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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킥오프 파티

유쾌한 풍자를 환영합니다

김우영_이음출판사 편집자
91호 2016.05.12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의 킥오프 파티가 열린다는 연락을 전해 듣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당일 예정된 일정이 있었지만 발길을 돌려 대학로로 향했다. 연우소극장은 이런저런 연극 관람을 위해 가본 적이 있는 터였다. 도착하자 연극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바깥에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자리에 앉자 곧 킥오프 행사가 시작되었다. 결...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의 킥오프 파티가 열린다는 연락을 전해 듣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당일 예정된 일정이 있었지만 발길을 돌려 대학로로 향했다. 연우소극장은 이런저런 연극 관람을 위해 가본 적이 있는 터였다. 도착하자 연극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바깥에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자리에 앉자 곧 킥오프 행사가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모처럼 유쾌한 동네에 다녀왔다.
극장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이게 대단한 파티였나’ 하고 조금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수가 관계자였다는 건 사정을 몰랐던 나에게 반전이었지만.) ‘킥오프’라는 딱딱하지 않은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권리장전’이라는 제목에서 엄숙한 기자회견을 상상했던 내 예상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첫 번째 순서인 뮤직비디오가 나오자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어머니가 누구냐는 노래를 패러디했는데, 센터장이 누구냐며 검열이 그렇게도 좋냐는 후렴구가 입에 착착 붙었다. (이 영상을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권리장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우리는 안다”라고 시작하는 참여 극단의 공동 성명문 낭독은 자못 진지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일어나 한 문장씩 읽어내려가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제각각이고,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는 조금씩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극장 안에서 극장 밖으로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절절히 다가왔다. 굴욕감마저 느끼게 하는 불합리한 행위, 싸워보려 해도 그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나서지 않으면 미래의 연극인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이들을 불러모은 것이리라.

6월 2일부터 10월 30일까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총 21개의 연극이 대학로 연우소극장과 인근 거리에서 열린다. 20개 극단이 만드는 연극이 어떻게 다르면서 같을지 나는 성명문에서 단서를 찾아보았다. 성명문의 “누군가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참견을 하려 든다면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입을 꼬매버리겠다.” “사랑을 믿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검열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야만 행위이다.”와 “검, 검열 (중략), 열, 열라 싫다.”까지 같이 읽으면 이 글이 철학적으로 읽힌다. 사랑을 믿기에 검열에 저항하고,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끝까지 끈질기게 야하게 연극으로 말하겠다는 연극은 대체 어떨지 남다른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유쾌함을 접한 적이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떤 기관의 대표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한 의혹에 대해 사람들이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항의 시위를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모 작가가 손수 만든 피켓이었다. 그 피켓에는 ‘개실망’이라는 세 글자가 분홍색 글씨로 매우 예쁘게 쓰여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작가는 항의 시위 이후 몇 차례의 공모에서 떨어졌고 하던 지원사업마저 진행하기 어려워졌다. 어쨌든 나는 이 문제적 피켓이 작품이라면 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버렸다. 진지하고 예쁜 궁서체에 완성도가 높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재밌어서 보면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피켓이었던 것이다.
모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문제제기에 대해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킥오프에서 봤던 뮤직비디오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가사이기도 했다. 연락이 안 돼 통신사가 어디냐고 묻는 것은 어떤 결정에 대한 입장을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상황에 대한 설명처럼 보였다.

풍자는 인간이 가진 고유 문화이고 우리 일상에서는 신문과 잡지에 빠지지 않고 실리는 코너가 될 정도로 자리 잡았다. 신문의 풍자 만화가 재미없을 때는 내용이 유쾌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함부로 우습게 만들 때이고, 재미없는 풍자를 건너뛰는 습관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재미없는 풍자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현실에 대해 비꼬기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 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한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연기력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재밌는 질문이라면 응했을 텐데, 대답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갈했다. 풍자가 불쾌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혹시 여유가 없으신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건강함이란 이러한 여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권리장전 킥오프에서 그러한 건강함을 충분히 느꼈다. 권리장전에 참여하는 연극인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어려운 주문이 될지도 모르겠다.
재밌게 만들어 주세요. 꼭 보러 가겠습니다.

[사진: 김명집 www.facebook.com/4ever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