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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씨어터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희생양이 필요한 사람들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87호 2016.03.11
살기가 점점 팍팍해진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지만 도심에는 정착하지 못한 채 외곽으로 내몰린다.


살기가 점점 팍팍해진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지만 도심에는 정착하지 못한 채 외곽으로 내몰린다. 어쩌다 일거리를 얻는다 해도 그저 근근이 먹고 살아갈 수 있을 뿐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열심히 노력해봐도 원래 바라던 삶과는 점점 멀어지고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만 쌓여간다. 이럴 땐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해진다. 내 안에 쌓인 분노와 좌절을 쏟아낼 대상, 나를 정화해줄 희생양이.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는 이와 같은 도시인들의 막다른 삶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극의 배경은 도심 외곽의 어느 한 빌라다. 몇 달 사이 이 빌라 주변의 고양이들이 계속 죽어 나가자 주민들은 대책 회의를 소집한다. 평소에는 말 한 번 제대로 섞을 일 없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때마침 옆 동네에서는 여대생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이 이곳 주민들까지 탐문 수색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빌라 주변의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가 바로 그 살인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주민 대책 모임에 오지 않은, 301호에 혼자 사는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바탕 소동 속 벌어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특별하게 기괴한 분위기를 내는 캐릭터를 찾지는 않았어요. 공통점은 심성이 착한 배우들이라는 거? (웃음) 다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느낌인데 약간 자기 개성이 있는 배우들을 찾으려 했습니다. 배우들의 개성, 특징을 잘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배우들 이 평소에 했던 역할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동선 연출가


극 중 인물들은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를 찾아 나서는 빌라 주민들이다. 피해의식에 찌들어 독이 잔뜩 오른 모습을 연기할 것이라 상상했지만 연습실에서 본 배우들은 의외로 일상적인 스타일로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평범함이 일종의 강박으로 비치기 시작한다. 평범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 때문에 되레 평범하지 않은 선택들을 한다고나 할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대동단결해 단 한 명의 희생양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낸다.


2013년에 대전에서 공연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장르적 글쓰기에 능한 석지윤 작가의 작품이다. 이동선 연출가와는 2014년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를 통해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 연출가는 석 작가에 대해 “끝까지 달려가 버리는 글쓰기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석 작가의 사이코패스 3부작 중 하나라는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는 블랙코미디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좀 더 섬세한 연기, 정교한 연출이 요구된다. 상황에서 비롯되는 코미디적인 요소와 인물들 자체가 지닌 성격 희극적인 요소가 무대 위에서 절묘하게 드러나야 제대로 빛을 발할 작품이다.


배우들과 연출가는 이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현재 연구 중인 것은 사실적인 연기를 하다가도 중간중간 낯설게 하는 기법을 삽입하는 전략이다. 덕분에 극은 한바탕 우스운 소동극처럼 흘러가다가도 인간의 본성, 본질에 대한 사색으로 이끄는 지점들을 갖추게 된다. 공연은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그저 이야기를 따라 흘러가지만, 팍팍한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점차 공격적으로 변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곳을 출구 없는 지옥으로 만든다.



낯설게 되는 그 순간에 주목하다


“알지 못한 대상에 대해 공격적이 되는, 낯설어지는 그 순간을 보고 싶어요. 강박적으로 갖게 되는 속성에 관한 것도 무대를 통해 보고 싶고요. 그래서 공연이 시각적으로도 조금 더 디자인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동선 연출가


배우들은 사실적인 연기를 하다가도 때때로 갑자기 낯선 모습으로 돌변하는데, 가령 외부의 소리가 들려올 경우 민감하게 반응해 슬로 액션을 선보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극의 바탕이 되는 희곡이 문학적으로 두터운 겹을 지닌 문장으로 된 텍스트라기보다는 전체 흐름이 하나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텍스트에 가까운 만큼, 연출가는 이 텍스트의 빈 구석을 연출적으로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배우의 움직임을 적극 활용해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이 연출가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무대의 전체적인 개념으로 잡은 ‘쥐 굴’이라는 키워드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극대화된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 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바로 무대 위 움직임의 원리가 된다. 즉,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어떤 위협이 다가오면 잽싸게 모여드는 굴 속 쥐의 속성들이 배우들의 움직임에 그대로 반영되는 식이다. 또 무대에 놓인 아홉 개의 의자를 둘러싼 배우들의 움직임은 마치 의자를 차지해야만 살아남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빌라 주민 역의 배우들은 사실적인 재현의 방식을 피하는 대신 이들이 느끼는 강박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 공연은 절망적인 삶의 조건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이유들을 탐색하는 대신, 그들이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모습 그 자체를 조명한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절망스러운 상황 그 자체에 대해 먼저 인정하는 것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 제작진의 생각이다. 이 같은 사고와 전략은 이동선 연출가가 이끄는 몽씨어터의 전작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이들이 몸부림치는 순간을 우리는 우리의 모습으로써 자각할 수 있게 될까. ‘저 사람들 힘들게 사는구나’라는 연민이 문득 ‘내가 저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포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극장에서 확인해보자.



일시
3월 9일~4월 3일 평일 8시, 주말 4시(화 공연 없음)
장소
연우소극장
작
석지윤
연출
이동선
출연
이황의, 김수보, 리우진, 이한일, 백운철, 장이주, 최명경, 황무영, 최영화, 심원석, 심연화
문의
070-4233-7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