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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방 <머리를 내어놓아라>

생태찌개는 달고 막걸리는 시원하니, 거북이는 묻는다

전영지
95호 2016.07.07
여기, 바위인지 거북이인지 모를 무언가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막걸리를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서 있는 무대 위에선, 잘 끓인 생태찌개 냄새가 물씬 나고, 서둘러 따려다 넘쳐버린 막걸리가 관객의 눈앞에서 흘러내린다. 반면, 시선을 끄는 소품이라곤 천장에 끈으로 매달...

여기, 바위인지 거북이인지 모를 무언가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막걸리를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서 있는 무대 위에선, 잘 끓인 생태찌개 냄새가 물씬 나고, 서둘러 따려다 넘쳐버린 막걸리가 관객의 눈앞에서 흘러내린다. 반면, 시선을 끄는 소품이라곤 천장에 끈으로 매달려있는 돌멩이 하나가 유일한데, 그게 무엇인지는 명확치 않다. 공연 <머리를 내어놓아라>는 이 실체가 애매한 바위, 아니 ‘거북이’와 그 실체가 분명하고 생생한 생태찌개와 막걸리, 그 사이에서 진동하는 이씨, 김대리, 건양댁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사연은 이러하다. 의릉 휴관일, 연못 청소를 한다고 이씨와 김대리가 나와 있다. 양복을 빼입은 김대리는 의자에 앉아있고, 장화에, 빨간 장갑까지 갖춰 입은 이씨는 솔질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끊임없이 투덜댄다. 어제도 바빴는데, 곧 연못도 메울 예정이라면서 굳이 쉬는 날 청소를 잡아놓고, 동료애도 연민도 없이 고고하게 팔짱 끼고 앉아있는, 새파랗게 어린 김대리가 못마땅한 것이다. 이렇게 흔하디흔한 갑과 을처럼 옥신각신하던 그들에게 흔하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이씨가 연못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이씨는 그 무언가가 두려움에 머리를 내밀지 못하고 있는 거북이라는데, 김대리의 눈에는 그저 바위일 뿐이다. 여기에 식당 공사를 돕는다고 나와 있던 건양댁까지 합세하면서, 바위/거북이를 둘러싼 실랑이가 시작된다.

이들이 바위다, 거북이다 싸우는 과정에서 ‘거북이’에 대한 정보들이 이어지는데, 이 정보들은 ‘거북이’의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쌓여간다. 이씨와 건양댁은 ‘거북이’에게서 얼마 전 연장근무를 하다 신장 투석할 시기를 놓쳐 숨진 문지기 백씨를 본다. 그러나 ‘거북이’가 소위 ‘갑’의 무지한 횡포 속에 죽어 나가는 ‘을’을 상징하냐 하면, 공연은 그렇게 쉽고 상투적인 해석은 허락하지 않는다. 건양댁이 의릉의 주인, 경종 ‘거북이’ 또한 보았다고 하니 말이다. 결국 ‘거북이’가 되는 조건은 가난이나 비천한 신분이 아니라, 어떤 억울함인 듯하다. 연못을 메우려고 삽차가 들어오자, ‘바위’인지 ‘거북이’인지 ‘백씨’인지 모를 그것을 지키겠다고 이씨와 건양댁이 맞서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 거북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씨가 말한다. “난 목을 쭈욱 뺄 수 있다.” 건양댁도 말한다. “내 등딱지는 단단하다.” 삶의 억울함이 목에 주름을 잡고, 등을 단단하게 하여, ‘거북이’ 되게 하는 듯하다.

