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고전극장 2016 - 신화, 연극으로 만나다>
여기서 신들의 세상을 가지고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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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해마다 1월이 되면 소극장 산울림의 무대에는 젊은 연극인들이 읽어낸 소설의 문장들이 흘러넘쳤다. 오래 전 국어 교과서의 한 단락을 차지하고 있던 한국 단편소설에서부터 세계 문학사의 결작들까지, 이야기는 노래가 되어 극장 문틈으로 새어나왔고 작가의 목소리는 배우의 몸이 되어 무대를 누볐다. 고전의 ‘고전다움’이 동시대 무대언어를 입고 ‘끼를 부리자’ 모범 답안과도 같아 숨이 막혔던 ‘진리’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그렇게 젊은 연극인들은 지난 3년간 소설과 연극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산울림의 새로운 기획 시리즈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 그리고 2016년, <산울림 고전극장>이 ‘소설’을 재료로 한 첫 번째 기획을 마감하고 “신화, 연극으로 만나다”라는 주제로 그리스 고전들을 무대에 올린다. 그리스 고전이 어느 때고 공연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으랴마는, 여기는 <산울림 고전극장>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제 막 맹렬하게 창작 활동을 시작한 젊은 연극인들이 이 영원한 ‘고전다움’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 기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프로메테우스>
고전을 넘어선 극장
지난 1월 17일 이미 막을 내린 <산울림 고전극장 2016>의 첫 번째 작품은 공상집단 뚱딴지의 <프로메테우스>였다. 이 작품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전달한 죄로 영원히 고통 받아야 했던 영웅적 존재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지금 이 시대를 질문했다. 두 번째 작품은 이제 막 공연에 들어간 극단 해적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를 각색한 이 작품은 발칙하고 질펀한 해학과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통해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작품은 극단 달나라동백꽃이 선택한 <오레스테이아>다. 이들은 동시대 연극성을 화두로 ‘딸을 죽인 남편을 죽인 아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인 아들’이라는 비극의 내용과 그에 적합한 새로운 형식을 탐험한다. 마지막 작품은 창작집단 LAS가 무대화할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라는 창작극이다. 이 작품은 고전의 인물들을 모티프 삼아, 고대 그리스 여신들의 욕망을 오늘날 우리의 모습으로 풀어낸다.
전쟁을 끝맺는 여자, 뤼시스트라테
극단 해적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고통 받던 여성들이 종전을 위해 전개했던 평화 투쟁(?)을 시종일관 유쾌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젊고 아름다운 아테네의 여인 뤼시스트라테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여성들을 모두 불러 모아 남편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도록 독려한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은 아내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끝낼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파업 도중 욕정을 참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자들과 자신의 아내를 찾아 온 남자를 골려주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매우 노골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인간을 꿰뚫는다. 전쟁은 인간 탐욕의 또 다른 결과로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웃음은 결코 가볍지 않은 여운으로 그 위대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
‘성 파업’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황당한 설정이 재미있기도 했고,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작품을 고르기 위해 여러 고전들을 읽으면서 이 대사들을 그대로 무대화하면 몹시 지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우리의 말로 각색을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내용 자체가 많이 바뀌는 건 아니다. 대개 많은 희극들이 권력을 가진 자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결말을 이끌어내는데, 현실을 보여줄 필요도 있을 것 같아 철학자 니체를 등장시켰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권력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각색된 대본은 니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연출적으로는 빠른 전개를 활용해 이 작품이 가진 활기를 최대한 살려볼 생각이고,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면서 뤼시스트라테의 고뇌와 좌절 또한 드러내보고 싶다.
극단 해적의 황선택 연출은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의 모든 여자 등장인물들을 남자 배우가, 그리고 남자 등장인물들을 여자 배우가 연기하도록 만들었다. 성별을 바꾸면서 생겨나는 역할의 교란은 매우 가볍고도 영민한 방법으로 여자와 남자 사이에 발생한 이 기상천외한 파업의 치명적인 위험을 드러낸다. 소극장 무대에는 상자 몇 개만으로 뚝딱 아크로폴리스 성이 세워지고, 그 환영의 성을 둘러싼 그리스 고전의 코러스들은 극중에서 또 다른 연극을 만들고 있다. 난세다. 연극은 난세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연극은 그 난세가 끝나길 숨죽여 기다려야 하는지, 일어나 파업이라도 일으켜 내 손으로 그것을 끝내야 하는지 쉬이 선동하려 들지 않는다. 저항이란 결코 편한 선택이 될 수 없으므로. 그리하여 이곳 극장에는 어느새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만이 남아 신들의 세상을 가지고 논다.
[사진: 소극장 산울림 제공]

- 일시
- 1월 6일 ~ 3월 13일 평일 8시, 주말 3시
- 장소
- 소극장 산울림
- 문의
- 02-334-5915
공상집단 뚱딴지 <프로메테우스> 1.6~1.17
극단 해적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 1.20~2.5
극단 달나라동백꽃 <오레스테이아> 2.17 ~ 2.28
창작집단 LAS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3.2 ~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