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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의 리플레이]

케미포비아 -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123호 2017.09.07
케미포비아, 화학제품 공포증을 뜻하는 말이다. 최근 살충제 달걀 문제,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문제가 연거푸 벌어지면서 부각되고 있다. 사실 화학 자체가 부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위험한 화학물질’ ‘유독성 화학물질’ ‘발암성 화학물질’ 등 화학은 주로 안 좋은 의미의 수식어와 잘 어울린다.

케미포비아, 화학제품 공포증을 뜻하는 말이다. 최근 살충제 달걀 문제,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문제가 연거푸 벌어지면서 부각되고 있다. 사실 화학 자체가 부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위험한 화학물질’ ‘유독성 화학물질’ ‘발암성 화학물질’ 등 화학은 주로 안 좋은 의미의 수식어와 잘 어울린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겪으며 사람들은 화학제품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것이 2006년이다. 그런데 원인이 규명되는 데 5년 이상 걸렸다. 관련 재판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최근 대형마트 책임자들이 2심에서 무더기 감형을 받아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기업이 위험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기업의 로비에 휘둘린 정부가 외국 기준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화학제품과 관련된 문제는 반복되기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 중 하나가 생리대의 ‘형광증백제’인데, 지난해 식당에서 사용하는 물수건에서도 바로 이 ‘형광증백제’의 무리한 사용이 문제가 되었다. 물수건 ‘형광증백제’는 2012년 한 물수건 위생처리업체(세탁업체)가 서울·수도권에 공급한 물수건에서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었다. 지독한 되돌이표가 아닐 수 없다.

물수건 문제는 올해 3월30일 ‘위생용품 관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겨우 정리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세제, 헹굼보조제, 위생물수건, 물티슈, 종이냅킨, 일회용 컵, 일회용 수저, 기저귀, 면봉, 화장지 등 17종이 위생용품으로 분류 관리된다. 품목별로 성분과 제조방법, 용도 등에 대해 기준과 규격이 만들어져 유해 물질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관리된다.

화학제품으로 인한 문제는 일종의 ‘효율의 비용’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된 제품과 관련해서 좀 불편하지만 원래 사용하던 방식이 있었다. 물수건 대신 손을 씻으면 되는 것이었고 생리대나 기저귀는 원래 천으로 된 것을 빨아서 사용했었다. 그런데 경제성과 효율을 따지다 보니 부작용이라는 이런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진드기를 막기 위해 닭에 살충제를 살포하는 문제도 흙목욕을 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밀집 사육 방식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역 당국이 정한 메뉴얼은 닭 우리를 다 비우고 우리에 사용 가능한 살충제를 도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품이 많이 드는 반면 효과도 크지 않다. 간접 살포 보다는 닭에 직접 하는 것이, 약한 살충제보다 강한 살충제가 효과적이다 보니 지금의 문제가 생겼다.

살충제와 관련된 케미포비아를 부추긴 것은 사실 정부였다. 정부는 두 가지 대응에 다 실패했다. 하나는 살충제에 대한 대응에서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대국민 메시지 대응에서 실패했다. 정부가 우리나라는 살충제 달걀 문제에서 안전하다고 했는데 안전하지 않았다. 정부는 안전하다고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가장 큰 혼란을 야기했던 것은 최근 친환경 양계장의 달걀에서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성분이 검출된 일이다. 밀집 사육을 하지 않고 닭을 풀어서 사육하는 친환경 양계장인데 DDT 성분이 검출되어서 의구심을 낳았다. 1873년 발명되고, 1940년 스위스의 파울 헤르만 뮐러가 살충제로서 효능이 있음을 발견해 대중 살충제로 쓰였다. 파울 헤르만 뮐러는 이 공로로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DDT는 토양에 오래 잔류해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DDT의 이런 속성과 DDT에 처음 문제제기가 된 연구가 ‘닭의 산란율을 낮춘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정부가 빨리 알렸다면 이런 혼란이 적었을 것이다. 문제의 양계장은 DDT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토양에 잔류된 DDT가 흙을 쪼는 과정에서 흡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 DDT의 역사가 케미포비아의 역사다. 우리나라에도 6·25 전쟁 때 미군을 통해 이 DDT가 유입되어서 이와 빈대 박멸을 위해 사용되었다. 입던 옷에도 뿌리고 심지어 머리에 직접 뿌리기도 했다. DDT는 실험을 통해 모기와 이를 비롯한 수많은 해충을 박멸하는 효과가 입증된 화학제품이었다. 강력하고 효과도 오래 가는데 값이 싸서 인기가 있었다. 당시 다큐멘터리를 보면 DDT를 살포하고 있는데 옆에서 어린 학생들이 피크닉을 즐기며 도시락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술을 더 빨리 취하게 한다며 DDT를 칵테일에 넣어서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DDT는 전쟁의 승패도 가르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을 말라리아로부터 막아내 일본군을 제압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당시 태평양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방역 전문가에게 “언제나 3분의 1의 병사는 말라리아로 고통받고 있고, 3분의 1은 회복 중이고, 나머지 3분의 1만이 실제 전투가 가능하다”라고 호소했는데 DDT로 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했다. 전쟁이 끝나고 DDT는 농업 분야에 주로 사용되어 생산량 증대에 기여했다.

