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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극단 골목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웃어버리기엔 이미 너무 비통하다

김슬기_공연저술가
87호 2016.03.11
이 작품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논쟁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가 ‘평화’를 유지해온 방식과 그에 응답해왔던 대한민국의 ‘초상’을 직시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이 작품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논쟁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가 ‘평화’를 유지해온 방식과 그에 응답해왔던 대한민국의 ‘초상’을 직시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2015년 한국의 탈영병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1945년 일본 오키나와의 조선인 가미카제, 2004년 한국인 선교사를 납치한 이라크 무장단체, 그리고 2010년 서해 백령도의 천안함 장병들을 오가며, 그 있을 법한 논쟁의 불씨를 댕기기 위해 몹시 영민한 권능을 휘두른다.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없었던 셈 칠 수는 없으니 서둘러 덧붙이자면, 밝히건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창작산실’ 검열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작품이다.



죽음을 향해 있는 군인들


2011년에서 2015년 사이 한국에서는 매일 평균 1.6명의 탈영병이 발생했다는 통계가 있다. 여기, 중무장을 한 채 근무지를 이탈한 한 탈영병을 찾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그때, 마치 그 통계 수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비상이 걸린 검문소에 나타나 장교에게 총을 겨누는 또 다른 탈영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제대를 한 달 남겨둔 어느 날 탈영을 결행한 말년 병장의 ‘희한한’ 사연으로 그렇게 막이 오른다. 허나 그 ‘희한한’ 사연의 전말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 연극의 시간과 공간은 1945년으로, 이라크 팔루자로, 2010년으로, 가고시마로, 2004년으로, 잠수함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쩌면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어느 익숙한 거처 주변으로 뻗어 나가고, 연극 속 군인들은 매순간 너무도 충실하게 죽음을 향해 진격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곳에 쫓기듯 도착해보니, 아까의 그 탈영병이 거기 멈춰서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의 군인들이 현실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과 그들 각자가 상황을 타개해가는 태도는 매우 미묘하게 그 결을 달리한다. 하여,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군인들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틈새를 파고드는 일이다. 연극을 본 관객들은 특정 개인을 정당화하거나 옹호, 변명하기도 힘들 테지만, 그렇다고 사회나 국가, 시스템만을 탓할 수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뿐이라고 무기력하게 현실을 개탄하는 것도, 나 아닌 다른 이의 불행을 그저 연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등장하는 모든 군인들은 허구의 인물임에 분명하지만, 그 중 우리가 생판 모르거나 감히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그런 처지에 놓인 이들은 아무도 없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러니, 장면 장면을 속단하지 말고 그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지금은 웃을 수가 없다


당신이 만약 그간 박근형 연출이 만들어왔던 무대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연극을 보고난 직후 ㅡ작품이 이야기하려는 바와는 별개로ㅡ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무언가 배신당한 듯한 기분을 쉬이 떨쳐내기 힘들 것이다. 그 어떠한 현실의 부조리에도, 역사의 아이러니에도 보란 듯이 착착 감겨 허구와 실재의 다리를 놓아주었던 ‘박근형표 웃음’이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선 거의 완벽하게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연극의 무대 위엔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사람들, 더 잘살고 싶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죽음을 목도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웃음의 자리를 비통함과 맞바꿔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귀 기울이게 되는 진혼곡, 어쩌면 세상 모든 군인들을 위한 애가(哀歌)가 바로 이 연극이다.

남산예술센터는 공연 개막에 맞춰 <모든 군인은 불상하다>의 희곡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주말 공연이 끝난 후에는 작가 장정일과 함께 함성호, 정희진, 조선희, 김규항, 안치운 등 각계 인사들이 돌아가며 대담을 이어가는 ‘장정일의 연극읽기’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채 막이 오르기도 전, 이 작품이 오는 10월 ‘페스티벌/도쿄(Festival/Tokyo) 2016’에 공식 초청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 마침내 연극이 시작되려 한다.

일시
3월 10일~3월 27일 평일 8시, 주말 3시(월 공연 없음)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작ㆍ연출
박근형
출연
장연익, 박윤희, 강지은, 한윤춘, 성노진, 임진웅, 서동갑, 고수희, 권태건, 이원재, 오순태, 이호열 외
문의
02-758-2150

※ ‘장정일의 연극읽기’ 세부 프로그램 일정 및 내용은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www.nsartscenter.or.kr 확인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