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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혜화당 <셰익스피어를 뒤집多> & <제2회 극장나무 쿱 페스티벌>

소극장 페스티벌의 꿈

채민
88호 2016.03.24
요즘 연극계의 ‘페스티벌’은 ‘연대’와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적인 장치 없이(이것이 경제적인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던, 의도적인 것이던 간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극단이 모여 일정한 기간 내에, 일정한 공간 안에서 공연을 올린다. 연대한 창작자들은 개별로 존재할 때보다 조금 더 일정한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이...

요즘 연극계의 ‘페스티벌’은 ‘연대’와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적인 장치 없이(이것이 경제적인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던, 의도적인 것이던 간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극단이 모여 일정한 기간 내에, 일정한 공간 안에서 공연을 올린다. 연대한 창작자들은 개별로 존재할 때보다 조금 더 일정한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이렇게 마련된 자리에서 페스티벌의 의도는 다양한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 내기에 ‘페스티벌’(혹은 ‘연대’)의 형태는 효과적으로 보인다.

<짐승가>

소극장 혜화당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셰익스피어를 뒤집多>
- 극단 브레드 히트, 사무엘 바게뜨 <짐승가>

<월요낭독극장>, <아오병잉 페스티벌>에 이어 <셰익스피어를 뒤집多>를 보기위해 ‘소극장 혜화당’을 다시 찾았다. 연극인이 연대하여 만든 이 공간을 ‘페스티벌 전용극장’으로 만들겠다고 한 것은 이곳을 ‘페스티벌 하는’ 즉 ‘연대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중한 공간에서 오늘 뒤집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햄릿>이다. 덴마크 엘시노어의 성 대신 도축 사업장 ‘세방 유통’이 극의 배경이다. <짐승가>는 고위 권력층의 인간 세탁 처리 시설 ‘세방 유통’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이야기다. 원작에서 아버지의 유령에 얽매였던 햄릿은 이곳에서 약에 취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환각에 시달리는 ‘해인’으로 치환된다. 창작과 각색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극은 해인의 대사에 파편적으로 삽입된 햄릿의 대사에 의해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힘을 상징하는 ‘고위 권 력층’이라는 단어의 추상성과 단순함이 반복되는 점도 아쉬웠지만, 전반적으로 흡인력 있는 구성을 가진 <짐승가>였다.

<눈물 맛은 짜다>

제2회 극장나무 쿱 페스티벌 ‘듣는 희곡의 즐거움 – 낭독으로 깨우다’
- 극단 무지개 연인들 <눈물 맛은 짜다>

의자만 가지런히 놓인 빈 무대.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 남자아이가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배우가 등장하면 웅성이던 공간은 극이 제시하는 시간을 따르기 시작한다. 남자 아이의 흉내를 내는 여배우의 연기가 다소 과장되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이의 말에 따라 집안 식구들이 하나 둘씩 등장한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중학생 누나, 몸이 불편한 아빠, 생활에 찌든 엄마,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 한 식구가 된 할아버지. 그들은 소소한 사건들과 그로인한 갈등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확인한다. 이 전형적인 가족극에서 인상 깊은 것은 배우들의 모습이다. ‘이 공연은 낭독극 입니다.’를 보여주기 위함이 전부인 듯, 들고 나온 대본은 들춰보지 않는다. 극 중 서로 만나야 하는 인물들은 정육면체의 상자를 잘라 평면으로 나열한 듯 모두 관객을 향해 있다. 이러한 낭독극의 형식 때문에 매순간 관객은 등장인물의 상대역이 된다. 사춘기 딸의 투정을 받기도 하고, 피곤한 엄마의 푸념 섞인 잔소리를 듣는 자식이 되기도 하며, 위신이 서지 않는 할아버지의 자신감 없는 호통을 듣는 며느리가 되기도 한다. 대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배우들의 열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짐승가>

두 페스티벌은 예술가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자 창작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기획사 및 협동조합에 의해 기획되고, 그들이 공유한 소극장에서 제작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관의 후원을 받지 않은 독립적인 플랫폼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연극을 제작하는 창작자들의 모임이다.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조건이 생겨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속 가능한 연대가 가능하도록 창작자 스스로 발전을 꾀하고 관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남은 숙제가 되겠다.

거리와 소극장을 연결하는 길은 으레 좁고 가파르다. 그게 위로든 아래로든. 연극을 보고자 혹은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사람들은 좁고 어두운 공간으로 꾸역꾸역 기어들어간다. 이 좁은 연결공간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비장해지거나 비천해짐을 느낀다.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에 대극장의 상업주의연극과 기성 연극에 반대하여 소극장을 중심으로 벌였다던 ‘소극장운동’이 떠오른다. 요즘 연극계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이(혹은 연대가) 지원제도와 검열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연극 운동으로 일어나는 꿈을 꾼다.

[사진: 각 축제 사무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