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의 리플레이]
압제와 탄압이 이끌어낸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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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전쟁 중이다. 기독교 계열인 CBS와 노컷뉴스에서 종교집단 신천지를 이단이라 비판하고 있고 신천지는 CBS와 노컷뉴스를 사이비언론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생소한 이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뜨거운 이슈다.
CBS와 노컷뉴스가 옳은지, 신천지가 억울한지, 알지 못하지만 조지아정교에서 본 종교적 관용이 떠올랐다. 4월 마지막 주에 일주일 동안 조지아(그루지야)를 다녀왔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리는 곳이다. 압도적인 자연경관도 멋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지아인들의 종교생활이었다. 인도인들에 버금갈 정도로 그들의 생활도 영적이었다.
조지아정교의 성당은 가장 ‘조지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지아의 국체가 바로 조지아종교가 아닌가 싶었다. 코카서스산맥 아래에 있는 조지아는 페르시아(이란) 오스만투르크(터키) 제정러시아(러시아)에 둘러싸인 나라다. 중국과 일본에 숱한 외침을 받았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지아인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있는 기독교 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함께 기후조건도 좋아서 이웃 세력이 강해지면 언제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 조지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 한 것은 바로 조지아정교였다. 조지아인들은 조지아를 구성하는 세 가지로 조지아정교와 조지아어 그리고 와인을 꼽는다. 페르시아 몽골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등 당대의 강대국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성당을 둘러싼 성 위에서 맞이했다. 코카서스 산맥 깊숙이 피난을 가면서 먹을 것 대신 성당의 성물을 챙겼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압박도 이겨낸 조지아정교는 이제 마지막 외세인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있었다. 조지아정교는 교회 안에 전기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만으로 조명을 사용한다. 부족한 빛은 자연채광으로 끌어들여 해결한다. 조지아정교 성당의 촛불은 종교가 상업화 되는 것을 막는 마지막 상징이었다.
조지아정교 성당 안에 들어서면 누구나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성당 밖은 그리 종교적인 나라가 아니었지만 일단 성당 안에 들어가면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에 누구나 그 공간을 존중하게 된다. 인상적인 것은 그 공간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기단과 기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사제와 신도가 같이 서서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고 예배하고, 비신도인 관광객들은 조용히 둘러보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학습하는 등 하나의 사회가 구현되었다. 조그만 성당 안이 하나의 우주가 되었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는 종교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역설적이었다. 모든 종교는 비신도와 신도를 구분하고 신도와 사제를 공간적으로 혹은 역할적으로 구분해서 엄숙함을 구현한다. 그런데 조지아정교는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충분히 엄숙하고 경건했다. 이것이 유럽의 어떤 오래된 성당보다도 혹은 이스탄불의 어떤 화려한 모스크보다도 조지아정교 성당이 가슴에 더 깊숙이 박히는 이유였다.
종교적 관용은 성당 밖으로도 확대된다. 이렇게 어렵게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타 종교에 관대하다. 조지아인의 60% 정도가 조지아정교를 믿고 18%는 로마 가톨릭을, 12%는 유대교를, 7%는 이슬람교를, 2%는 신교를 믿는다. 최근 중국인 이주자가 많아 앞으로 불교 신자도 어느 정도 지분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관용적인 자세가 타 종교로도 전이된다는 점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는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가 함께 이용하는 모스크가 있다. 한 쪽은 시아파가, 다른 한 쪽은 수니파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에 3 곳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유대교 역시 다른 종파가 하나의 교회를 사용한다. 조지아에는 다른 종교 혹은 다른 교단에 대해 관대한 태도가 자리잡혀 있다.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조지아는 종교에 관대하니 우리도 관대하자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다는 것은 안다. 종교는 신앙의 영역이고 그것은 절대적인 영역이라 관대함이 오히려 비신앙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대함은 더 큰 위대함일 수 있다. 그런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정교는 조지아인들의 마음에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신앙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 바로 관대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