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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단거리패, 대전예술의전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백석을 아십니까?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77호 2015.10.08
‘백석을 아십니까?’ 이윤택 연출가는 대전문화의전당에서 공연기획자로 일하는 박지연 씨가 던진 이 질문이 계기가 되어 연극 <백석우화-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석을 잘 모른다는 당혹감은 백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연희단거리패, 대전예술의전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백석을 아십니까?’ 이윤택 연출가는 대전문화의전당에서 공연기획자로 일하는 박지연 씨가 던진 이 질문이 계기가 되어 연극 <백석우화-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석을 잘 모른다는 당혹감은 백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먼저 백석 시의 빼어남에 감탄했다. 그리고 잊혀졌던 백석의 삶을 들춰내면서 ‘예술가는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가?’라는 예술가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옮겨갔다.

그리하여 작품 제작은 백석의 시를 찾아가다가, 시인의 삶을 만나고, 예술가의 존재와 만나고, 한국적 상황 속에 놓인 예술가의 희생과 자유에 대해 생각하는 작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분해하거나 주장하거나 설교하는 것은 피하려했다. 대신 연출가는 백석의 시와 구체적 삶의 흔적을 토대로 한편의 희비극적 우화를 빚어내는 길을 선택했다.

분단이 고착화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관객에게 ‘백석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면 아마 마찬가지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이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찾아 다시 읽는다. 아직 남북이 갈라서기 전, 북녘 땅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시인이 소외와 고독을 나직이 읊조린 시다. 남녘에서도 이 시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우리는 정작 백석이라는 사람, 그의 생애로부터 그저 시어의 아름다움만 분리해내 즐겼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이번 연극은 백석을 문자 그대로 읽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연희단거리패, 대전예술의전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경계인 백석, 그리고 예술가의 삶

“결국, 한국적 상황과 한국연극에 대해 되비추고 되씹어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술, 혹은 연극은 온갖 현실적 상황과 요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불려 다니지만,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예술가, 혹은 연극인의 절대 순수의 본 모습이 어디 있는가 자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이윤택 연출가

어수선한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분단 이후 민족은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사슬에 꽁꽁 묶여 버렸다. 21세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편견은 예술, 문학에 여전히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월북 시인이 아니라 고향이 북녘인 재북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석이라는 걸출한 시인에 대해 남녘 사람들은 그저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그의 책은 남녘에서 출판 금지 대상이었지만 정작 북녘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투철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다. 백석은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대한 반발로 창작활동을 중단하고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여년을 시인이 아닌 농민으로 살면서 백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윤택 연출가는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백석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은 서사적 기록극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우화로 채워나간다. 어쩌면 백석이 농민으로 산 세월은 그 자체로 시이자 우화가 아니었을까. 연출가와 배우는 백석의 삶을 찬찬히 더듬고 그의 삶 중 알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직접 들어가 보는 것으로 작업의 내용을 채우고자 한다. 백석을 깊이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파생된 질문들과 생각으로 백석의 삶에 남겨진 공백을 채우고자 한다. 그러니까 연극 <백석우화>를 감상하는 것은 이 공백을 객석에서 함께 채워나가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일이 된다.

연희단거리패, 대전예술의전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음악적 형식. 판소리의 연극언어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연극은 그렇게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의외로 삶에 대한 구체적 울림과 사유를 던지는 작업이라는 것을 전하려는 과정에서 우화적 구성을 선택했습니다. 관객과 함께 예술에 대해, 연극에 대해 조용하게 되새김질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윤택 연출가

그동안 연희단거리패가 선보여온 ‘서사적 리얼리즘’은 이번 공연에서 음악으로도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이윤택 연출가는 판소리꾼 이자람의 작창, 이자람밴드에서 활동하는 권선욱의 작곡 및 편곡을 통해 판소리의 연극언어화를 시도한다. 백석의 시가 원래 이야기 시로서의 서사성을 지니고, 그의 시가 판소리 양식에 닿아있다는 학술적 배경이 판소리의 연극언어화를 시도하는 계기가 됐다.

음악을 포함해 이런 객관적인 거리두기 방식의 연극 만들기는 세상에 대한 관점을 애써 주장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떠오르게 한다는 게 이 연출가의 설명이다. 희곡만 읽어봐도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작금의 예술 창작 환경과 예술가의 삶이 작품과 자꾸 겹쳐 보이는 걸 보면 작품창작의 원리는 이미 어느 정도 제 효과를 내고 있다. 백석을 관객보다 먼저 만난 배우들이 그의 삶을 과연 어떻게 소화하고 체화해냈는지, 그래서 백석이라는 이름의 ‘우화’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했는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자.

[사진: 연희단거리패 제공]

연희단거리패, 대전예술의전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포스터

일시
10월 12일~11월 1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공연 없음(단, 12일 공연 있음)
장소
게릴라극장
시
백석
대본·연출
이윤택
작곡·음악
권선욱
작창
이자람
출연
오동식, 김미숙, 이승헌, 강호석, 김아라나, 신명은, 이혜선, 허가예, 황근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