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인권연극제
차별의 논리를 거부합니다,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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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예술이다>
‘인권’이란 말이 열렬하게 입에 오르내리는 연도다. 그리고 그 말이 쓰이는 장소에는 온기와 냉엄함이 공존한다. 세월호와 관련된 기사에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덧글과 비난하는 덧글이 동시에 달린다. 시청 광장에선 얇은 펜스를 경계로 안쪽에선 퀴어퍼레이드, 바깥쪽에선 동성애혐오세력의 집회가 열렸다. 광화문 지하 한 켠에 장애등급제 및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이 들어선 지 약 천 일이 지나가지만 제도가 시정될지의 여부는 아직도 미지수다. 메갈리아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이 여성 인권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미러링에 근간을 두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크게 비난받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차별의 논리를 거부합니다,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지지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인권연극제가 올해로 2회를 맞았다.
왜 인권과 연극은 만나야 했을까
제2회 인권연극제에는 학교폭력 피해자, 여성, 세월호 유가족, 장애인, 성소수자, 근로빈곤층, 형제복지원 생존자 등 여러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연극들이 출품됐다. 각기 다루는 주제도 풀어내는 방식도 다양했지만,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려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목적은 모든 극단이 같았다. 인권연극제는 그 이름에서 말하는 대로 ‘작품을 선보이는 연극제’이지만, 그 모든 작품들이 인권과 관련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실천 및 운동의 장’이기도 한 것이다.
인권 운동은 연구, 분석과 같은 이론적 행동에서부터 시위, 농성 등의 정치적 행동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어져 왔다. 그렇다면 ‘인권연극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권운동이 ‘연극’이라는 예술적 움직임과 만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인권이 ‘경험’과 ‘공감’에 큰 근간을 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땡볕에 서다>
중심부의 외곽에서 온 이야기들
우리의 정체성은 사회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는 경험은 ‘당연하게 갖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리고 차별 행위는 그들이 공유하게 된 경험을 윤리로 오인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직관적인 윤리 감각은 대상을 모욕하는 폭언에서부터 직접 물리적 상해를 입히는 극단적 행태의 폭력까지 촉발시킴과 동시에 그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와 같이 직관에 의존하는 윤리 감각을 깨기 위해선 ‘공유하는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것들이 사실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경험’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권연극제의 무대 위에는 이른바 ‘일반’의 변두리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국가적 차원의 폭력을 경험한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무대에 오른다. 시스젠더-이성애자 외의 성정체성 및 성지향성을 지닌 성소수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장애인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장애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여러 층위가 중첩되어 사회의 변두리 속에서도 외곽에 놓인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무대 위에는 당사자 본인과 소수자들을 연기하는 사람들이 함께 오른다. 당사자들은 그들의 삶을 직접 증언하면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시간을 갖고,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소수자들이 경험해온 삶의 경로를 해석하고 차별의 구조를 발견해내는 기회를 갖는다. 그 과정의 종착지에는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소수자들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자각의 과정이 있다. 자각은 소수자들에 대한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고, 공감은 관객 자신이 동시대 구성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다.
<내 아이에게 >
선언과 치유의 장으로서의 연극
이를 통해 인권운동이 연극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소수자 본인에게 있어서 인권연극은 자신의 정체성이 은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루는 한 부분임을 긍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소수자가 아닌 구성원들에게는 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이끄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즉, 인권연극제는 소수자들로 하여금 정체성을 선언할 수 있는 공간이자, 구성원들 사이의 공감이라는 사회적 실천을 제시하는 치유의 장인 것이다.
구성원 사이의 깊은 공감이 부재해 있는 인권 운동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안전과 특권에 안도하고, 인권을 도덕적 강령 정도로 여기고 인용하면서 스스로를 위무하는 수준의 변화만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소수자들의 삶을 직접 보여줌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권연극은 관객들이 감상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천하도록 리드하는 운동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 인권연극제 사무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