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미인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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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극계에서 극단의 자생력이 화두다. 계기는 외부에서 주어졌다. 최근 벌어졌던 일련의 예술검열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순수예술에 대한 국가 지원이 순수하지 않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다는 게 알려졌고, 이 사실은 창작자들로 하여금 그 배제의 대상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했다. 요즘 창작자들 마음 속 질문 중 하나는 아마도 대강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극단은 과연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자생력이 화두가 된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검열은 비단 위로부터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알게 모르게 창작자들 사이 자기검열이 횡행하기도 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예술의 자율성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새롭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 됐다. 극단 미인의 최근 움직임도 이와 무관하지 않게 보인다. 김수희 연출가는 ‘자력갱생 프로젝트’라는 제목 하에 연우소극장에서 ‘죽음과 소녀’, ‘당신의 손’ 등 두 편의 공연을 연달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연극 본연의 정신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되 극단 보유금과 관객수익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예정이다.

저항정신으로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원래 정해균, 김은희, 전중용 배우와 함께 스터디를 하던 작품이에요. 세 명의 선배가 먼저 스터디를 하고 있었고 제게 연출자의 시각이 필요하니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 합류하게 됐죠. 스터디 후 독회 형식으로 발표하고 끝내려 했는데 정해균 선배가 드라마 '시그널' 출연 이후 바빠지면서 결국 스터디는 한 달밖에 못 갔어요. 근데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올리자'고 준비하다가 정선철 배우가 합류하게 됐습니다. 정해균 배우가 빠진 것은 아쉽지만 덕분에 또 정선철이라는 좋은 배우와 함께 좋은 작품을 올리게 됐죠.” -김수희 연출가
현재 극단 미인은 연극 <죽음과 소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소설가 겸 희곡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유명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군부독재를 경험했던 칠레의 현실을 토대로 쓰여진 이 희곡은 기억과 용서의 문제를 다룬다. 극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과거 고문에 시달렸던 한 여성이 자신을 고문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먼 훗날 대면하게 되면서 겪는 일련의 사건이다. 극의 공간적 배경에 대해 ‘장소는 칠레일 수 있지만 칠레와 같이 오랜 독재정권 이후 민주정부를 세운 어떤 나라도 될 수 있다’고 설명한 작가의 말 때문일까. 이 작품은 이미 여러 차례 한국에서도 무대화돼 관객을 만났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희곡을 통해 ‘인간에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과거가 되풀이 될 위험을 방지하면서 어떻게 과거를 극복할 것인가’ 등을 고민한다. 하지만 극단 미인의 이번 공연은 원작의 줄거리를 대부분 따르되 이와는 조금 다른 곳에 방점을 찍으려는 듯하다. 연습실에서 만난 김수희 연출가는 이 작품 속 여자 주인공 빠울리나의 저항 정신에 무게 중심을 좀더 두려 하고 있었다. 독재정권 하에서 벌어진 과거 악행을 조사하는 인권위원회 대표인 남편 헤라르도로 대변되는 과거사 해결방식이 결국 ‘쉬운 해결’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더욱 강조되도록 공연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으로도 워낙 유명한 작품인데다, 종전 무대에 올랐던 극단 미추나 양손프로젝트의 공연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터라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공연팀은 ‘희곡이 너무 멋있어서’ 그냥 돌진하는 중이다. 김수희 연출가는 “제작금이 적어 대부분 비어 있는 무대로 간다. 배우들이 채우는 공연”이라며 “모쪼록 관객들에게 환기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번 ‘자력갱생 프로젝트’를 계기로 다음 10년을 준비한다는 극단 미인은 그동안 연출가 1인에 배우들이 유동적으로 합류했던 형태에서 벗어나 앞으로 배우들과 함께 하는 명실상부한 극단의 형태로 거듭난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사진: Play for Life 제공]

- 일시
- 4월 28일~5월 8일 평일 8시, 토 7시, 일 3시, 화 쉼
- 장소
- 연우소극장
- 작
- 아리엘 도르프만
- 연출
- 김수희
- 출연
- 김은희, 전중용, 정선철
- 문의
- 010-2069-7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