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신세계 <상업무지(無知)컬-두근두근 내사랑>
김수정의 변증법, 상업극으로 실험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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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1번지 연극실험실 6기동인이 가을페스티벌의 테마로 ‘상업극’을 가져왔다. 나는 이러한 시도가 반가웠다. 연극계에 만연한 후안무치의 범람 속에서, 한 번쯤 실험과 상업에 대한 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극단도 아니고 혜화동1번지 연극 ‘실험’실 6기 동인이 ‘상업’을 말하고자 하는 태도가 흥미로웠다. 혜화동1번지의 동인들의 초기 창립 목표는 상업적 연극에 대한 반발로 실험적 연극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실험’과 ‘상업’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며 작품을 해왔을까. 이번 기회에 그들이 완벽한 자기부정을 시도하며 변증법적인 자기탐색을 하기를 바랐다.
특히 이번 ‘상업극’ 시리즈 중에서도 김수정의 <상업무지컬-두근두근 내사랑>(이하 <두근두근 내사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김수정의 전작 <안전가족>, <파란나라>등을 보며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재미’야 말로 상업극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로 상업연극들의 재미는 젊고 예쁘고 잘생긴 배우가 나와 러브라인을 만들거나 몸개그를 하며 형성되는데, 김수정 작품이 주는 재미는 파격적인 에너지와 메시지, 강한 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흔한 대학로 연극과 차이를 보인다. 특히 김수정과 극단 신세계의 작품은 언제나 일그러진 사회를 향한 가열찬 비판의식을 담고 있고, 그로 인해 의도적으로 폭력적인 연기 방식을 고집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김수정의 작품은 대중적인 찬사를 받기보다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김수정의 방식을 지지해왔다. 하도 태만한 사람들을 봐온 관계로, 김수정만큼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연출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일까. <두근두근 내사랑>을 보러 갈 때도, 이것이 분명 ‘상업극’의 탈을 쓴 ‘다른 무언가’일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포스터의 ‘상업무지컬’이라는 글자 중 ‘무지’ 옆에 (無知)라는 한자가 곁들여져 있었다. 무지, ‘아는 것이 없다, 미련하고 우악스럽다’는 뜻이다. 짧고 단순한 한자어지만 ‘musical’이라는 본래의 단어를 비틀어 언어유희를 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글자 뒤로 6인의 배우 얼굴은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얼굴 클로즈업이라니, 이는 상업뮤지컬이 포스터를 만들 때 전형적으로 내세우는 방식 아닌가. ‘재미’와 더불어 상업극의 중요한 요소는 ‘욕망’이다. 상업극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의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그래서 스타 배우들의 몸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포스터 배치는 분명 김수정의 전작과는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재미와 욕망, 상업극의 두 가지 축을 기대하며, 그리고 한편으로 그로부터 비롯될 새로운 층위의 실험을 기대하며 <두근두근 내사랑>을 관람하러 갔다.

혜화동1번지 연극실험실에 차려진 무대는 ‘생각보다’ 아니, ‘생각대로’ 미니멀했다. 나는 이 작품이 말만 ‘상업무지컬’이지 진짜로 기존 상업뮤지컬을 염두고 두고 만든 연극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무대를 보며 그 확신이 더 커졌다. 프로그램북에는 상업극을 열심히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보통 진짜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상업 뮤지컬 극단이라면 스펙터클한 무대를 추구할 것이다. 화려한 무대를 위해 몇 천만 원을 쓰는 극단도 많다. 하지만 <두근두근 내사랑>의 무대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혜화동1번지 페스티벌에서 어떤 연극이 전석 매진을 기록한들, 극단의 사람 모두에게 돌아가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고 싶다는 고백은 인상적이었다. 공식적인 프로그램북에서든 사석에서든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거액이 모일 리 없는 혜화동1번지 페스티벌을 통해 돈을 벌고 싶다는 말 자체가 하나의 연극적 장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연극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제대로 묘사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혔다.
