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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의 리플레이]

김영란법, 기레기, 최후의 만찬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97호 2016.08.04
기자들끼리는 그런 말을 한다. 기자정신의 반대말은 제정신이라고(혹은 맨정신이라고). 치열한 이슈 현장에 있다 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는 의미로 하는 말인데, 요즘 제정신이 아닌 기자정신을 왕왕 보게 된다. 바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기자들의 태도다.

기자들끼리는 그런 말을 한다. 기자정신의 반대말은 제정신이라고(혹은 맨정신이라고). 치열한 이슈 현장에 있다 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는 의미로 하는 말인데, 요즘 제정신이 아닌 기자정신을 왕왕 보게 된다. 바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기자들의 태도다.

한 언론에 김영란법에 한우가 한숨을 쉬고 굴비가 비명을 지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그동안 부정청탁 선물로 한우세트와 굴비세트가 주로 쓰였는데 김영란법이 발효되면 한우세트와 굴비세트를 선물할 수 없어 한우를 기르거나 굴비를 만드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즉 우리 경제가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전후로 맨정신에 쓴 것 같지 않은 이런 기사들이 즐비했다.

압권은 한국기자협회다. 7월 28일 성명을 통해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이 언론계 전반의 혼란을 초래하고 취재 활동의 제한이나 자기 검열을 야기하고, 비판 언론의 재갈 물리기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가 취재 활동을 제한하고 자기 검열을 야기하고 비판 언론의 재갈 물리기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걸 막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역시나 제정신이 아니다. 이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YTN지회는 “한국기자협회 명의로 낸 성명에 대해 YTN지회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성명을 냈다.

맨정신과 제정신 아닌 상태의 기자들이 하는 얘기를 종합하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는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굳건한 기둥이라는 것이 된다. 고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된다. 말이 되는가? OECD 국가 중에서 부패를 국가경제의 기반으로 삼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어떤 경제학자가 부패를 만연하게 하는 것이 경제를 활성화 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가?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이런 부패 경제를 줄이면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위축되지만 경제 전반에 합리화가 이뤄져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돕는다고 말한다.

김영란법은 9월 28부터 적용된다.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호들갑이다. 그때까지 골프장이나 한정식집은 예약이 거의 다 찼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기레기’들을 위한 최후의 만찬이 펼쳐지는 셈이다. 반성이나 자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탄의 목소리만 메아리친다. 세상 사람들이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든 말든, ‘나는 한우세트와 굴비세트를 받고 싶다. 나는 공짜 골프 치고 싶다. 나는 거액 부조 받고 싶다’라며 최후의 발악 중이다.

하나만 살펴보자. 김영란법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정식집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부정청탁의 온상이 되었던 한정식집들이 망하게 되었다고 아쉬워한다. 맞는 말일까? 그 음식점들이 어떤 음식을 전수한 곳이었나? 정작 음식문화 전문가들은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런 한정식집들은 음식이 중요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식 맛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권력에 취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 한정식 집에서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그 은밀한 공간에서 역사와 민족에 대한 고민을 나눴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곳에서는 주로 라이벌에 대한 적나라한 공격, 은근한 자기자랑, 그리고 자신이 베풀어줄 수 있는 특혜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간다. 역사와 민족을 고민하는 자리면 남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 오히려 공개했을 것이다. 은밀하게 만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한정식집에서 힘없고 돈 없고 존재 없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나? 힘 있고 돈 있고 존재 선명한 사람들이 자기 논리를 확장하는 곳일 뿐이다.

기자들 중에 정치인을 ‘선배’라고 부르는 기자들이 있다. 이런 기자들은 기자가 아니라 ‘정치인 후배’라고 보면 된다. 선배란 내 길을 앞서 걷는 사람이다. 정치인에게 선배라 부르는 건 그 길을 뒤따라 걷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언어에 엄격한 기자들이 유독 나이브한 게 바로 이 ‘선배’ 표현이다. 기자가 정치인에게 선배라 부르며, 살가움이 도타워 지는 곳이 바로 이런 한정식집이다.

김영란법은 이런 구태에서 벗어날 좋은 계기다. 그동안의 행태에 대해서 반성은 못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런 특혜를 누리겠다며 진상은 부리지 말자. 동업자들(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마해라, 마이 무거따 아이가~ 우리 인간은 되지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