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의 리플레이]
우연한 산파가 본 [연극in] 100호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4년 반 전, 우연한 기회에 웹진 [연극in] 의 산파역할을 함께 하게 되었다. 분만실에 들어가보니 여러 산파 중 나만 ‘연극인’이 아니었다. 문화부 기자라고는 하지만 연극을 전담하는 기자도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산부인과 의사가 아닌 외과의사가 분만실에 들어간 셈이었다. 창간에 참여한 다른 산부인과 의사들은 외부인의 시선도 필요하다며 나를 수술실에 불러들였다. 덕분에 [연극in] 100호 역사에 함께 하게 되었다.
다른 전문 매체가 그러하듯 [연극in] 창간 때도 고민했던 것은 전문성과 대중성,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외과의사로서 내가 맡았던 부분은 대중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연극계의 이슈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고 연극계 밖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한국 연극의 뜨거운 성취를 어떻게 알리느냐 하는 것이 내게 부과된 과제였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전문가 명목으로 그 고민에 함께 했다.
전문성과 관련해 [연극in] 은 연극계의 ‘동시대성'을 구현해낸 매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연극>이나 <연극평론> <공연과 이론> 등과 확실히 차별화된 역할이 있었다. 이런 매체들이 연극계가 축적한 역량의 응축을 보여주었다면 [연극in] 은 새로운 움직임의 맹아를 포착했다. 새롭게 영역을 구축하는 신진 연극인들의 자유로운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 들어서 연극을 둘러싼 매체환경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연극의 위축보다 연극 매체의 위축이 더 심했다. 그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자면 1990년대까지는 연극계에서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나 배우가 연극계 밖으로 알려지는 구조였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연극계 밖에서 화제가 된 배우나 작품이 연극으로 들어올 때 화제가 되었다. 연극은 영화 등 대중예술에 밀렸고 뮤지컬에 치이면서 공연예술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조금씩 밀려났다.
물론 이것은 연극인들 탓이 아니다. 세상은 자본이 보여주는 스펙타클에 현혹되었다. 대중의 관심을 따라, 매체 안에서도 연극이 주변부로 밀렸다. 연극을 주로 다루는 기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줄었다. ‘연극 담당 기자'라는 말은 ‘공연 담당 기자'로 대체되었고 공연에서 주로 다뤄지는 부분은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나 대형 내한 공연으로 바뀌었다. 이전 세대 연극인들은 연극에서의 호연만으로도 알려질 수 있었지만 이제 연극이 주변부로 밀린 상황에서 이런 모형이 어려워졌다.
이런 매체 환경에서 [연극in] 은 ‘우리끼리라도 알아주자’는 정서를 담아 연극계의 공론장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누군가 알아봐 줄 수 있도록 충실히 기록했다. 특히 3040세대 동년배 연극인을 주목해 이들의 새로운 시도를 차곡차곡 담아냈다.
[연극in] 초기 홈페이지 모습(좌)과 개편 후 현재 홈페이지 모습(우)
아쉬움도 남는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비와 같은 문제의식과 장사꾼과 같은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극매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는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하겠지만 이슈의 확산에 있어서는 장사꾼과 같은 현실 대응능력이 필요하다. [연극in] 의 매체 형태를 웹진으로 정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in] 이 관객들의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에서 ‘꽃점'도 도입했다. 영화의 별점은 평론가들이 신의 위치에서 작품을 절대평가 하는 것 같아 평가하는 사람이 제작자에게 ‘꽃다발을 바친다'는 의미로 꽃점을 선사하는 모형으로 만들었다. 이 꽃점과 평론가들의 단평은 관객들이 작품을 고를 때 힌트가 될 수 있었다.
이슈의 확산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성취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초기에 코너별 클릭 수까지 체크하면서 독자 친화적인 매체를 도모했지만 변화하는 SNS 트렌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지는 못했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좀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이제 막 연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관객이 다양한 연극 정보를 얻고자 할 때 든든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는 축적되지 않았나 싶다. [연극in] 을 창간할 때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이 바로 연극정보의 아카이빙이었다. 하나하나의 정보는 조금 심심하더라도 묵묵히 축적해 두어 나중에 필요한 사람이 찾아볼 때 값지게 활용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영화가 영화일 수 있는 이유는 끝없이 되새김질 될 수 있는 복제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연극in] 은 연극이 망각의 예술이 아니라 불멸의 예술이 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차곡차곡 쌓아서 나중에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로 우직하게 걸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in] 은 100회를 넘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