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미인 <돌연히 멈춤>
인간에게 동물의 시간을 허하라!?
Ctrl + V, 붙여넣기해서 사용하세요

이것은 동물의 이야기다. 아니, 사람의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의 이야기면서 사람이 왜 사람일 수 있는지 질문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다. 연극은 가까운 미래의 제약회사 연구실을 상상한다. 실험 대상이 된 동물과 그들을 통제하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은 인간과 동물, 정신과 몸, 인공과 자연 등 실험을 둘러싼 첨예한 이슈들과 직면한다. 하지만 기실 이 작품은 ‘사람이 동물을 연기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예의 그 모든 이분법적 구분을 무력화하고 그간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가치를 뒤집어엎는다.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도 사람으로 하여금 동물이 되어 보도록 만드는 연극. 아, 가난한 인간의 언어로 <돌연히 멈춤>이란 연극을 얼마나 잘 설명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보니 결국 이런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쉽게 인간이기를 포기해버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차라리 말 그대로의 ‘동물’의 시간을 허해봄은 어떠한가, 라고.
하마를 하마답게 하는 것

진이는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하마다. 엄마 하마로부터 분리된 채 연구실 박사의 손에 길러지면서, 자신이 사람과 다르긴 하지만 어딘가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김수희 연출은 새끼 하마를 다룬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 얘기를 들어보니 동물을 소재로 하는 대부분의 방송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런 서사를 재생산해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는데, 우연히 동물원 하마들을 다룬 방송을 보게 되었다. 이들은 야생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엄마 하마는 새끼를 낳아도 무엇을 해줘야 할지 잘 모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생후 3년간은 조련사가 새끼를 돌본다고 하는데, 하마 입장에서 얘기하는 내레이션 때문이기도 했고, 방송을 보다 보니 그 하마가 정말로 자기를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좀 안됐네, 싶은 마음이 들더라.
물론 연극에 등장하는 하마들은 조금 더 특별하다. 진이의 엄마는 야생에서 태어났으나 생포되어 연구실로 끌려왔고, 때는 인간이고 동물이고 종족 번식을 위한 자연 생식을 이미 하지 않게 된 시대라, 연구실의 박사들은 자연의 그 강인함을 찬양했다. 진이의 엄마는 쉬이 길들여지지 않았고 생존을 위한 예민한 감각으로 반짝이는 하마였으나, 온통 흰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선 새끼를 위해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진이와 엄마, 아빠, 작품에 나오는 세 하마는 굉장히 즉발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다. 우리가 생각하고 정리해서 뱉어내는 말보다도 몸이 원하는 소리가 훨씬 본질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하마들이 움직이는 힘과 그들의 대화에서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들에 집중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극을 연극답게 하는 것

한편 이 작품은 가장 첨단의 것을 완벽히 비어있는 연극적 상상력으로 채움으로써 연극의 내용과 형식을 조화롭게 아우른다. 미래의 연구실이라면 응당 갖추고 있어야 할ㅡ말로 설명하기 다소 비루하나, SF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자동화 기기나 컴퓨터 시스템 등?ㅡ많은 것들을 무대에 그대로 들여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그것들을 정말 그럴싸하게 구현해낸다 하더라도, 도대체 사람이 하마를 연기하는 무대에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처음 대본을 쓸 때는 규모가 있는 극장에서 제대로 된 세트를 갖춰놓고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가장 작은 극장에서 배우들 힘만으로 빈 무대를 채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하마의 시각선을 구현해내는 게 가장 큰 숙제다. 하마가 덩치는 큰 짐승이지만, 그 눈높이는 실제 테이블 높이 정도밖에 안 되니 무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하마의 연기도 눈여겨봐야 한다. 움직임을 통해 표현되는 하마만의 특징을 관찰하는 즐거움에 더불어 하마끼리 있을 때의 ‘하마다움’과 그들이 연구실 박사들, 즉 사람과 만났을 때 드러내는 ‘동물다움’의 차이를 확인하는 연극적 호사도 놓칠 수 없다. 이 작품에는 자신을 사람이라 여기는 하마가 등장하고, 그런 하마를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하마 그룹 안에서는 순간순간의 특징들을 움직임으로 잡아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사람 그룹과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어색해져서 다른 오브제를 들여올 수밖에 없더라. 이를테면 나는 저 사람들보다 다리가 좀 짧은 것뿐이야, 라고 생각하는 하마가 그런 인형을 조작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동시에 하마들끼리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하마의 마지막 결정은 이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방송을 탄 동물원의 하마들은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한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을 두고 ‘어떤 식으로든’ 진화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당한지 모르겠으나, 단언컨대 이들의 삶은 두 번 다시 야생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한가. 지금 우리가 적응하고 있는 세계가 생존을 위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 역시 동물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환경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삶의 방식을 터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결과 우리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져만 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요원해져만 가는 게 아닐까.
[사진: Play For Life 제공]

- 일시
- 10월 1일~10월 18일, 평일 8시, 주말/공휴일 3시, 화 공연 없음
- 장소
- 노을 소극장
- 작·연출
- 김수희
- 출연
- 성여진, 전중용, 우미화, 이갑선, 안창환, 이승헌, 강해진
- 문의
- 010-2069-7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