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맨시어터 <데블 인사이드>
내 마음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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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속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처음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는 무너져간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로 인해 그는 자신이 그 어느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임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고립을 확인하는 일과 다름 아니다.
데이빗 린지-어바이어의 <데블 인사이드>는 바로 이 <죄와 벌>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된 희곡이다. 데이빗 린지-어바이어는 지난 2007년 <래빗 홀>이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로, <데블 인사이드>는 그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작품은 산행 중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알고 있던 아버지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을 아들이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기말적 징후가 가득한 이 작품을 극단 맨씨어터가 올 여름 한국에서 초연한다.

기괴한 복수의 여정 그리는 스릴러 코미디
“작가는 세기말을 맞이해 뉴 밀레니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공황 상태에서 이 작품을 썼던 것 같아요. 작품 안에 여섯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전부 다 망상과 집착에 시달리고 있죠. 모두들 말도 안 되게 얽히고설키는 우연 속에 존재하고 있어요. 지금이 2016년이지만 사실 이런 무정부 상태, 쫓기는 듯한 느낌이나 망상과 집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기말은 아니지만 세기말적 공포나 다름 없는 상태인 것 같아서 공연하기에 적당하다 생각했죠.” -우현주 맨씨어터 대표
등장인물은 총 6명이다. 기묘하긴 하나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인물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바로 ‘집착’이다. 슬레이터 부인은 포르말린에 담궈 보관해온 남편의 잘린 발을 아들의 14번째 생일날 아들에게 보여주며 복수에 나설 것을 강요한다. 아들의 학교 러시아 문학선생인 칼의 경우 무자비한 생각과 악몽에 시달리며 누군가를 죽이려 든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화가 릴리는 아버지의 넥타이핀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한다. 평범한 남자 브래드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다른 일을 갈망한다. 열정적이고 즉흥적인 학생 케이틀린은 문학선생 칼에게 빠져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다. 슬레이터 부인의 아들인 진은 그런 케이틀린에게 빠져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슬레이터 부인과 그의 아들인 진을 제외하면 처음에는 아무 관계도 아닌 것 같은 이들은 극이 진행될수록 이리저리 얽히고설킨다. 대부분 우연한 기회에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들만 할 뿐 진정한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하나같이 악몽과 환멸, 집착과 강박 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극 전반의 기괴하고 기묘한 분위기 자체가 이 극의 가이드라인이 되어 준다. 이들이 사는 도시는 일부가 침수되어 있는가 하면 쓰레기가 넘쳐 흐르는 곳이다. 사람을 물어 뜯는 굶주린 개도 돌아다니고 있다. 배경만 보면 처참한 수준의 비극적 상황이지만 각종 사건들이 우연과 과장으로 점철되며 희극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집착이라는 이름의 악마
“각자 처한 상황이나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은 ‘나는 이것이 아니면 행복해지지 않아’라는 전제가 인물들 모두에게 있어요. 복수를 해야 한다거나, 넥타이핀을 찾아야 한다거나, 내 아내와 같이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집착들이 여기서 말하는 ‘내면의 악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집착이 없었던 인물조차도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 내면의 악마를 키워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우현주 맨씨어터 대표
처음에는 복수 따위에 아무 관심도 없던 아들 진마저도 결국에는 무의미한 복수의 길에 나서게 된다는 내용의 이 공연은 특별히 악의 순환성에 주목한다. 누군가가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사이, 내면의 악마는 부지불식 간에 세대를 거쳐 전이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건 끝나지 않는 이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연출을 맡은 김광보는 무대장치를 과감하게 축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본에는 장면 변화가 많은데 그걸 일일이 묘사해 연출하기보다는 연극적인 약속을 통해 해결할 계획이다. 이 때 적극 활용되는 것이 바로 고무밴드다. 무대 3면은 빨간 색으로 처리되고 여기에 또 빨간 고무밴드들이 얼기설기 엮인다. 인물들은 이 밴드들을 자유롭게 통과함으로써 마치 벽면에서 튀어나오고 또 벽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낼 예정이다. 뚜렷하게 입구나 출구가 없는 무대 속, 악의 순환 고리 속에서 돌고 있는 인물 군상들의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세기말적 징후라는 게 꼭 세기말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2016년 오늘에도 사실은 세기말적 징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가령 길거리를 가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일들이 뉴스 상에 오르내리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일상화된 세기말적 징후라고 볼 수 있다. 제작진은 유별나고 특별하게 보이는 게 아닌, 일상 속에서 무심코 툭툭 튀어나오는 세기말적 징후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연을 통해 그 징후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 각각의 내면 속 악마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무대는 기괴한 분위기로 연출되지만 연기는 기괴하게 가는 방식을 탈피하고자 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배우의 연기는 포인트를 명확하게 짚어내고 동작을 절제하는 정도로만 양식화될 예정이다. 인물들의 과도한 집착 속에 불쑥불쑥 드러나는 폭력성은 다름 아닌 소통의 부재에 따른 결과다. 공연팀은 기괴한 복수의 여정을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복수보다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사진: 극단 맨시어터 제공]

- 일시
- 7월 8일~31일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2·6시(월 공연없음)
-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 작
- 데이빗 릿지-어바이어
- 연출
- 김광보
- 출연
- 김태훈, 박호산, 우현주, 정수영, 구도균, 이창훈, 이은
- 문의
- 02-3443-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