이 DDT를 금지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사람이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다. 그녀가 1962년 쓴 「침묵이 봄」에서 DDT의 위험성이 제기되었다. 그녀는 DDT를 살포한 지역의 물고기의 죽음과 대학 캠퍼스에서 살포 직후 죽어가는 새와 다람쥐를 보고 관련 연구 자료를 조사해서 이를 폭로했다. 역사가들은 「침묵이 봄」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미국 노예제에 미친 영향에 비교했는데 그만큼 영향이 컸다.

미국 방역 당국은 DDT의 두 가지 위험성을 확인했다. 하나는 ‘생물 축적’이 되어서 상위 포식자로 그대로 축적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합물이라 자연계에서 분해가 잘 되지 않아 오래 잔류된다는 것이었다. 1972년 12월31일 미국 환경보호청은 ‘미국에서 살충제 DDT 사용을 금지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다’며 최종적으로 금지했다.

이때 반대쪽에서는 레이첼 카슨이 살인자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종의 ‘케미포비아’에 대한 포비아라고 할 수 있는데, DDT를 금지해서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주로 미국의 보수 성향 혹은 자유지상주의 싱크탱크들이 주장했다. 미국기업연구소 ‘DDT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합성된, 역사상 가장 소중한 화학 물질’이라며 레이첼 카슨을 ‘히스테리 환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녀를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후버연구소의 토머스 소웰은 “레이첼 카슨만큼 많은 인명을 죽이고 처형되지 않은 대량 학살자는 한 명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으로 반박되었다. 결정적으로 DDT는 부분적 효과만 있고,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바로 DDT에 대한 곤충의 내성 때문이다. 살아남은 개체들은 후손에게 DDT에 강한 유전자를 전달하며, 열성은 박멸되고 이런 우성만 남으면 개체군 전체가 살충제로 가득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농사용으로 살충제를 살포하면 불과 7년에서 10년 만에 내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스리랑카 사례다. DDT를 사용하면서 1948년 280만 명이었던 말라리아 환자가 1963년 17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1969년에 다시 250만 명에 육박했다. DDT를 더 넓은 지역에 더 빈번하게 살포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이때 이후로 내성이야말로 매개체 질병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DDT 등 중요한 화학제품이 보여준 ‘케미포비아’의 교훈은 이런 것이다. 좋은 물질은 주로 나쁘다고 알려진 것에서 나왔고, 반면 나쁜 물질은 주로 좋다고 하는 것에서 나왔다. 많은 화학제품이 처음 알려지던 때와 다른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화학제품의 사용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바로 ‘효율의 비용’ 때문이다.

이번 케미포비아 국면에서 사실 살충제의 위험성이 부각되었지만 사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조류독감 방역문제이고 그 다음이 항생제 남용 문제다. 살충제에 대해서 대책을 세울 때 이 부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닭을 풀어서 키우는 것이 진드기 방제에는 효과적이지만 조류독감 전염에는 취약하다고 한다. 언론이 공포를 부각할 때 똑똑하고 야무진 정부라면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해서 정책을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