이씨와 건양댁은 ‘거북이’를 지키며 여러 계절을 보낸다. 매미 소리가 들리고, 찬 바람도 지나간다. 그 사이, 건양댁은 점차 허기가 진다. 철 따라 도다리쑥국, 수박, 열무국수 등등 먹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생태찌개에 무너진다. 김대리를 연기하는 배우 윤일식이 양은 냄비에 생태찌개를 담아 나오고, 건양댁을 연기하는 배우 박옥출은 손으로 생태와 콩나물을 집어 야무지게 먹는다. 생태도, 콩나물도 식감 살려 잘 익었는지 형태가 살아있고, 씹히는 소리가 아삭하다. 저들이 ‘거북이’라 부르며 저 오랜 시간 지켜온 게 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 생태찌개는 잘 끓인 생태찌개가 분명하다.

그렇게 ‘거북이’는 묻힌다. 모래로 덮인 연못 위에 이씨, 김대리, 건양댁이 다시 올라, 마치 아래에서 무언가 솟아오르는 것같이 구멍이 맺혔다며, 무대 위 돌멩이가 예전에 그 ‘거북이’ 같다며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이들은 이내 막걸리를 기울이며, 춤추고 노래한다. 공연은 여기에서 멈추지만, 아마 이렇게 (‘거북이’ 없이도) 이들의 삶은 지속되고, (연못 없이도) 의릉은 계속 관광객을 맞을 것이다.

혜화동 1번지의 구조상, 객석을 빠져나오려면 무대 위 돌멩이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해서 묻게 된다. 그래서 이게 바위라는 거야, 거북이라는 거야? 그리고 ‘거북이’가 대체 뭐라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등장인물들이 이 돌멩이를 두고 싸우기는 했던 거지? 사실, 공연 내내 배우들이 이 돌멩이 자체를 만진 적은 없다. 이씨와 건양댁을 연기하는 두 배우 ? 배윤범과 박옥출은 ‘거북이’를 들어 올린다 할 때조차, 무대 위 돌멩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들은 돌멩이 주변 허공만을 움켜졌고, 그 허공은 차라리 조명이 바뀔 때마다 그즈음 생기던 돌멩이 그림자에 더 가까웠다. 그 그림자가 ‘거북이’였는지는 알 길 없지만 말이다. 결국, 관객이 보고 있는 무대 위에 실재하는 돌멩이가 무엇인지, 등장인물 중 누구는 바위라 하고, 누구는 거북이라고 하는 그것인지, 아니 그것과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공연은 이렇듯 ‘거북이’는 그 실제(實際)도, 실재(實在)도 애매하다고 텍스트로, 배우들의 연기로, 조명으로 그려낸다.

이렇듯 ‘거북이’는 애매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이씨와 건양댁이 지키고자 했던 ‘백씨’처럼, 한때 중요했고, 그래서 지키려 노력했으나, 놓쳐버렸던, 놓아버렸던 그 어떤 가치라면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씨와 건양댁이 ‘거북이’를 지키며 보내는, 견디는 시간에 대한 묘사는 좀 아쉽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우리가 겪은 불편, 불안은 ‘허기’뿐이 아니며, 친구든, 동료든, 동지든 같이 무언가를 ‘거북이’라 믿었던 사람과 겪었던 갈등 또한, ‘거북이’만큼 복잡하고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대한 풍성한 묘사는 또한, ‘시간’은 ‘거북이’를 보고, 믿고, 지키려는 사람의 편이 아니라는 (짧은 등장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선휘가 연기한) 삽차 기사 박씨의 대사에 대한 설명이자, 이 바위/거북이 실랑이가 이들만의 해프닝이 아니라 이 도시, 우리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이미 관객을 충분히 설득했다 말할 수도 있다. 실제도, 실재도 너무도 분명한 생태찌개와 막걸리로 관객의 시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면서 말이다. 기실, 등장인물들, 특히 건양댁처럼 생태찌개에 침이 고이고, 막걸리에 마른 입술 달싹거린 관객은 자신도 함께 ‘거북이’를 묻었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묻었던 어떤 ‘거북이’를 말이다. 그렇게 공연은 관객과 함께 극장 밖으로 나온다, 수많은 ‘거북이’ 묻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도시로.

[사진: 컬쳐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