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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청우 <곁에 있어도 혼자>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94호 2016.06.23
일상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수많은 고정관념에 부딪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자신만의 인식 틀을 만들고는 그 안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생은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합의된 함정과 구멍들로 가득 차 있다. 고정관념 혹은 통념은 비단 사회적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나 자신에...

일상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수많은 고정관념에 부딪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자신만의 인식 틀을 만들고는 그 안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생은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합의된 함정과 구멍들로 가득 차 있다. 고정관념 혹은 통념은 비단 사회적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인식마저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건 이래야하고 저건 저래야해’, 혹은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거야’ 하는 식의 생각을 하는 우리는 유연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인식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복잡하게 꼬인 문제일수록 이 방법은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일단 고정된 인식을 흔들어놓고 나면 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들어설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는 7월 국내 무대에 오르는 일본의 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 <곁에 있어도 혼자>는 바로 이런 인식의 파괴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결혼과 이혼을 소재로 한 이 희곡은 우선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서뜨림으로써 간접적으로 이혼에 대한 필요성(?)마저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허구와 현실 넘나들며 던지는, ‘관계맺기’에 대한 질문들

“히라타 오리자의 스승인 스즈키 타다시의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 워크숍을 계기로 일본에서 몇 년 간 지내게됐어요. 그러던 중 히라타 오리자가 청년단과 함께 만든 <곁에 있어도 혼자>라는 작품을 현지에서 봤습니다. 그땐 일본어를 거의 못알아듣던 시절이었는데 70분간 아주 흥미롭게 봤어요. 말은 몰라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죠.” -이은영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스타일의 진중한 문제의식이 살아 있으면서도 발칙하고 경쾌한 듯한 느낌이 드는 이 대본을 한국 무대에 올릴 이는 이은영 연출가다. 대학로에 이제 막 발을 디딘 이 새내기 연출가는 이번으로 대중에게 두 번째 연출작을 선보이는 셈이다. 극단 청우에 입단한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연습실에서는 강단 있는 리더라는 의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배우의 액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연극적으로 소통되는 지점들을 꼼꼼히 축적해나가는 방식이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과도 어울리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연출가는 “공연할 작품을 찾던 중 이홍이 번역가로부터 세 개 정도 작품을 추천 받았는데 그 중 일본에서 흥미롭게 봤던 공연 <곁에 있어도 혼자>가 대번에 눈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아닌게 아니라 대본이 흥미롭다. 극 중 인물은 갑작스럽게 부부가 된 쇼헤이와 스미에, 20년차 부부인 요시오와 하루코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하룻밤 사이에 부부가 되어 있더라는 쇼헤이와 스미에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쇼헤이의 형인 요시오와 스미에의 언니 하루코는 이혼을 앞둔 자신들을 화해시키고자 둘이 위장 결혼을 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독특한 시선과 감성을 앞세워 경쾌하게 전개되는 이 극은 일종의 부조리극이라고도 볼 수 있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뇌를 자극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세밀한 심리표현이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허구

“관객들이 이야기의 단면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결혼 생활이라는 게 아직 저로서는 미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결혼해서 불행해졌다는 건 각자 자기 입장에서만 해석하니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한 번 더 고민하면 개개인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히라타 오리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결혼이란 건 뭐다’ 하고 관객을 설득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도 상대에 대해서도 자세히 생각해야 하는 게 결혼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요.” -이은영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는 <도쿄노트>, <과학하는 마음> 등으로 이미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연극인이다. 이른바 ‘조용한 연극’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은 보통 극사실주의적 경향을 띤다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이번 연극 <곁에 있어도 혼자>의 경우 표면적으로 보면 이런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 작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재기발랄하다는 첫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장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간 인식의 오류에 대해 세밀하게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언니인 하루코는 동생 스미에의 결혼을 안 믿는다면서도 어느새 잔소리를 시작하고 있다. 하루코는 ‘결혼한다는 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고, 동생 스미에는 ‘그럼 결혼하면 불행해지는 거잖아’라고 대꾸한다. 이에 질새라 하루코는 ‘둘이 하나가 된다는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혼을 앞둔 하루코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대사들, 거짓인 대사들이 곳곳에 포진돼 인물 스스로가 특정한 고정관념에 빠져 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결국 이들 사이 서로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인식의 틀이 갈등상황으로 치닫게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서로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어느 순간 불가능해지는 이유가 사실은 자신의 고정된 인식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어선생, 노인 간병원, 소설가 지망생, 회사원 등의 다양한 직업군도 서로간 인식의 차이, 기대치의 차이를 벌려 놓는데 일조한다. 공연은 마치 이 네 명의 인물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려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진: 극단 청우 제공]

일시
7월 7일~7월 31일 평일 8시,
토 4·7시, 일 3시(화 공연 없음)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작
히라타 오리자
연출
이은영
출연
유성주, 김두봉, 백혜리, 장애실
문의
02-764-7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