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반 <목련을 기억하다>(원제: 아버지)
두 개의 제목, 그리고 다시 찾지 못한 이야기의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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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하고 단란했던 가족에게 어느 날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불행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이로 인해 알츠하이머에 걸리는데, 아내가 죽었다는 것과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딸과 아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자식들은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아버지는 결국 죽은 아내와 작별인사를 나눈다. 이윽고 가족들은 새로운 희망을 맞이한다.
뮤지컬 <목련을 기억하다>의 내용은 이렇다. 이렇듯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갖고 어떤 공연을 만들어낼까? 프로그램의 내용 가운데 극단 스튜디오 반(叛)은 연극운동의 하나인 ‘이야기의 복권(復權)’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궁금증을 자극했다. 이러한 전제는 최근의 연극들이 이야기를 잃어버리거나 경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문제라는 가정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란 무엇이고 그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권세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 공연의 제목은 <목련을 기억하다>(원제: 아버지)이다. 특이하게도 ‘원제: 아버지’가 공연명 옆에 항상 따라붙으면서 두 개의 제목들을 함께 기억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아버지(장보규)는 목련으로 상징되는 아내(김선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3년 전 아내와 함께 죽은 목련나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믿음을 가진 채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무대 위에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위태로움이나 안타까움은 객석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무대 위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를 드러내고, 아들(이두열)은 직접적으로 ‘권위적인 아버지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라면서 아버지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는 자식을 대하는 권위적인 모습과 상반되게 아내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다정한 남편으로 묘사된다. 아내가 죽은 뒤 환상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할지라도 일관성 없는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극중의 다른 인물들과 섞이지 않는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있다. 노래하는 장면 이외의 대화하는 부분, 특히 자식들과의 대화에서 아버지는 상대방을 대상으로 두지 않은 채 이야기한다. 더욱이 아버지가 향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격렬하게 다투는 장면에서조차 서로의 입장은 애매하게 전달된다. 물론 이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극중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일관성 없는 성격과 더불어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표현, 상대방과 소통되지 않는 대화들이 계속해서 쌓여가는 탓으로, 이 작품의 원제인 ‘아버지’의 심리와 그가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길을 놓치게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까닭에 극을 채우는 풍성한 노래들과 더불어 멀티맨까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전체적인 템포가 느려지면서 가라앉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멀티맨(김영준)은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권투선수, 연극투자자, 출판사 기획자, 의사 등으로 변신하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수시로 등장한다. 그러나 주로 정보전달에 그치는 메신저 역할만을 수행하는데다가, 이 메신저들이 개연성 없는 상황 ― 이를테면 연극투자자가 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돈을 투자하며, 그 돈이 매우 갑작스럽고 쉽게 마련되는 등 ― 을 자주 가져다주는 까닭에 흥미를 유발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 공연은 뮤지컬이니만큼 음악을 통해 이야기의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피아노와 기타로 이루어진 라이브 연주와 딸(배수정)의 고군분투는 조금이나마 공연의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스튜디오 반에서 추구하는 ‘이야기의 복권’까지 이루어주지는 못한다. 아버지가 아내의 영혼과 만나 나누는 작별 인사는 너무 길게 반복되어 관객들이 아내를 충분히 떠나보낼 수 있는 시점 이후까지 이어진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주제로 한 연극 제목을 생각하다가 목련나무를 보고 무언가 떠오른 듯 ‘목련을 기억하다…’ 라면서 말끝을 흐리는 모습은 직접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인 수단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좋은 연기력과 가창력을 갖춘 배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음악과 연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연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모든 요소들을 조율하고 원하는 방향을 설정하여 의도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최근의 연극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몰라도, 무대 위에서 가치 있게 형상화되지 않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권세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코 스스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 스튜디오 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