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의 리플레이]
두 개의 정의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복각본 <백범일지>를 읽고 놀랐던 적이 있다. 초판본을 그대로 재현한 것인데 내용이 너무나 적나라해서다. 젊은 시절의 백범은 혈기방장했다. 주막에서 한국인으로 위장한 일본인을 발견하고 그를 맨주먹으로 때려 넘어뜨린 후 난도질해 죽였다. 엽기적인 것은 그 다음이다. 그는 그 일본인의 피를 마셨다. 일본이 우리의 국모(명성황후)를 살해한 것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이었던 셈이다.
백범일지에는 비슷한 사례가 많다. 이런 책을 어린이들에게 읽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범의 행위를 맥락과 떼어 놓고 행위만 봐서는 문제가 될 것들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 백범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그의 행위만 나열한다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간사하고 잔혹한 범죄자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가 그를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라 백범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의 행위를 시대적 배경을 통해서 이해해주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가 이뤄낸 성숙을 존중해서일 것이다.
속칭 메갈이라 불리는 페미니즘 그룹의 ‘미러링’이 이슈다. 이 그룹을 지지하는 티셔츠를 입었다가 불이익을 당한 성우의 일이 알려지면서 논쟁이 재점화 되었다. 이 일을 두고 세상이 두 갈래로 갈렸다. 주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그룹은 표현의 자유를 호소하며 옹호하는 입장으로, 주로 남성을 중심으로 한 그룹은 미러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비난하는 입장으로 갈렸다.
논쟁은 두 가지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한 축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페미니즘의 다양한 방법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며 화두로 삼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 축에서는 이 일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에 대해 ‘너는 메갈을 옹호하느냐? 아니냐?’라며 따져 묻는다. 그러면서 논쟁이 세력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상에는 선악의 문제로만 따질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선과 악으로 선명하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선이 병존하는 경우다. 충효의 문제가 그렇다. 충을 먼저 택하고 효를 포기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이거나 할 때 이를 선악의 문제로 따지지 않는다. 가치가 충돌할 때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선후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다.
메갈의 미러링을 비난하는 그룹은 그들의 극단적인 표현 방식을 지적한다. 성소수자들을 ‘똥꼬충’이라고 비난하고 독립운동가까지 희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을 옹호하느냐고 캐묻는다. 혐오를 혐오로 맞서는 것은 또 다른 혐오를 불러온다며, 문제제기 방식으로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런 물음에 누가 미러링을 옹호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미러링은 백범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선악의 문제로만 판단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미러링은 우리가 성평등 사회로 가는 ‘통과의례’와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미러링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없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러링은 거울이다. 원본이 사라지면 반사경도 사라진다는 논리다.
여성들이 겪는 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쩌면 아직 진짜 미러링은 겪어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같은 과 여학생들을 성적대상으로 놓고 보는 남학생들의 카톡 대화가 공포스러운 것은 언제든지 실제 상황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대 의대생들이 그랬다. 흑산도 사례처럼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달려들 수도 있다. 남성들이 여성들의 미러링에 대해서 겪는 것은 감정의 문제지 이런 공포는 아니다.
진짜 현실 미러링이 나타날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신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대 선배와 동기들을 마취시켜서 거세시키는 의대 여대생이 나온다면? 화장실 비데에 황산을 넣어 불특정 다수의 남자를 겨냥한 테러를 가한다면? 지금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일들을 남성들이 실제로 겪어본다면 어떨까?
언어의 극단이 아니라 행위의 극단으로 갔을 때는 이미 늦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페미니즘 그룹 스스로 미러링의 위험에 대해서 지적할 것이다. 전범국가 독일을 비롯해 선진국들이 혐오에 대해서 무관용원칙을 적용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비싼 수업료를 치르기 전에,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할 것이다.
성차별의 원본이 사라질 세상을 위해서 여성들도 헤아려 줄 입장이 있다. 바로 젊은 남자들의 피해의식이다. 여성 전반이 겪는 성차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만 분명 그들의 억울함은 이유가 있다. 여성과 관련해서는 어떤 기득권을 누린 적도 없고 ‘연애시장의 약자' 경험밖에 없는 자신들을 가해그룹으로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고 반발한다. 이들의 입장도 헤아려 설득해 간다면 논의의 진전이 더 빠를 수 있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보이는 풍경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미러링과 혐오의 문제는 다양한 언덕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정의가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충효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다. 메갈과 혐오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