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지금은 맞고 그 때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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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 뜻대로 된 일은 거의 없었으며, 노오력이 그 만큼의 결과나 방향대로 나온 일은 드물었다. 우리 자신이나 사회에 결정타를 미친 순간이나 사건들은 대부분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나갔으며, 그것을 깨닫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우리는 단 한 순간의 앞날도 알 수 없다. 점쟁이마저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궁금하다. 오늘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 지, 내일은 살이 좀 빠질 지. 우리는 절실하게 궁금하다. 이번 주말 복권 번호가 무엇인지, 대통령직은 다음 달에 공석이 될 지, 앞으로 이 나라는 어떻게 흘러갈 지.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오늘 저녁 치맥을 해도 될 지, 이번 토요일에 내가 어디 서있어야 할 지, 고정금리로 갈아타야 할지 말지. 앞날을 알 수만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 명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래서_오늘도_치맥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2016)> 중 한 장면
알 수만 있었다면, 그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했을 지 그 때 정확하게 알 수만 있었다면.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커서 먹먹한 가슴을 간절하게 쥐어짜게 되는 일들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오로지 그 간절한 마음 하나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누군가라도 만나서 꼭 알려주고 싶은 간절함이다. 그 가안절함이 어딘가에 닿는다면, 뭔가 초월적인 무언가에 닿는다면 어쩌면 그게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크나큰 고통과 아픔을 겪은 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가져보았던 바로 그 마음이다. 이 소박하고 간절한 이야기에 우리가 빠져들게 되는 건 아마 그 이웃나라 시민들이 간직한 그 간절한 아픔에 해당하는 사건이 몇년 전 우리에게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더 가슴시린 이유는, 우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애도하고 소망하기보다 먼저 분노해야만 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_이번주도_광장
간절함이 선후, 인과를 바꿔놓는다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게 <너의 이름은.>이라면, 테드 창(Ted Chiang)의 SF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를 원작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영화 <컨택트>는 아예 선후와 인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초월적 상상에 이른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간절함은 어쩌면 인류보편의 경험이기에, 시간을 거슬러 원인을 변화시켜 결과를 바꾸는 <터미네이터>류의 순박한 플롯은 사실 SF에서는 이미 라스코벽화급 고전이다. 원인을 건드리는 순간 각각 건드린 결과와 건드리지 않은 결과로 두 개의 독립된 세계가 생성된다는 평행우주론이 나오면서 <터미네이터 3>의 제작진은 머리에 쥐 깨나 났을 것이다. 사실 평행우주적 관점에서 <너의 이름은.>은 뭔가 그 아름다운 간절함에 때묻힐만한 토달기가 가능한데, 스포일러도 피할 겸 넘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유사이래로 인류보편이 간직한 선형적 세계관을 선후, 인과가 공존하는 비선형적 세계관으로 치환한 <컨택트>는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평행우주론도 간단하게 뛰어넘어 우리의 역사와 삶을 반추하게 한다. #스포일러_피하려_노오력
드니 빌뇌브 감독 <컨택트(Arrival, 2016)> 중 한 장면
우리는 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자면 내 뜻대로 된 일은 거의 없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분명히 내 뜻이었던, 다른 모든 순간하고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순간이 하나씩은 있다. 중간 과정에서 방향이 자꾸 달라졌겠지만 삶은 지속되었고, 어느 시점이건 그 처음과 중간과 끝을 순서대로가 아니라 모든 순간을 한꺼번에 바라보더라도 하나의 다양하고 완결된 그림이 된다.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라는 결과론적 후회는 우리의 현재가 계속 과거로 바뀌면서 우리로 하여금 끝없는 오류의 초조한 늪에 빠지게 한다. 그 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오만은 우리를 또 틀리게 만들 것이며, 미래의 고통과 영광이 지금의 선택에 달렸다는 초조함 역시 또 틀리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아프거나 아름다운 과거, 찬란하거나 끔찍할 미래를 우리의 전체로 담담히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내 선택과 순간의 행복을 더 극진하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또 마감에 쫒겨 이 지면(화면)의 다음 원고를 쓸 즈음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 지 나는 예측할 재간도 점칠 배짱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도 그 누군가의 예측이나 뜻대로 오롯이 따라왔을리 없다. 우리의 성공은 우리의 실패의 총합이며, 우리의 실패 역시 성공의 총합이었을 것이다. 우린 초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앞날에 무엇이 펼쳐져있던 그것까지가 우리의 일부이고, 우리는 오늘을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극진히 살아내면 될 것이다.
원고를 마감한 시점 필자의 눈 앞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