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아이디페스티벌 <대한민국 희곡 작가전-불후의 명작>
명작은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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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 고이지 않게 하려면, 묻...
불후(不朽). 사전적으로 영원히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썩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다. 썩는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한 자리에 고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은 한 자리에 고이지 않고 변주되면서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뜻일 것이다.
한 자리에 고이지 않게 하려면,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3회 아이디페스티벌 ‘불후의 명작’ 축제는 20대부터 70대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희곡작가를 선정하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들을 발굴함으로써 ‘불후의 명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오태석(70대), 이윤택(60대), 김명화(50대), 최치언(40대), 김은성(30대), 김세한(20대)의 작품들 중 23개를 선정해서 하루에 한 편씩, 6월 2일부터 26일까지 23일 동안 릴레이 낭독극을 진행했다. 특히 ‘낭독극’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현재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대본을 듣는’ 과정에서 대사를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하는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연극을 연습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태석 작가의 <1980년 5월>을 보기 위해 창작 페스티벌 전용 극장인 ‘소극장 혜화당’에 들어서자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면에 설치된 무대는 객석과의 거리가 가까워 좁은 시야가 오히려 집중을 하게 해 주었다. 무대의 왼쪽에는 방송국의 조정실이 있고, 구석에는 고개를 숙인 채 축 늘어져 있는 마네킹이 의자에 앉아 있다. 군복을 입은 마네킹은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술집이라는 장소답게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다.
곧 무대의 대부분을 차지한 술집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관객들 역시 ‘야누스’에 초대된 손님들이 되어 그들이 술을 마시면서 하는 대화를 듣게 된다. 진지하기 어려운 공간답게 대화 주제는 토종닭을 메뉴로 한 회식, 두꺼비를 먹는 닭, 파상풍에 걸린 아이와 관련된 수기, 전쟁터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성적인 농담, 사주 보기, 카드놀이 등 소모적이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대화들은 비정치적이다. 연극을 하는 인물과 조각가가 나오면서 연극이 주제로 등장할 때도 있지만 마네킹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긴장이 풀어지는 자리인 만큼 생리적인 현상도 빈번하다. 재채기가 멈추지 않고,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린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악수를 하려고 하지만 손이 엇갈리기도 한다. 이는 그들의 대화가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대화들과,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가끔 등장하는 뉴스는 인물들에게 외면당한다. 뉴스와 술집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낭독극에서는 중간 중간에 뉴스 영상을 집어넣음으로써 ‘잘못 잡힌 주파수’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실수로 잘못 잡은 것이지만, 조정실이 마치 주파수를 교란하는 것처럼 보인다. 뉴스(News), 즉 새로운 소식들은 현재 일어난 사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잘못 잡힌 주파수는 ‘이미 지나간 것들’을 불러낸다. 큰 화면으로 보여주는 거리의 시위 장면, 외국 순방 장면, 대통령의 장례식 등의 영상이 술집에서의 대화와 교차되면서 나타날 때 80년 5월의 의미는 ‘야누스’가 된다. 술집에서의 현실이자 역사적인 현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이것은 정치극이 아니다’라는 부제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초연이 광주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1980년 5월’의 의미는 현재의 이미지와 어긋난다. 일상의 시간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이 낭독극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어긋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980년 5월에 ‘야누스’라는 술집에서 모인 사람들의 시답잖은 이야기들은 잘못 맞춰진 주파수를 통해 잘못 나오는 뉴스와 맞물리면서 조종되는 일상을 보여준다.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듯한 술집도 주파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종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줄 달린 인형을 조종하는 주파수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파수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조종당하지 않는 것이 이 낭독극의 성격을 보여준다. 특히 조정실에서 낭독하는 책이 광주를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점에서, ‘1980년 5월’의 의미는 현재로 소환되며 제대로 조종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선 시대의 줄타기 재담이 낭독된다. 재담은 시대와 내용이 모두 ‘1980년 5월’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야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 판의 놀이이자, 그 장소가 머무르는 곳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모였던 인물들은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인물이 문을 닫을 거라는 대사를 하면서 막이 내린다. 술집에 초대된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판을 끝내고 현실로 빠져나온다.
이렇게 이 작품은 광주라는 사건 전에 나타나는 공연을 2016년으로 끌고 들어와 재의미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정치극이 아니다’라는 부제가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표면적으로는 ‘야누스’라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치극과 거리가 멀지만, 뉴스 영상과 낭독되는 책이 정치극의 의미를 움직이게 한다. 특히 낭독되는 책이 <소년이 온다>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지금, 여기에서의 ‘1980년 5월’과 광주를 생각해 보게 한다. 결국 <1980년 5월>이라는 작품도 2016년으로 움직인 것이다. 명작도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일 때 살아 있고, 오래 남게 될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잘 보여준 페스티벌이었다.
[사진: 아이디서포터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