한 우주를 다른 이들과 나눌 때 비로소 “경험재”로서의 가치가 우리를 가벼운 흥분상태로 만든다.
아 관객질하기 어렵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래서 관객이 공연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님’들이 발견한 우주가 다양하고 고유한 공연들을 끊임없이 빛나게 할 것이다.
2015년 ‘인디아트홀공’에서 공연된 <월간마찰>을 지켜보는 관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