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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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황사가 오면 삼겹살 구우며 봄이구나, 했는데 요사이는 겨울이건 봄이건 시도 때도 없이 미세먼지라 하늘 봐서는 봄 오는 줄 모르겠다. 큰맘 먹고 운동하러 나가려는 날, 답답해서 산책이라도 해야 겠다 하는 날, 발에 땀나도록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날엔 어김없다. 먼 하늘 볼 일 없는 도심에서는 하늘이 뿌연지 아닌지 잘 구분도 되지 않는다. 기껏 등산하고 상쾌하게 ‘야호’하고 돌아와 보니 뉴스에서 “매우 나쁨이었는데 몰랐니?”하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자외선, 오존 등등 이젠 챙겨야 할 지표도 한두 개가 아니다. 예전의 심플했던 황사가 그리운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예인들이나 쓰는 마스크가 이젠 우리에게도 일상이 됐다. #사람들_다있는데_나만없어_검정마스크
터널 안에서 야호
학교 다닐 때부터 남다르게 독립적이었고 유능했던 선배 한명이 있었다. 졸업하고 알만한 IT회사에 다니다 3년을 채우고 홀연히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더니 3년 후 허리까지 길어진 머리를 묶고 도사가 되어 나타났다. 저 양반이 사바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그 선배는 별걱정 다하시네 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글로벌 IT회사에 입사했다. 전 세계 어디건 원하는데서 일하쇼 하는 회사의 파격적인 제안에, 난 스키를 좋아하니 스위스에서 일하겠소 하고 미세먼지도 없는 그 나라로 떠난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회사가 직장인의 로망, 신의 직장, 전설의 직장,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곳, 구글이다. #구글_사내식당의_위엄.jpg
늘 궁금한 게 있었다. 연봉 뿐 아니라 복지나 자기계발을 포함, 직원의 삶의 질이 저 성층권 위에 있다는 글로벌 IT 기업들은 도대체 어떻게 단기간에 그렇게 부자가 됐는지. 4차인가 몇 차인가 하는 산업혁명 어쩌구는 아직 안와서 잘 모르겠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했고 지금도 매해 늘어나고 있다는데, 정작 우리가 하루에도 몇 시간이나 쓰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공짜 아닌가. 모두가 광고수익이라는데, 내가 언제 페이스북의 광고창을 클릭했으며 구글페이지의 어디에 광고가 있던가. 도대체 내가 뭘 어쨌길래 전 세계 온라인 광고시장의 60%가 넘는, 1년에 100조원 가까운 현금이 이 두 회사에 몰릴까. 정작 구글은 알파고로 한가롭게 바둑이나 두고 있는데. #역시_되는놈은
답은 우리의 개인정보였다. 내가 페이스북을 언제 어디서 열고 무엇을 좋아요 찍으며 무엇을 읽다말고 넘겨버리는지, 어떤 성향에 호감을 가지고 있고 어떤 글을 올리는 사람을 차단하는지. 메일을 어느 지하철역에서 열고 누구한테 오는 메일이며 내가 업무시간에 상사 몰래 웹서핑한 사이트,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뭘 넣었다 뺐다 했는지 등등 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접속한 모오든 순간들의 모오든 정보들이 바둑을 둬서 사람을 이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알고리즘을 통해 가공되어 시장에 내다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하도 자주 털려 공개정보에 가까운 주민등록 번호나 전화번호 등 내가 누군지에 대한 정보는 기껏해야 보이스피싱 업체나 사는 싸구려 정보였다. #주민등록번호_팔아요 #안사요
사랑합니다 고갱님
그 천문학적인 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성층권 위 신의 직장에서 스키 좋아하는 횽들이 바둑판에 알까기를 하며 연구하고 있는 건 결국 우리가 뭘 좋아하는 지, 무슨 이야기를 듣고싶어 하는지, 어떤 세계에 살고 싶은지 이다. 그렇게 나도 잘 모르는 걸 친절하게 연구해줌으로써 우리가 책상 앞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계속 연결되길 원하는 바로 그 세계가 만들어진다. 연결된 시간만큼, 연결되고 싶어하는 만큼 우리의 정보는 팔려나가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에서의 나는 연예인처럼 간지 나게 살고 있는 듯한, 불의를 못 참는 정의의 사도가 된듯한 만족감이 더 크다. 결국 우리가 매일 만나고 있는 건 보고 싶은 것만 보게끔 만들어놓은 이 네트워크 안에서 괴물처럼 잉태된 “가짜뉴스”이다.
가짜뉴스는 애국어르신들의 단톡방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가짜뉴스는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만든 것도, 프로댓글러 국정원이나 빅브라더 NSA가 만든 것도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논조,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글로만 채워져 있는 내 타임라인이 바로 가짜뉴스이다. 내 손으로 신중하게 모은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정보와 논평에 손쉽게 ‘좋아요’ 혹은 ‘싫어요’ 버튼을 누를 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보다는 생각이 비슷한 패거리를 찾아 함께 비아냥대고 배제할 때, 정의로운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에 나 자신은 포함되지 않고 오로지 타인만을 향할 때, 내 세계를 그렇게 만들어진 타임라인에서 찾게 될 때, 실제 세계와의 간극은 점점 벌어질 것이며 뒤이어 실제 세계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 시대는 시뮬라시옹이 아닌 사례를 찾는 것이 더 힘들다.
가끔가다 하루씩 속 시원한 볕에 아 봄이구나 하는 날 말고는 사실 봄 오는 줄 모르겠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 “제국의 역습”을 지레 걱정하다 우리 모두 숨죽여 TV생중계를 지켜보던 날 기인 겨울이 지나갔음을 속 시원하게 알았음에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자외선, 오존 등이 여전히 어지럽게 엉겨있다. 맹목적인 전체주의와 패권주의가 우리의 주적인 줄로 알건만, 여전히 다양성은 무시되고 진영논리, 혐오, 배제가 우리 타임라인에 공기처럼 떠다닌다. 더 이상 봄은 내 바람처럼 심플하게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