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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공작소 판 <잠깐만요> & <가면/몸/마임>

몸이 말이 되고, 말이 몸이 되는

김슬기_공연저술가
78호 2015.10.22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을 공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모네, 밀레, 클림트, 뭉크, 고흐의 친근한 그림들은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고, 여기에 그림을 재현하거나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볼거리는 한층 풍성해진다.

마임공작소 판 <잠깐만요> & <가면/몸/마임>

공연이란 언제나 진행형으로서만 존재한다. 하물며 몸으로 만들어낸 공연은 그것을 아무리 똑같이 복기해낸다 하더라도, 순간순간의 지나침 혹은 무한한 시간의 흐름 위를 유영해 나가야 하는 숙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함께 나이를 먹어갈 작정으로 만들어진 공연이라면? 움직임을 수행하는 그 몸을 과연 한 편의 작품 속에 박제해버리는 게 온당할까. 어쩌면 그것은 예술가k의 삶과 그가 살아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증언으로 감각되어야 마땅한 게 아닐까. 고재경의 <잠깐만요>는 바로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2년 전 처음 관객들과 만났고, 유진규, 유홍영, 고재경이 각각 그리고 더불어 선보일 <가면/몸/마임>은 1972년 초연된 작품부터 2015년의 신작들까지 다양한 공연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 시대 관객들과 더불어 ‘오늘의 마임’을 호흡하고자 한다.

움직임이 나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마임공작소 판 <잠깐만요> & <가면/몸/마임>

마임공작소 판 <잠깐만요> & <가면/몸/마임>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을 공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모네, 밀레, 클림트, 뭉크, 고흐의 친근한 그림들은 자연스레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고, 여기에 그림을 재현하거나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볼거리는 한층 풍성해진다. 허나 이 과정에서 그림이란 그저 관객들과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할 뿐, 실상 이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배우들이다. 이들은 세상 곳곳을 누비며 관객들을 만나는 유랑극단의 배우들로, 연신 “잠깐만요”를 외치며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거나 어느새 주저앉아 공연에 빠져든 이들을 작품 속에 참여시킨다.
30여 년 가까이 마임을 하다 보니 매번 다르게 계속 공연하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아예 공연하지 않게 되는 작품들도 생기게 됐다. <잠깐만요>는 처음부터, 같이 나이를 먹어갈 생각을 하고 만든 작품이다. 물론 기량 문제도 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처럼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공연하더라도 작품이 변화해가더라. 여기 등장하는 유랑극단 배우들은 궁극적으로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예술가로서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다.
고재경은 최근 몇 년 사이 다른 연극 작품들의 움직임 지도를 통해 ‘연극’이란 것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연극의 생리에 대해 생각하던 중 그것을 유랑극단의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획한 작품이 <잠깐만요>라는 것.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공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치 바람이 불어 시원한데 왜 시원한지 묻지 않는 것처럼, 공연이 마음에 와 닿도록 그저 내버려두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때문에 그는 공연에 함께 하는 두 무용수에게도 자꾸 설명하려 애쓰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는 배우의 움직임만으로 관객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공연을 꿈꾼다.

몸의 기억과 감각을 넘어 <가면/몸/마임>

마임공작소 판 <잠깐만요> & <가면/몸/마임>

마임이란 기본적으로 모방을 뜻한다. 모방의 대상은 일상의 사물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릿속 생각이나 심상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모든 움직임들과 그 원리는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움직임도 흡수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다른 어느 것과도 어울릴 수 없는 것이 또한 마임이기도 하다. <가면/몸/마임>은 마임도 하나의 공연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 시도한 프로젝트다. 유진규 선생님, 유홍영 선생님 두 분의 1972년 작, 1992년 작이 같이 올라가는데 아마도 이분들의 옛 작품을 본 관객들은 정말 몇 안 될 것이다. 그때의 공연과 더불어 지금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전형적인 팬터마임부터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도 있고,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다른 색깔이라 이번 기회를 통해 관객들이 보다 다양한 마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공연은 유진규의 <첫 야행(억울한 도둑)>(1972 초연), <꽃>(2015 신작), <거울>(2015 신작), 유홍영의 <가면·몸·마임>(1992 초연), <꿈에>(2015 신작), 고재경의 <새>(1992 초연), <만약 내게>(2015 신작)로 구성된다. 한국 마임의 오늘이면서 동시에 현재화된 역사의 단편들을 마침내 한 무대에서 조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오랜 훈련으로 내면화된 몸의 기억, 아니 어쩌면 매번 낯설게 갱신되는 몸의 감각, 그 움직임들은 단연코 이 한 번의 공연으로 포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공연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길들여지고, 상처입고, 저항하고, 자유를 꿈꾸는 몸 그대로의 몸, 우리 시대의 투명한 자화상이 아닐까. <가면/몸/마임>은 몸이 말이 되고 말이 몸이 되는 감각의 확장을 위해 11월 8일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에 연출가 기국서 선생과 세 명의 마임이스트가 함께 하는 ‘마임 토크 쇼’를 준비했다. 공연에서 미처 못 다한 몸의 노래가 이곳 이야기판에서 관객들을 기다린다.

[사진: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마임공작소 판 <잠깐만요> 포스터

<잠깐만요>

일시
11월 2일~11월 4일 매일 8시
장소
대학로 스타시티 TM 스테이지
구성·연출
고재경
출연
고재경, 이지혜, 김혜숙
문의
764-7462

마임공작소 판 <가면/몸/마임> 포스터

<가면/몸/마임>

일시
11월 6일~11월 8일 금 8시, 토 3·7시, 일 3시
장소
대학로 스타시티 TM 스테이지
연출·출연
유진규, 유홍영, 고재경
문의
764-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