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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즈 팩토리 <바냐 아저씨>

코스 요리 먹는 바냐 아저씨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84호 2016.01.21
안톤 체홉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이 무대에 오른다. 체홉이 서거한 지 110여 년이 지났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발아한 현대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토모즈 팩토리 <바냐 아저씨>

안톤 체홉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이 무대에 오른다. 체홉이 서거한 지 110여 년이 지났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발아한 현대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명작 중 <바냐 아저씨>는 특히 인기 있는 작품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일상적 대화가 흘러가는 듯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바냐는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감 때문에 고통 받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창작되곤 하는 <바냐 아저씨>가 이번에는 코스 요리를 먹는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현재 공연 연습에 한창인 극단은 바로 토모즈 팩토리다. 토모즈 팩토리는 일본인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가 이끄는 극단으로, 그동안 <사물의 안타까움성>, <공중의 방> 등을 한국에서 선보여 왔다. 독특한 감성으로 재기발랄한 공연을 만드는 노하우를 엿보고자 극단 토모즈 팩토리의 연습실을 찾았다.

출구 없는 일상

“<바냐 아저씨>라는 작품을 생각했을 때 어떤 한 집안에 갇혀 있을 때의 답답함, 폐쇄성이 떠올랐어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벌어지고 사람들이 관계를 맺어가죠.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은 엄마한테 반항하고, 엄마는 사위를 거의 사랑에 가까운 감정으로 대하고, 사위가 데려온 새 부인을 아들이, 그리고 의사도 사랑하죠.”-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

벌써 11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는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는 한국어로 의사소통 하는 데 능숙한 모습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바냐 아저씨>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작품이었다. 그런 가운데 돌파구가 아무 데도 없어 바냐는 결국 극한의 상태로 치닫게 되고 폭발하게 된다.

연출가는 이런 상황을 한 테이블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서양식 코스 요리를 먹고 있는 데 비유해 무대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공연 내내 실제로 배우들이 서양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귀찮고 익숙하지 않은 예절을 지키는 사이 인물들의 감정이 쌓여간다는 논리다. 마음대로 자리에서 빠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죽음을 앞둔 ‘최후의 만찬’ 같은 디너 코스를 먹는 게 곧 이 드라마의 상황이라는 게 토모의 생각이다.

쩰레긴이나 유모 마리나가 에피타이저와 스프, 메인요리, 디저트 등을 서빙하거나 접시를 치우기 위해 등퇴장 하는 것 말고는 한 명도 퇴장하지 않은 채 무대를 지킨다. 출구 없는 이 레스토랑에서 배우들은 견디다 못해 때때로 구토를 하고 음식을 쏟아내며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공연은 대체로 다성음악(polyphony)처럼 왁자지껄하게 흘러가지만 공연 중간중간에 느린 음악과 함께 나오는 슬로모션 장면, 조명 변화 등이 이들의 상황을 극대화해 포착하기도 한다.

토모즈 팩토리 <바냐 아저씨>

몽타주 같은 인생들

“원작에서는 한 사람이 말하면 다 못 듣지만 우리의 경우 작은 테이블에 가깝게 모여 있으니까 한 사람이 던지는 대사가 다른 등장인물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돼요. 그러다보니 누구의 말에 대해 안 듣거나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식의 반응이 생기죠. 원래 체홉 원작에서도 있었던 수많은 등장인물의 폴리포니가 여기서는 동시 진행되는 셈인데 이를 통해 체홉의 진면모를 확대하고자 합니다.”-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

이 연극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공연이 원작 속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출가 토모는 원작대로 볼 경우 체홉의 자연주의 연극적 특징, 체홉 특유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어 시간 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 속에 숨어 잘 안보이고 흘러가버리는 게 있다고 생각한 토모는 결국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순간순간에 포커스를 맞춰 대본을 재구성했다. 일종의 몽타주식 구성을 택한 셈이다. 이런 몽타주식 구성은 테이블에 앉아 꼼짝 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으로 극이 진행되다 보니 적용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작품은 크게 보면 1막부터 3막까지 하나로 합쳐지고 4막이 에필로그처럼 분리된다. 여기서 1~3막 사이 시간이 크게 어그러진다. 가령 교수가 온 가족을 불러 재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장면부터 극이 시작되는가 하면, 바냐가 어머니 마리야와 싸운 다음에야 교수가 다리 통증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이다. 견디기 힘든, 참을 수 없는 일상의 모습들이 잔뜩 나열된 후 4막 직전에 결국 테이블이 한 번 엎어진다.

마치 한바탕 소란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한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지 이 극은 마치 정물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구 없는 세상에서 몽타주처럼 얽혀 있는 각각의 인생들이 묘하게도 서정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사진: 토모즈 팩토리 제공]

토모즈 팩토리 <바냐 아저씨> 포스터

일시
1월 28일 ~ 2월 7일 평일 8시, 주말 4시
장소
대학로 아름다운극장
원작
안톤 체홉
재구성·연출
쯔카구치 토모
출연
송철호, 조한, 고영민, 안재범, 김수정, 김수아, 임예슬, 박옥출
문의
070-827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