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삼풍백화점>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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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풍백화점』은 정이현 작가가 ‘문학동네’로부터 계간지에 실을 ‘자전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작품이다. 2006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는 1995년 6월 29일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한 작가의 기억이 담겨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사건에 대한 소설, 사고 발생 후 10년을 넘긴 시점에 쓰인 소설이 올해는 연극으로 옷을 갈아입은 채 무대에 오른다. 연극 <삼풍백화점>을 쓰고 만드는 이는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의 이연주 연출가다.
이 사건이 현재 시점에 다시 호출된 이유는 비단 지난해로 20주기를 맞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재(人災)’로 불리는 대형 사건 사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삼풍백화점 사고는 2016년 오늘,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건까지 떠올리게 한다. 연극은 정이현 작가의 원작에서 삼풍백화점이라는 모티프를 따오지만 소설과 조금 다르게 변형됐다. 연출 외에 각색도 함께 맡은 이연주 연출가는 해당 사고로부터 거리를 두고 성찰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모색한다. 목표는 하나, 사건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 무대를 빌려 묵상하게끔 이끌기 위해서다.
다른 듯 같은, 현실의 조각들

작가인 화자는 출판사 직원으로부터 ‘무언가’를 ‘기억하는’ 글에 대해 청탁을 받는다. 깊은 고민 끝에 작가는 삼풍백화점 사고 전후의 이야기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삼풍백화점에서 일하던 친구 R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사고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도 수집한다. 극 말미 출판사 직원은 작가에게 처음에 요청했던 이야기와 다르지만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면서 본래 요청했던 이야기 또한 언젠가는 완성해달라고 말한다.
연극은 삼풍백화점 사고에만 초점을 맞춘 원작 소설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형식 면에서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다양한 시점의 중첩이 아닐까 싶다. 원작 소설에서는 화자의 마지막 시점이 2005년이다. 그러니까 소설 속 화자는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를 회상한 셈이다. 작년에 초연을 거친 이 연극은 그로부터 또 10년이 훌쩍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그 사고를 바라본다. 2015년의 내가 연극 속 화자가 됨으로써 시간차가 좀 더 확장되고 이로써 그 사이 벌어진 또 다른 사건 사고인 세월호까지 포개어진다.
시간이 겹겹이 쌓이는 와중에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음이 분명해진다. 안전 불감증, 탐욕적 자본이라는 우리 사회의 치부는 여전히 가려지거나 치유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다. 치부가 곪아 빚어낸 최근 가장 큰 사고는 바로 세월호다. 이 같은 상황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위해 연극 ‘삼풍백화점’에서는 화자인 작가가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은 후인 2015년에 소설 집필 청탁을 받는 것으로 설정됐다. 직접 언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청탁 받은 소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소설을 쓰기 주저하는 화자의 모습은 다름 아닌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내상을 입은 우리의 모습이다. 결국 소설가 화자는 세월호에 대해 차마 쓰지 못하고 대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삼풍백화점 사고에 대해 간신히 써 내려간다.
원작 소설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성수대교 사고가 연극에는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연극 속에는 인물들이 삼풍백화점 사고 직전에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1년 전 사고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R의 자취방에서 화자와 친구 R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다가 문득 성수대교 사고를 기억해낸다. 자신들이 통학을 위해 오가던 다리 위에서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졸업 이후 사고가 나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의 앞에는 삼풍백화점 사고가 기다리고 있다. 이 모습은 각종 대형사고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나도 모르게 조금은 무뎌지고 있던 마음에 묘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기억의 자리

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사건 사고를 기억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군다나 오래된 사건 사고에 대해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첫걸음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삼풍백화점에 대한 기억을 이 시점에서 무대화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극 <삼풍백화점>은 단순히 아픔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억의 가장 적절한 방식을 모색하고자 한다. 공연팀은 관객으로 하여금 적절한 거리에서, 적절한 태도로 기억하기를 권유한다. 기억하기 위한 방법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려는 의도는 연극적 형식으로 드러난다.
무대에는 화자인 ‘나’의 현재 공간, 친구 R의 자취방, 놀이터 등 여러 공간들이 공존한다. 그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것이 바로 삼풍백화점 내 매장이다. 백화점 내 매장을 제외하면 공간들은 서로 교차하며 중첩되기도 한다. 이들 공간은 다름 아닌 기억이라는 이름의 방이다. 극은 시종일관 무겁게 흐르지만은 않는다. 인물들은 각각의 공간에서 때론 유쾌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즐겁게 일하기도 한다. 나의 기억이라는 게 항상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무대다.
역설적이게도 인물들이 무대에서 빠져나갔을 때 비로소 사라진 사람들이 선명히 보인다. 공간마다 인물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한두 개씩 남아 있는 가운데 배우들의 소리가 맴도는 무대는 그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차분하게 기억하고 묵상하도록 한다. 사람 없는 무대는 동정 어린 시선이 개입할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데, 이로써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괴롭지 않도록 배려한다. 연극 <삼풍백화점>이 아마도 가장 초점을 맞추려 하는 부분은 관객으로 하여금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남겨진 이들과 같이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에 집중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사진: 컬쳐버스 제공]

- 일시
- 2월 24일~3월 6일 평일 8시, 주말 4시(쉬는 날 없음)
-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 원작
- 정이현
- 각색 ·연출
- 이연주
- 출연
- 우미화, 백성철, 유명상, 박수진, 윤미경
- 문의
- 070-827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