그 묘사의 방식은 실로 재미있었다. 극단 신세계는 상업극의 코드, 재미와 욕망이 모두 반영되도록 막장드라마의 콘셉트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막장드라마에서 나올 수 있는 클리셰라는 클리셰는 거의 다 등장한다. 음악 역시 기존 드라마에서 들었던 ost 느낌이 나는 곡들로 선정된다. 드라마에서 클리셰를 가져왔다는 것을 대놓고 티내기 위해서다. 중요한 장면마다 드라마의 음악들이 나오며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다만 이 작품은 기존 드라마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는 점에서 실제의 드라마와 차별화된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고 해도 관객을 우수에 빠지게 하거나 눈물 젖게 만드는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할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진행을 시도한다. 그래서 관객은 눈물이 날 법한 사건이 나와도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아무리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왔다고 해도 이것은 연극이다. 10주, 20주씩 연재되는 드라마와는 다르게 한두 시간 만에 모든 결판을 내야 한다. 때문에 서사는 드라마의 그것과 닮을 수 있겠으나 진행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여야 한다. 둘째, 아무리 상업극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도 연극 ‘실험’실 동인의 공연이다. 이번 <상업극>프로그램북에는 ‘우리는 존나 실험하기 싫으니’라는 말이 적혀 있지만, 나는 그 말에 중의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혜화동1번지 연극실험실 동인의 이름으로 ‘상업극’을 이름에 올린 것부터 이미 실험인데, 설마 정말 실험이 하기 싫었을까. 때문에 나는 이번 시리즈는 어떻게 상업극의 형식을 빌려와도 실험적인 요소들이 만개할 것이라 예상했고, 김수정 작품의 경우 그것이 맞아떨어졌다. 이 연극은 막장드라마의 요소들을 빌려와서 관객을 웃게 만들고 있지만, 일부러 전개를 빠르게 하며 이 모든 상황을 조소하고 있었다.

이번 극은 김수정이 연출했지만, 김연재가 극작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협업의 미덕이 보인다. 극이 후반부로 갈수록 얼기설기 얽힌 장면들은 맥락 없이 ‘산으로’ 간다. 힘겹게 주인공들의 결혼이 성사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복수와 출생의 비밀 등 드라마의 클리셰들이 겹겹이 제시되면서 ‘끝을 모르는 상태로’ 극이 치닫는다. 일반적인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을 ‘한 번만’ 비트는 것에 비해 이 극은 출생의 비밀을 ‘두 번’ 비틀며 관객을 당황시킨다. 나는 이러한 극작술이 작가의 역량 부족이 아닌 ‘의도된’ 서사 파괴로 느껴졌다. 이왕 막장 드라마의 형식을 차용할거면, 막장 드라마를 훨씬 뛰어넘는 서사로 관객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웃긴 이야기지만 나는 이러한 ‘맥락 없음’이 역설적으로 맥락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작가나 연출의 상습적 시도로 굳어지면 곤란하겠지만, 한두 번 정도는 해볼 만한 실험이라고 여긴다. 이번 테마가 ‘상업극’이었기 때문에, 용인이 되는 지점이다.
이 공연의 서사 파괴는 결말에서 정점을 찍는다. 나는 이 장면을 통해 최근 연극계에 불거진 검열 사태를 떠올렸다. 어떠한 인류애적인 가치도 없이 그저 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정부 기관을 떠올렸다. 연극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없이 그저 정부비판적인 대사가 나왔다는 이유로 특정 연극에 낙인을 찍은 ‘그 기관’ 말이다. 너무 멀리 간 해석일수도 있으나, 사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이기도 하다. 뻔하고 뻔한 막장드라마와 러브스토리의 범람 속에서 굳이 6.25라는 한국 사회의 ‘뇌관’을 가져와 극을 마감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막이 내릴 때까지 지겨운 순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상업극의 가치는 충실히 지켜졌다. 재벌 2세와 러브라인을 등장시키며 관객의 ‘욕망’을 끌어올리기도 했고, 막장 서사로 ‘재미’의 극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시대를 갑자기 6.25로 돌려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하는 장면을 통해 극단 신세계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파괴적인 시대상에 대한 고발도 참신하게 이루어졌다. 황당무계한 부분이 많아도 테마가 ‘상업극’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두근두근 내사랑>은 상업극의 탈을 쓴 채 실험극으로 향하는 변증법적 여정이었다.
[사진: 신재환]
※ 본 원고는 지면의 길이상 편집자에 의해 수정이 가해졌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