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풍경 <방문>
집은 여전히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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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공동체다. 보통 가족이라 하면 ‘남’과는 다르게 특수한 관계를 맺고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남들한테는 말 못할 사정도 거리낌 없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도 정말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가족은 아직도 소통의 최전선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을까.

연극 <방문>은 허울만 남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근원적인 고독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미국에서 살면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기획하고 있는 진영은 목사인 형 진석의 연락으로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다. 연로한 원로목사인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된 진석은 동생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커피를 만드느라 부산하다.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흐르는 중 이 가족의 친한 이웃인 재희가 집을 방문하면서 안부를 묻고 형이 내일 어머니의 묘지를 이장해 납골당에 모신다는 것과 아버지가 교회에서 사건을 일으킨 후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진영에게 전한다. 또 진영의 옛 애인인 혜원이 건축가와 함께 집을 방문하면서 진영은 진석이 이 집을 팔려고 내놨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급기야 진석의 친구 변호사인 황우식이 방문하면서 이 집안의 속사정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재현’ 대신 ‘상징’으로 꾸민 무대
연극 <방문>은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기보다는 특유의 정서 혹은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이다.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작품이기에 박정희 연출가는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이 같은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가령 형 진석의 경우 현실적, 일상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부분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결국 배우 김정호가 낙점됐다. 건축가 김기호(김승철 분) 역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이중적인 분위기를 잘 가져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고심 끝에 골랐다.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와 자신이 몰랐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동생 진영(강진휘 분) 역의 경우 ‘쉽지 않은 역’이기에 도전해 보라고 주문하고 배우를 택했다는 전언이다.

희곡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막의 공중전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동쪽의 모하비 사막에 한때 실제 존재하던 공중전화가 그것인데, 지금은 철거됐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화번호가 공개되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다자간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영범 작가는 낯선 사람들이 이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터놓던 모습을 기억해내고 이를 작품 속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가져왔다. 동생 진영이 찍으려던 다큐멘터리가 바로 이 사막의 공중전화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진석과 아버지가 살고 있던 집이다. 줄곧 이 집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무대 위 집은 형태를 온전히 갖추지 않는 식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무대는 크게 세 가지 모티프만 부각된 형태로 디자인된다고 한다. 형제의 어린 시절 기억이 담겨 있는 트리하우스(사막의 공중전화 이미지와 닿아 있다), 극 내내 요리가 준비되는 부엌, 그리고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테이블 등인데 이 중 트리하우스는 온전한 형태를 보여주지 않고 상징적으로만 처리된다. 마치 나무가 있는 것처럼 배우들이 연기를 함으로써 트리하우스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표현한다는 전략이다.
집,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환기하다

무대 위에서 인물들은 요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지만 막상 서로에 대해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 극이 흐를수록 극명하게 드러난다. 집을 떠난 사람과 집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겹쳐지면서 무대 위 집이라는 이 공간은 이제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다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시점에 그 잊혀져 있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제 곧 처분될 이 집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가운데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마지막 빛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즉, 수년간 불통 상태였던 가족이 이 집에서 잠시나마 소통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다. 이 소통의 빛은 곧 소멸될 빛이어서 애잔함을 더한다.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내 가족, 내가 속한 공동체 안의 사람들을 얼만큼이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 하는 이 작품은 사실 준비과정에서 많은 부침을 겪기도 했다. 201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육성지원 사업이 검열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 선정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을 무대화해야 하는지, 아니면 보이콧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7개 선정작 전체를 무대화하든가 아니면 전체 공연팀이 보이콧을 하든가 하는, 두 가지 안을 두고 7개 공연팀이 회의한 결과 전체 작품을 무대화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박정희 연출가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창작산실이라는 지원 사업이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후 팝업시어터 검열 사태가 이어지자 후배 연출가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공연을 하는 게 사실 수혜라기보다는 어찌 보면 희생이라면 희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제작진의 마음이 이번 무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소통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 마케팅컴퍼니 아침 제공]

- 일시
- 2월 4일~21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2월7~8일, 월 쉼)
- 장소
- 대학로 아름다운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작
- 고영범
- 연출
- 박정희
- 출연
- 이호재, 김승철, 김정호, 김성미, 강진휘, 이서림, 김기범
- 문의
- 02-5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