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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플레이 테제21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

잊지 않았어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김슬기_공연저술가
93호 2016.06.09
지난 한해 연극계는 검열을 살아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저항했으며, 그러면서도 내내 그 안에 있었고, 여럿이 되었다가 자신으로 돌아왔다. 절절했지만 유쾌했고 분노하면서 상처받았다. 지금 이 시절, 현실의 너무 많은 문제들이 그러하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대답하지 않는 자들, 지치고 지쳐서 사태가 저절로 잠잠해지...

지난 한해 연극계는 검열을 살아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저항했으며, 그러면서도 내내 그 안에 있었고, 여럿이 되었다가 자신으로 돌아왔다. 절절했지만 유쾌했고 분노하면서 상처받았다. 지금 이 시절, 현실의 너무 많은 문제들이 그러하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대답하지 않는 자들, 지치고 지쳐서 사태가 저절로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자들 앞에 자꾸만 무력해진다. 피로도는 쌓이고 바뀌는 것은 없는데 당장의 내 삶을 살아야 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위에는 지켜보고 싸워야 할 비리와 부패들이 끝도 없이 쌓여간다.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는 그런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연극인들의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멀리 보고 가겠다는 약속을 담은 사뿐한 첫 걸음이다. ‘검열의 가위에 맞서는 연극의 주먹’ 올해는 너로 정했다.

예술의 토대, 검열의 논리

지금 이 시대의 검열 문제는,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덧붙여 예술창작지원을 앞세운 공공성과 관련한 꽤나 복잡한 함수가 되어 버렸다. 연극뿐 아니라 순수예술 분야의 많은 현장 예술가들은 그 존재론적인 특성상 결코 산업이 될 수 없는 창작 활동을 지속하면서, 많은 부분 국공립 보조금으로 작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왔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바로 이 현장의 생태적 문제로 인해, 권력은 어느덧 돈줄을 쥐고 흔들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예술만을 인정하고 독려하려 한다. 이번 페스티벌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직시함으로써 검열의 큰 그림을 바로 보고, 이 시대 예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예술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 사회는 왜 예술을 필요로 하는지 그 논의의 첫 행보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페스티벌의 첫 번째 작품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이러한 사태를 매우 집요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연극 무대에 끌어 들인다. 검열의 주체들이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추적하면서 그 말들에 내재된 정치적 의미를 파고드는 이 작품은, 뉴스와 신문 보도에 등장한 인터뷰 및 증언, 지원기관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식 입장, 국회 청문회의 질문과 답변, 관련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의 언어 등을 온전히 다시 말함으로써 작금의 상황을 비판한다. 이를테면 어느 일간지 기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연극을 만든 게 일반 민간극단이 아닌, 국립극단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라고 썼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문: 만약에 국고로 지원하지 않고 개인의 작품이었다면 검열할 이유는 없지요? 답: 그렇습니다.”라는 문답이 오갔다.

이 캐릭터는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이미 누군가에 의해 뱉어진 말을 재료로 삼는 것만으로, 이 작품은 연극 검열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이 얼마나 희극적이고 부조리했는지 꼬집는다. 배우들은 때로 상황을 리포트하기도 하고, 당시를 재연하기도 하면서 특정 인물을 연기하다가 배우 자신으로 돌아와 관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상호 토론을 이어 나간다. 그런데 그 역할을 연기하기가 여간 녹록치가 않다. 어떤 인물은 대사의 80%가 “예, 동의합니다”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러다보니 지원하면서 동시에 지원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금시초문이고 보고 받지 못한 것이며, 대본대로만 하자면 직원들을 조사도 하고 징계도 하고 칭찬도 하고 격려도 해야 한다. 배우들의 연기 인생에 이토록 큰 시련을 안겨준 이들은 다름 아닌 ㅡ우리 모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ㅡ ‘검열의 주체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연극

이 작품에 붙어 있는 또 하나의 제목 ‘두 개의 국민’은, 한편으로 개개인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것을 두고, 그것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다 치부하고 그들이 정치적 이슈메이킹에 골몰하는 이들이라고 단정 짓는 검열 주체들의 모순을 들추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온갖 말들을 경유해 연극이 멈춰서는 곳은 “국립극단은 국민들의 것입니다”라는 국립극단 연극선언문이다. 그럼으로써 ‘그 국민’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자조적으로 반문해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어째서 <개구리>라는 공연은 ‘그 국민’들의 것이 될 수 없었는지 따져 묻는다. 이 모든 검열 쟁점을 명백히 가시화했던 단초로서 <개구리>라는 공연이 이곳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던 시기, 맞은 편 소극장 판에서 <알리바이 연대기>를 공연하고 있었던 김재엽 연출은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지난 한해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내 자리가 어디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말하자면 지원금의 혜택을 많이 받으면서 활동을 해왔는데, 어느덧 나도 기득권이 되어 있더라. 그런데 제도에 대한 적응력이 커지고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 산발적이고 단발성으로 끝나버리는 논의에 지쳐 떨어지지 않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그것들을 공유하고 우리 방식대로 타개해 나가고 싶다. ‘권리장전’은 그 시작일 뿐이다.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는 6월 9일부터 시작해 무려 5개월간 21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6월 한 달 동안 공연되는 작품은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시작으로, <그러므로 포르노>(공동창작, 김수정 연출, 극단 신세계), <안티고네2016>(부새롬·윤성호 각색, 부새롬 연출, 극단 달나라동백꽃), <해야 된다>(공동창작, 전인철 연출, 극단 돌파구) 네 작품이다. 더불어 이 페스티벌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발언을 위해 풀뿌리 후원으로 공용 예산을 모으고 있다. 후원은 6월 16일까지 이어지며, 후원자에게는 6월 17일부터 관람 가능한 공연 티켓을 증정한다.

[사진: 가림토, 드림플레이테제21 제공]

일시
6월 9일~6월 12일, 목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
장소
연우소극장
작·연출
김재엽
출연
백운철, 손진호, 권민영, 서정식, 정유미, 김우성, 김진성, 박아름, 유종연, 한상완, 김원정, 김세환
문의
010-7732-9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