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파수꾼 <택배왔어요!>
딩동, 노인 배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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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왔다. 우리는 택배 상자를 뜯어보는 설렘을 안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한참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에 익숙하다. 그런데 주문하지 않은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그 누구도 내게 보내줄 거라 미리 알려주지 않은 크고 묵직한 상자가 배달되어 왔다. 명백히 잘못 배달되어 왔으니 반송을 하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부랴부랴 택배를 보내온 곳에 전화를 해보니 상자 안에 내가 ‘분실’한 것이 담겨 있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준 것도 아니고, 내가 고른 것도 아닌데, 원래 내 것이었다 한다. 그 상자 안에 어머니가 들어 있다! 춥고도 추운 어느 이른 새벽, 어머니가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설마 우리 집에서 살려고?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 형편이 못 된다. 자신의 큰 아들을 필리핀에 유학 보내느라 큰돈을 들였기 때문이다. 막내 아들 방은 후끈거려서 땀이 날 정도로 보일러를 돌리지만, 자신은 냉골 같은 방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잠을 청한다. 어느 날 그런 아들의 집에 불쑥 어머니가 찾아들었다. 택배 상자에 담겨 옹송그린 채 눈을 꿈뻑꿈뻑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며느리는 말한다. 당신 아들 속이 새까맣다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내주겠다고, 마트에 가서 새 상자를 가져오겠다고. 뱉어지는 말은 잔인하지만 며느리의 태도가 퍽 상냥하고 아들 가족의 처지 또한 딱해서 이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감각해야 할지 황망하다. 연극 <택배왔어요!>에는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매정한 자식들이 등장한다. 연출가 이은준은 이 작품을 통해 현실의 노인 문제가 직면한 ‘불투명함’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한다.
노인을 버리거나 같이 살지 못하는 게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겠지만 결국은 어떤 식의 윤리 의식이 무너진 거다. 이를테면 존속살인 같은 범죄도 이제는 너무 빈번히 일어나 그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마저 무덤덤해지고 있지 않나. 나는 인간이 그렇게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연극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일흔이 넘은 어머니를 젊은 배우가 연기하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노인들 또한 그들의 인생이 있었을 테고, 극 중 아들과 마찬가지로 자식들을 사랑으로 길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결국 늙어 간다.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각박해진 세상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반송하지 마세요
어머니를 택배로 보내준 곳은 분실노인센터다. 분실된 노인들을 보관하다가 연고지를 알아내 배달해준다는 이 기관은, 물론 작가의 현실 인식이 만들어낸 가상의 산물이다. 이들은 센터가 포화 상태가 되기 전 보관 중이던 노인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다. 굳이 새벽에 노인들을 발송하는 이유는, 대낮에 택배가 도착하면 보는 눈이 많아 창피하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받는 이들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직원의 말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하지만 대개 가족들은 상자를 열어보기도 전에 잘못 보내왔다고 항의 전화를 하거나 부모임을 확인하고도 반송을 해버린다. 그런가 하면 아예 그곳에 부모를 갖다 버리는 자식들도 많아 센터 직원은 이미 이런 일들에 이골이 나있다.
트로트 가요풍의 통화연결음이 울리면, 무대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예의를 갖춰 큰절을 올리는 센터 직원이 등장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른 공경의 대표 모범사례라도 되는 양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 태도는 이 장면 전체의 정조를 매우 기묘하게 뒤틀어 보여준다. 어머니를 돌려보내려는 아들 며느리와 반송을 막으려는 직원의 통화 내용은 점차 과격한 양상이 되어 가고 이제, 분실노인센터의 직원은 완전히 무대 한가운데를 장악한다. 현실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냉소를 대변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객들의 혼란은 배가되고, 그 사이 택배 상자는 도대체가 그 종적이 모호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차가운 창고와 복도를 오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강아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데
이 작품의 또 다른 관극 재미는 이들이 키우는 강아지로부터 비롯된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순 없지만 강아지는 애지중지 키우는 가족. 택배 상자가 배달되면 이내 컹컹 짖는 강아지 소리가 이 불길하고 쓸쓸한 비극의 서막을 예고한다. 부부의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키가 큰 남자, 그가 바로 이들이 키우는 ‘아지’다. 배우가 연기하는 ‘아지’는 내내 가족들의 주위를 배회하며 앉고 기고, 심지어 사람처럼 일어서 무대를 활보한다. 간신히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택배 상자 속 어머니는, 이 키가 큰 흰 털 강아지에게 밀려난 작고 더러운 노인일 뿐이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 녀석에게 말 한 마디 붙여볼 수 없는 노인의 처지가 말 그대로 ‘개만도 못하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아니, 어쩌면 유기견보다도 못한 인생이다.
요즘은 키우던 개가 죽어도 장례식을 치러준다. 하물며 부모가 함께 살지 못한다면, 사정상 그럴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쏟으면서도 정작 나에게 사랑을 주는 누군가에 대해서는 쉽게 무심해진다. 이 작품에서는 반려견과 어머니를 강렬하게 대비시켜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대화하려고 했다. 실제로 반려견은 제 주인이 돈이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이 사랑받는 만큼 주인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나. 인간이 지켜내지 못한 가치들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개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가 아닌 소리와 표정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도 큰 도전이자 숙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택배로 배달되어 온 어머니는 상자 밖으로 나와서도 아들 앞에 떳떳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무대 위에는 등을 꼿꼿이 펴고 앉은 아들이 있고, 굼벵이처럼 침낭 속에 몸을 숨긴 어머니가 있다. 노인은 자식 앞에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고 자식들의 기억 속에 희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택배 정도가 도착해야 그나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택배 상자 속 노인이 이 겨울의 추위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진: 극단 파수꾼 제공]

- 일시
- 2월 12일~28일 평일 8시, 주말 5시, 월 공연 없음
- 장소
- 노을소극장
- 작
- 이미경
- 연출
- 이은준
- 출연
- 박완규, 우정원, 김병건, 이현직, 심재현, 신사랑, 나영범, 남선우
- 문의
- 070-8197-7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