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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공간 서로 개관시리즈2 <서로, 낭독공연>

낯선 공간, 익숙한 시도, 가능한 기대

허영균_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 디렉터
76호 2015.09.17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언제나 반갑다. 일단 공간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일이 생긴다. 인간은 작당(作黨)하기 좋아하는 종족이니까. 그런 점에서, 올봄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서촌공간 서로 개관시리즈2 <서로, 낭독공연><요정들의 오후>

낯선 공간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언제나 반갑다. 일단 공간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일이 생긴다. 인간은 작당(作黨)하기 좋아하는 종족이니까. 그런 점에서, 올봄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종로구 옥인동에 ‘서촌공간 서로’(이하 서로)가 문을 연 것이다. 1층엔 카페, 2층과 3층은 갤러리, 지하에는 블랙박스형 소극장이 있다. 극장도 갤러리도 아닌 ‘공간’이라는 이름을 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복합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촌이라 불리는 경복궁과 그 주변에 어떤 형태로든 ‘극장’이 들어선 것은 다소 신선한 일이다.
서촌은 2~3년 전부터 떠오른 문화, 소비 공간이다.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약 5~10년 전에 인기를 누리던 ‘삼청동’의 성격을 일부 이어받았다. 소위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주거지역에 가까웠던 서촌은 빠르게 상업화되었고, 그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을 우려하게 됐다. 이에 대항하여 이곳이 지닌 ‘그대로’의 멋과 가치를 지켜 내려는 사람들의 노력 또한 못지않게 뜨거워지고 있다. 변화와 유지 사이의 줄다리기. ‘서로’는 그 팽팽함 사이 점이지대에 서 있다. 대림미술관, 시청각, 이상의 집 등 미술관과 갤러리, 그리고 전시장으로 주로 기능하는 대안공간과 서촌은 이미 친숙한 관계다. 그러나 소극장, 그것도 블랙박스 형태의 극장과 서촌의 만남은 처음이기 때문에 생소하고 그래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

익숙한 시도

서촌공간 서로 개관시리즈2 <서로, 낭독공연>

정식 개관을 앞둔 지난 3월, ‘서로’는 오프닝 파티에 몇 명의 젊은 연극인들을 초대했다. 극장을 보여주고, 이 공간에서 앞으로 어떤 일들을 벌여나갈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주길 청했다. 연극, 낭독극, 퍼포먼스, 음악극 등이 가능한 가변형의 블랙박스 극장은 창작자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장소다. 그 첫 악수의 결과는 6개월 뒤, <서로 낭독공연>으로 선보여지게 됐다.
<서로 낭독공연>은 서로가 극장으로서 시도하는 첫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다. 봄과 여름을 거치며 판소리, 비올라 연주, 포크송 연주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났던 극장이 가을에는 연극인들에게 판을 벌여준 것이다. 9월 1일부터 12일까지 보름에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세 개 단체의 세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세 팀은 ‘희곡읽수다’, ‘프로젝트 만물상’, ‘좋은희곡읽기모임’이다. 각 팀의 구성원들은 대학로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배우와 연출가이며, 차례로 <요정들의 오후>, <바야흐로 좀, B>, <만선>을 공연했다.
가장 먼저 관객을 만난 <요정들의 오후>는 제닛 테일러 라일(Janet Tayler Lisl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와이 요크(Y. York)의 희극을 윤색한 것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와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눈으로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이어서는 ‘프로젝트 만물상’의 <바야흐로 좀, B>가 공연되었는데, 낭독공연에 참여한 세 작품 가운데 유일한 창장극이다. 퓨전국악밴드 고래야의 리더 옴브레와 연출가 한아름, 작가 김세한이 함께 작업했고, 예술감독으로 극단 여행자의 이대웅 연출이 참여했다. 숨 막히는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로와 절망을 사람이 좀비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팀 ‘좋은희곡읽기모임’이 선보인 것은 <만선>이다. ‘좋은희곡읽기모임’은 2013년 결성되어 <희곡입체낭독공연>이라는 명명 아래 ‘장면구성, 미장센 연구 그리고 무대언어와 감정에 대한 탐구’를 창작 결과물로 보여주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만선>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세 작품은 낭독공연을 시작으로, 지속 가능한 공연의 가능성을 찾아 이후 정규 공연으로 다시 한 번 ‘서로’에서 선보여질 예정이다.

실상 ‘낭독공연’ 자체는 신선한 발상은 아니었다. 대학로나 그 주변부의 극장이나 카페, 책방 등의 대안적 공간에서도 이미 여러 번 낭독공연을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공연에 찾아온 관객 또한 대부분 낯익은 얼굴들이라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익숙한 공연과 비슷한 관객들을 고스란히 다른 장소로 옮겨 놓는 것이 ‘서로’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또한 새로운 공간을 맞이하는 공연예술가들의 목표는 더더욱.

서촌공간 서로 개관시리즈2 <서로, 낭독공연>

가능한 기대

<서로, 낭독공연>은 단순히 공연장이라는 장소적 '기능’에 목적을 둔 프로젝트가 아니라 예술과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좋은 희곡과 새로운 형식을 발표하는 장을 열어주고, 가능성을 발견하고, 정규 공연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낭독공연이 실현하고자 하는 바였다. 장기적으로는 ‘서로’가 공연계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고, 공연예술가들과의 네트워크 혹은 우정을 구축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새로운 장소를 만난 공연예술가들은 이러한 시도와 실험의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낯선 공간에서 만난 관객과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관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시도와 기회의 장을 제공해주는 공간이 서로라면, 그것을 소화해내는 것은 공연예술가들의 일이다. 서촌의 방문객들이 관객이 되게 하는 것, 새로운 관객을 새로운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이제 공연예술가들의 몫이다. (마침내 그곳이 어디가 되든!)

[사진: 서촌공간 서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