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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극열전 <나무 위의 군대>

지켜보고 있다

김슬기_공연저술가
82호 2015.12.17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 왕국으로 불리던 독립국으로,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에 일본으로 편입된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45년 전쟁 중 미국과의 대치 상황에서 일본은 유일하게 이곳 오키나와에서만 지상전을 치렀고, 심지어 일본의 패전 이후 오키나와는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미군의 통치를 받게 된다.

(주)연극열전 <나무 위의 군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의 한 섬에는 적군의 공격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간 두 명의 군인이 있었다. 이들은 패전 이후에도 무려 2년간이나 그곳에서 내려오지 못했으며, 2010년 타계한 일본의 대표 지성,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는 이들의 실화를 모티프로 희곡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작품을 구상하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그 유지를 이어받아 호라이 류타가 완성한 희곡 <나무 위의 군대>는 과연 전쟁과 인간을 꿰뚫는 통찰력을 담지한 단단하고 힘 있는 수작이다. 허나 이 작품의 아주 근저에는 또한 지역과 국가, 민족을 건드리는 매우 섬세하고도 진지한 질문들이 드리워져 있으니, 기실 두 군인의 실화는 원안자인 이노우에 히사시가 생전에 세계를 향해 제기했던 모종의 의혹을 증명하는 소재로서 기능한다. 강량원 연출은 바로 이 질문들을 이해하는 것이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말하며, 오키나와의 근현대사를 풀어가는 것으로부터 <나무 위의 군대>를 소개했다.

이 섬을 구하고 싶어?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 왕국으로 불리던 독립국으로,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에 일본으로 편입된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45년 전쟁 중 미국과의 대치 상황에서 일본은 유일하게 이곳 오키나와에서만 지상전을 치렀고, 심지어 일본의 패전 이후 오키나와는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미군의 통치를 받게 된다.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본에 반환되긴 했지만 이곳엔 지금까지도 미군이 주둔해 있고, 오키나와 섬 사람들의 고통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무 위의 군대>는 바로 이런 곳을 배경으로 한다. 이노우에 히사시는 일본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했고, 사회에 발언하길 주저치 않았던 시대의 양심과도 같은 작가였지 않나. 이 이야기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던 것도 자국 내 각 지역과 중앙 정부 간의 관계나 정책 등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군인은 분대장과 신병이다. 분대장은 수많은 전장의 경험을 거쳐 이 섬에 오게 된 베테랑 군인으로, 단지 적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체에서 찾아낸 식량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만큼 적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 사로잡혀 있다. 이에 비해 신병은 이 섬에서 나고 자라 자원입대한 청년으로, 순수한 ‘삶’에의 의지를 앞세워 그곳이 전장이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해 분대장을 아연케 한다.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이유로 외딴 섬의 나무 위에서까지 전투를 이끌고자 했던 분대장은 점차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져, 급기야는 적군의 식량을 먹으며 간이 맞지 않다고 불평을 해대기 시작한다. 계절은 흘러흘러 나무 위에서 맞게 된 두 번째 겨울, 신병은 쓰레기 더미에서 이 전쟁이 이미 2년 전에 끝났다는 편지를 발견하고, 이제 분대장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진실을 자백할 수밖에 없다!

(주)연극열전 <나무 위의 군대>

그렇다면, 나무 위로 올라오라!

대부분의 이야기는 당연히, 두 군인이 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낸 나무 위에서 전개된다. 실제로 이들에게 나무는 은신처이면서 전략적 요충지이고, 삶의 터전이면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였을 것이다. 2013년 이 작품이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로 일본에서 초연되었을 때는 거대한 자연물로서의 나무를 무대에 세웠다고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 나무는 이미 인간에 의해 훼손된 영역으로 그려진다. 수직으로 내려뻗은 줄기와 가지로 시야를 압도하게 만들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순수한 본성마저 이용하려고 하는 인간의 권력과 그로 인해 폐허가 된 나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 역시 자연으로서의 나무를 생각했다. 현실로부터 고통당했을 때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자연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곳으로 도망갔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리고 돌아온다는 것은 분명, 그곳에서의 깨달음을 근거로 삼을 것이다. 이들이 2년간 나무 위에서 얻은 깨달음은 작품의 마지막에 “두 사람은 나무에서 내려왔다. […] 그러나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이 나무 위에 있다”라는 말로 압축된다. 도망가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계속해서 나무 위에서 지켜보고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품을 통해 파수(把守)의 나무를 얘기하고 싶었다

(주)연극열전 <나무 위의 군대>

이 작품에는 분대장과 신병 이외에도 두 군인의 실랑이 혹은 대립과 충돌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이노우에 히사시의 원안에는 들어 있지 않았으나, 호라이 류타가 극작을 하면서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동시대인들을 위해 새롭게 숨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나무 주변에서 전쟁을 겪은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으로서 여자를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이 작품은 오키나와라는 특정 지역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고 그것이 작품의 중요한 맥락을 형성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사유할 수밖에 없다. 분대장과 신병, 그러니까 이 연극에 나오는 ‘나무 위의 군대’는 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국가가 나를 버리지 않고 지원군을 보내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2년의 세월을 버텼다. 강량원 연출은 이 연극에 ‘무기는 들지 않았으나 평화의 군대로서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파수꾼의 마음’을 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 이 나무와, 나무 위의 군대와, 이 연극과 이 시대를 지켜보는 수많은 파수꾼들이 현실을 서성이며 응답할 차례다.

[사진: (주)연극열전 제공]

(주)연극열전 <나무 위의 군대> 포스터

일시
2015년 12월 19일~2016년 2월 28일 평일 8시, 주말·공휴일 3·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안
이노우에 히사시
작
호라이 류타
연출
강량원
출연
윤상화, 김영민, 성두섭, 신성민, 강애심, 유은숙
문의
02-766-6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