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고재열의 리플레이]

예술과 사기는 한 끗 차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93호 2016.06.09
6월 3일, 조영남 씨의 검찰 소환으로 ‘조영남 대작 사건’은 일단락 된 것 같다. 검찰 수사가 아니라 미술계 혹은 좀 더 확장해서 문화예술계에서 ‘조영남 대작 논쟁’으로 다뤄지는 게 나았겠지만, 검찰 수사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해서 불필요한 논쟁의 여지를 줄여 주었다. 검찰은 조 씨가 그림에 덧칠하지 않고 사인만 하고도 팔았다는 사실,...

6월 3일, 조영남 씨의 검찰 소환으로 ‘조영남 대작 사건’은 일단락 된 것 같다. 검찰 수사가 아니라 미술계 혹은 좀 더 확장해서 문화예술계에서 ‘조영남 대작 논쟁’으로 다뤄지는 게 나았겠지만, 검찰 수사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해서 불필요한 논쟁의 여지를 줄여 주었다. 검찰은 조 씨가 그림에 덧칠하지 않고 사인만 하고도 팔았다는 사실, 그림 값으로는 10만 원 내외를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처음 대작이 문제가 되었을 때 ‘그는 조수일 뿐이었다’ ‘미술계 관행이다’라고 변명했던 조 씨는 검찰 수사를 받고 ‘현대미술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라는 말만 남기고 침묵했다. 허무한 마무리였다. 진중권 교수와 미술평론가 반이정 씨를 중심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대미술 중 개념미술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조 씨의 작업 방식은 현대미술 특히 개념미술에서는 흔한 방식으로 작가가 직접 그리느냐 안 그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작가는 컨셉만 제공하고 제작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념미술의 사례를 들어 조 씨를 방어한 논리는 ‘우매한 대중이 현대미술의 개념도 모르면서 마녀사냥을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져 많은 반발을 샀다. 조수가 하는 작업의 범위는 주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이라는 것, 작가가 제작을 대행시켰다면 그것을 구매자들에게 알렸어야 하는데 조 씨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조 씨의 작업은 개념미술이 아니라 단순 회화 작업으로 봐야한다는 등의 반론이 제기되었다.

진 교수가 설득해야 할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조영남이었던 것 같다. 그의 변호는 한마디로 말해서 ‘꿈보다 해몽’이었다. 조영남 자신이 주장하지도 않는 바를 ‘그는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살인범에게 변호인이 ‘너는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뫼르소처럼 존재의 부조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세상의 모순에 경종을 울리고자, 우주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험에 나서는 심정으로, 일상의 매너리즘에 허우적거리는 대중에게 카나리아의 울음을 보내는 심정으로, 그렇게 방아쇠를 당긴 것이 맞잖아’라고 유도심문을 하는 셈이다.

조영남의 대작을 현대미술을 핑계로 두둔하는 것은 ‘조영남이 위대한 개념미술을 선보였는데, 화가의 그림은 화가가 그린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단순 노동으로부터 화가를 해방시키고, 화투로 표상되는 현실의 사기성에 대한 개념을 판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조영남 그림을 조영남이 그린 줄 알고 샀을 뿐, 조영남은 죄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조영남 스스로 ‘내 그림은 개념미술이다. 나는 그림을 판 것이 아니라 개념을 판 것이다’라고 주장해야 하는데 그는 어설프게 관행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조영남이 말하는 '납품미술' 혹은 '하청미술'은 다른 관행이라는 이름의 불합리가 그러하듯 미술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다른 작가도 ‘그런 것은 관행이다. 나도 그렇게 한다’라고 나서지 않았다. 또한 이것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려면 그림 구매자들도 ‘나도 그렇게 알고 구매했다. 조영남의 개념을 산 것이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 역시 나오지 않고 있다. 결국 이 관행은 미술계 혹은 미술 콜렉터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관행이 아닌 것이다.

이제 누가 조영남을 변호할 수 있을까? 그의 대작 그림을 구매한 사람에게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조영남 씨의 미술 개념을 산 위대한 콜렉터다”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화투 식으로 표현하지면 조영남의 예술은 ‘파토’가 되었고 그에 대한 변명은 ‘나가리’가 되었다. 조영남에게 남은 외통수는 ‘예술은 사기다’라는 명제에 기대보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를 받고 도망치듯 나가는 그에게 그런 담대함은 남아있을 것 같지 않다.

조 씨의 그림을 대작해주었던 송 작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조영남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의 차이를 말하면서 몇 가지 지적했던 내용이 있다. 하나는 조 씨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붓의 터치가 거칠다는 것이었다. "조씨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터치와 선긋기에서 전문 화가들처럼 한 번에 가지 못하고, 여러 번 나눠 깨작깨작 긋기 때문에 그림이 깔끔하지 못하다"라고 표현했다.

송 작가는 조 씨가 똑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리라고 주문해서 마분지를 대고 대충 그린 적도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개념미술은 좌표를 잃는다. 자기보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의 그림을 단지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그려준 그림에서 어떤 예술혼이 남아 있을까? 이것이 조수가 하던 일이고? 현대미술의 관행인가? 현대미술은 이래도 되는가? 현대미술이 참 고생이 많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