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맨 끝줄 소년>
상상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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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미술 전시 카탈로그나 설명서 같은 실용적인 글 말고 진짜 문학 말이다.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대표적 희곡 작품인 <맨 끝줄 소년>을 통해 문학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건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함을 은연중에 고백한다. 마치 교실 맨 끝줄에 앉은 소년처럼, 자신을 숨긴 채 모두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시야각을 펼쳐나갈 때 바로 작가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관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가의 관점은 일단 생겨나기만 하면 성역 없이 이곳저곳을 통과한다. 은밀한 상징, 비유를 통해 실제 현실 속 삶을 세련되게 숨겨둔 덕분에 많은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지만, 작가의 눈은 오늘도 이곳저곳을 꿰뚫고 있다. 적어도 자신 혹은 누군가가 제동을 걸기 전까지는 작가는 이러한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맨 끝줄 소년>은 문학 창작의 과정, 상상의 과정 자체를 그대로 무대화하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문학교사인 헤르만은 학생들의 작문 과제를 채점하다 절망한다.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클라우디오의 과제를 보고 희망을 얻는다. 클라우디오는 말수도 적고 반에서 항상 맨 끝줄에 앉는 학생이다. 헤르만은 개인 교수까지 해주면서 클라우디오의 창작을 지원한다. 하지만 친구 라파엘 가족의 집을 방문하며 이야기를 창작해나가는 클라우디오는 어느 순간 금기된 선을 훌쩍 넘어버리고 헤르만은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돌아가자 당황한다.
문학 창작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겉으로 보면 문학 선생과 학생 사이의 유대감과 갈등을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여러 겹의 이야기들을 감싸 안고 있다. 문학 선생 헤르만과 큐레이터 후아나 부부의 대화는 상업자본에 휘둘리는 작금의 예술을, 라파엘 가족의 대화는 예술마저 장식품으로 취급하는 중산층의 욕망을 담는다. 또한 문학 선생 헤르만과 학생 클라우디오의 대화는 통제와 검열의 이슈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마치 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예술이 현실과 부딪히며 겪게 되는 모든 이슈를 이 한 편의 연극에 담으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무대화되지 않았던 이 작품을 후안 마요르가가 신뢰해 마지않는 김동현 연출가가 무대에 올린다(마요르가는 “작품 연출은 무조건 김동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후문이다). 이 연극은 마치 여러 시공간을 꼴라주한 것처럼 표현될 것이라고 한다.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는 희곡 속에서 이야기 창작의 주체가 되어 이곳저곳을 헤치고 다녔던 것처럼 연극 무대 위에서도 모종의 연극적 약속을 통해 장면을 하나하나 밝혀 나갈 예정이다.

묵직한 소재 다루되 매끄러운 흐름 놓치지 않은 드라마
문학 선생 헤르만을 맡은 배우 박윤희는 희곡에 단단히 매료된 모습이었다. “이 작품에는 다른 희곡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엇이 있다”고 한 그는 이 작품이 연극 무대에서 펼쳐졌을 때 한 편의 잔잔한 영화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박윤희 배우가 맡은 헤르만은 문학을 사랑하지만 자신에게 문학창작의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글쓰기를 중단한 인물이다. 헤르만이 20년째 문학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만큼 김동현 연출가는 ‘이 사람은 좀 헐었다, 지쳐있다’며 이 모습이 헤르만을 통해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김동현 연출가와 첫 호흡을 맞추는 박윤희는 “꼭 무거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 나쁜 버릇이 나오는 걸 딱 건드리시기 때문에 아주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여러 인물 중 관객들이 가장 쉽게 감정을 이입할 만한 인물은 누굴까. 아무래도 라파 가족이다. 이들 가족이 현대인들의 숨은 욕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이들 인물은 희화화된 인물들로만 비칠 수 있다. 배우들이 이 인물들을 꽤나 전형적인 연기 방식으로 연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코믹해지면 질수록 이들의 모습은 의도치 않은 시점에 클라우디오의 대사와 겹쳐지며 관객의 폐부를 찌른다. 중산층 혹은 중산층이 되고 싶은 이들의 허위의식이 담긴 대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들려오는 대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충격을 안긴다.
아버지 라파 역을 맡은 배우 백익남은 라파 가족에 대해 “클라우디오가 관찰한 후 글로 써내려간 인물이기 때문에 약간은 과장되고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할까 싶었는데 연출가가 ‘현실 속의 인물이다. 이런 사람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부각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해서 거기에 맞출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닌데 마치 문학선생의 극 중 대사처럼 패러디, 캐리커처 같은 요소를 담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설명이다.

관객과 함께 상상으로 채워나가는 작품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는 헤르만과 함께 마요르가의 분신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문학 선생 헤르만과 문학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 클라우디오는 마치 작가의 마음 속 두 소리를 형상화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클라우디오 역할은 배우 전박찬이 맡고 있다. 삼십대의 나이에 소년 역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의외로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가 역할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는 전박찬 배우는 인물에 대해 아직 다 못 찾아낸 것만 같은 느낌이 한편 중압감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이 작품은 관객들을 만나면서 채워나가는 작품이기에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작품에 여러 공간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대체로 비어 있을 예정이다. 몇 가지 기능적인 도구들에만 기댄 채 배우들과 함께 관객이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무대다. 무대에는 테이블과 의자 세트가 몇 개 여기 저기 놓여 있는 게 전부다. 무대 뒤에는 샤막을 드리워 뒤 공간을 활용한다. 무대 상하수 쪽으로는 아크릴로 덧대 복도 같은 공간을 만든다. 공간 구획을 위한 필수적인 대도구, 소도구 외에는 별다른 무대장치가 없다. 비어 있는 공간마다 배우들이 이야기를 심어가고 관객들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창작현장의 목격자 역할을 하게 된다. 공연을 보고나면 마치 여러 이야깃거리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 일시
- 2015년 11월 10일~12월 3일 화목금 8시, 수일 3시, 토 3시·7시반(월 공연없음)
-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 원작
-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 번역
- 김재선
- 윤색
- 손원정
- 연출
- 김동현
- 출연
- 박윤희, 백익남, 김현영, 염혜란, 유승락, 최지혜, 나경호, 유옥주, 전박찬
- 문의
-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