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복수에 대한 어떤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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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과 통합한 국립극단이 가을마당 네 번째 작품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올린다.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불리는 <조씨고아>를 토대로 각색과 연출 작업에 나선 이는 고선웅 연출가다. 고 연출가는 <칼로막베스>, <리어외전> 등의 전작에서 셰익스피어 고전의 현대화를 시도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 고전으로 눈을 돌렸다.
<조씨고아>는 ‘동양의 햄릿’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비극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춘추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중국 원나라 때의 작가 기군상이 연극적으로 재구성해 썼다.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 ‘조’ 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죽음으로 내몬 ‘정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영은 고아에게 ‘정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후 자신의 자식으로 기르며 20년 동안 복수의 씨앗을 키워간다. 마침내 복수를 하지만 씁쓸한 공허만이 남는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이 연극은 과연 ‘복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국립극단 연습실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활기와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연습 말미, 연출가의 디렉션이 들어가는 시점까지도 배우와 스태프 모두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 연출가 특유의 거침없는 활기에다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캐스팅이라는 조건이 더해진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배우건 스태프건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 각자 몫을 제대로 해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중이라는 것을 기운으로 알 수 있었다.
연출과 각색을 동시에 맡은 고선웅 연출가는 전작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리드미컬하고 빠르게 장면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고 연출가는 옛날에는 드라마 장르가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가도 즐길 만했고 견딜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요즘 세대의 경우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집중력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극적인 요소, 시각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해 표현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대에는 우선 대형 커튼이 드리워진다. 고 연출가의 표현을 빌면 “연극성을 가장 잘 살리기 위해 ‘이건 연극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빨간색 커튼”이다. 경사진 무대에 드리워진 커튼이 이 극의 비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가운데 허공에다 요람, 뽕나무, 복수와 관련된 그림 등 대본의 핵심적인 내용이 추출돼 상징적 오브제로 매달릴 예정이다. 또 무대는 리프트를 활용해 땅 속으로도 확장된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를 사로잡는 복수라는 키워드, 그 허망함과 질김이 시각적으로 구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전에서 추출해낸 동시대성
극 중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조 씨 가문을 멸족시키지만 지인들의 살신성인으로 아무도 모르게 살아남은 고아, 즉 정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양아들로 키운다. 자기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정발을 살려낸 정영은 20년 간 키워온 복수의 씨앗인 정발에게 참혹했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년 전 죽음을 당한 친아버지 조삭, 20년간 나를 키워준 아버지 정영, 20년 동안 아끼며 보살펴준 양아버지 도안고를 두고 고민에 빠진 정발은 결국 조 씨 가문의 복수를 결심한다.
고전을 각색해 무대화하는 것은 그 속에서 세대를 뛰어넘는 동시대성이 발견됐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오늘날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일까. 고 연출가는 “지금과 딱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고씨는 “국정교과서 이야기가 나오고, 여야가 끊임없이 쟁투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이야기는 진짜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복수하지 말라고 권하는, 단순한 연극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복수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내가 이해당사자가 아닌데 ‘그 입장이 돼 봤어?’라고 누가 물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할 말이 없어요. 복수해야 한다고 얘기할 거예요. 그런데 ‘복수하세요, 그렇지만 꼭 후련하지는 않을 걸요’라고는 얘기를 해주고 싶은 거죠. 작가로서 기군상이 그랬을 거라는 것이고, 나는 연출로서 그 말에 동의를 하니까요. 뉘앙스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리려고 합니다. 아까 연습실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외치던 구호가 있었죠?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셔라’. 우환을 만들지도 말라는 것은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고 당하지도 말라는 것은 피해자가 안 되도록 잘 살아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메시지를 두 번 반복할 예정입니다.”
연출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아프게 와닿는 인물이 정영이라는 인물이라고 했다. 비록 우여곡절 끝에 복수에 성공하지만 극 중 가장 허무하고 또 불행한 인물이다. 고 씨는 바로 옆에 내 자식을 죽게 한 원수를 두고 있는데 그와 함께 웃으면서 지내야 하는 정영의 입장을 떠올리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20년을 참아야 했던 게 보통 일이 아닐텐데 막상 복수를 완수한 후에도 그에게는 남는 게 없다. 정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복수의 무대는 그 얼마나 가혹하고 쓸쓸한 풍경일까. 이 기구한 인생의 비극적 운명이 명동예술극장의 너른 무대에서 관객들 마음 속 어떤 감정의 스펙트럼을 끄집어낼까. 작품은 겨울로 접어드는 쓸쓸한 늦가을, 삶을 곱씹어보기 좋은 계절에 관객과 조우할 예정이다.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 일시
- 11월 4일~11월 22일 평일 7시반, 주말 3시, 화 쉼
- 장소
- 명동예술극장
- 원작
- 기군상
- 각색·연출
- 고선웅
- 출연
- 장두이, 하성광, 임홍식, 이영석, 유순웅, 조연호, 이지현, 성노진 외
- 문의
-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