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어떤 예술, 어떤 정치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공연계에서 내심 비수기로 여기는 시즌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올림픽 월드컵 등 대형 국가대항 스포츠시즌, 다른 하나가 바로 대선 총선 등 선거시즌이다. 이 시기는 인터넷 등 각종 매체와 뉴스가 이 이슈로 도배가 되니, 정도야 다르겠지만 누구든 이 이슈에 관심을 아예 끊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하다못해 무작위로 발송되는 총선 관련 각종 여론조사 전화도 막을 길이 없다. 하긴, 각본 없는 드라마의 재미와 흥분을 각본 있는 드라마가 이길 리 없다. 창작자들도 만나면 정치 얘기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JTBC 뉴스룸 캡처(출처: JTBC.com)
언젠가 어느 존경받는 연출가의 공연을 본 일이 있다. 묵직한 역사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굵은 서사와 스펙터클로 엮어낸 작품에 흠뻑 빠져들며 공연을 보다 막바지에 달했을 때, 뭔가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 설마, 아 설마, 정말로 마무리를 그렇게 지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나다를까, 작품은 예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노골적인 감동코드로 엔딩을 맺었다. 뭔가 찜찜한 마음으로 객석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누가봐도 예측 가능하고 누가봐도 상투적인 마무리에 그 많은 관객이 움직인 것이다. #공연은 #성공적
훌륭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워낙 하나마나한 물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 따지자면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을 훌륭하지 않다고 우기긴 힘들다. “훌륭한 예술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훌륭한 예술이다”는 말하고 다르지 않다. 굳이 예를 들자면, 400년 동안 인기폭발이었기 때문에 세익스피어가 세익스피어인 것이고, 아무리 ‘내 취향은 아니야’라고 고집 부려 봐도 2500년이 지나도록 소포클레스는 여전히 사람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어차피 #정답은 #시학
그렇다면 훌륭한 정치란 무엇일까. 이것도 뭐 따지자면 여러 가지 있겠지만, 흔히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를 훌륭한 정치라고 할 것이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가 더 훌륭한 정치일까. 하긴, 대의민주주의 제도 위에서는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예 정치권력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고 보면 선거만큼 마음의 움직임이 수치상으로 명징하게 드러나는 이벤트도 드물다. ‘아 설마, 아 설마, 정말로 선거정국을 이렇게 몰고 가려는 건 아니겠지’ 어떤 정치인들은 누가 봐도 특정효과를 노골적으로 노리는 행동과 멘트를 날리지만, 여론은 거기에 움직인다. 누가 봐도 예측가능하고 상투적인 정치에도 시민들의 마음은 움직인다. 그게 온전한 지지에 기인했건 공포나 혐오에 기인했건 간에, 그 정치행위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다. #선거는 #성공적
< House of Cards(2013-) >. 1990년 영국 BBC에서 제작, 방영된 동명 미니시리즈를 미국 정치계로 배경을 옮겨 Netflix가 더 지독하게 리메이크한 정치스릴러드라마(출처: Netflix.com)
뭔가 불쾌하고 노골적인 비약이 섞이긴 했지만, 이렇듯 마음이 움직인다는 데는 생각보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1차대전에 패한 후 자존감에 스크래치 난 독일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압도적인 지지로 정권을 잡은 나치 정권 얘기는 상투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라 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과연 옳은 쪽으로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는 계속 지켜볼 만하다. 어쩌면 우리 마음이 옳은 쪽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쪽을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정의와 공공선에 있어서 나와 정반대되는 가치로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 어쩌면 중요한 개념은 ‘옳음’이 아니라, 옳다고 이순간 ‘믿고 있음’이 될 수도 있겠다.
선거에서 성공한 정치만이 훌륭한 정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함은,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훌륭한 정치는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도 한다. 많은 시민들이 마음가는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공공선의 방향에 대해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며 시민들 자신이 불편을 감내해야지만 선택할 수 있는 길일 수도 있다. 한일축구경기 하듯 어차피 만나지 않을 상대의 믿음을 부정하고 투쟁하며 승자독식 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이건 패자이건 ‘공공’에 포함되는 합의점을 도출하자는 제안일 수도 있다. 어쩌면 승자가 되는 것을 영영 포기하는 길일 수도 있다. 아, 마음 가는 대로 마음먹는 것도 어렵다.
어떤 훌륭한 예술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도 한다.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낸 후 오롯이 휴식을 취하고 감동을 얻고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극장에 간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예술도 있다. 내가 익숙하고 내 마음이 가는 세계에 대해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기를 강요하는 예술도 있다. 지옥을 피해 기껏 극장에 왔더니 바로 그 지옥불 얘기만 죽어라 하는 예술도 있다. 세상에 실망하고 막막해서 극장에 숨어서 좀 울려고 했더니, 뚝 그치고 극장 밖으로 나가라고 집요하게 다그치는 예술도 있다. 어떤 훌륭한 예술은 우리 마음을 마음가는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 이번 달도 관객질 하기 힘들다.
어떤 훌륭한 예술은 어떤 훌륭한 정치이다.
<두 개의 문(2011)>. 무리한 철거 진압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2009년 용산참사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당시 진압 책임자였던 서울경찰청장은 이번 20대 총선에서 경주시에 출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