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적 <단편소설집>
감각을 엮어 정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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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쓰는 루스와 그녀를 추종하는 제자 리사. 연극의 무대가 되는 소설가 루스의 방은 책들로 가득하고, 그녀의 책상에는 각종 책들과 서류들, 편지들이 쌓여 있다. 이 방에 들어온 리사는 창문을 힘주어 닫고, 책상을 말끔하게 정리해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루스가 원하는 방식의 정리가 아니다. 루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문을 닫고, 어지러운 책상 위에 질서를 갖추고 있으며, 자기 삶의 어느 부분들을 꺼내서 글로 정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연극 <단편소설집>에서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이 절정을 이루는 것은 리사가 루스의 삶을 자신의 소설로 정리하는 때이다. 어느덧 유명 작가가 된 리사는 스승 루스의 삶 가운데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여 장편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건 스승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 연극에서 두 소설가는 서로 다른 호흡을 지니고 있다. 루스는 평생 단편소설만을 집필해왔고, 리사 역시 단편소설집으로 등단했지만 진정한 소설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장편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사는 마침내 자신의 삶에서는 찾을 수 없던 장편소설의 소재를, 눈앞에 보이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보물을 루스에게서 발견한다. 연극은 내내 두 사람의 다른 호흡을 나란히 놓고 대비시킨다. 그리고 실제 무대 위에서는 두 여배우, 전국향(루스)과 김소진(리사)이 서로 다른 호흡으로 숨 쉬고 있다.
연극 <단편소설집>을 이끌어가는 힘은 두 배우의 감각이 대비되고 맞물리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루스 역의 전국향은 많은 양의 대사들을 속도감 있고 정확한 발음에 실어 보낸다. 금속성이 함유되어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이의 접근을 경계하고 스스로의 명확한 기준을 가진 인물의 특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한편 리사 역의 김소진은 특유의 고르게 퍼지는 목소리와 나긋한 톤을 기본으로 한다. 극의 초반에는 자신에 대해 자신감 없는 대학원생의 말투를 위해 과장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마치 펜싱 경기에서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 선수가 맞붙듯, 두 배우는 자신들이 고유하게 지닌 특색과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엎치락뒤치락 대화를 이어간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대비된다. 기다란 홈웨어를 입은 루스는 자신의 방에서 위엄 있으면서도 간결한 동작으로 움직인다. 반면 리사는 루스의 방에 들어온 뒤 시종일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리사는 크고 작은 손놀림으로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자세하게 표현해가면서 루스를 향해 다가간다. 두 사람의 체구 역시 상반되어 움직임의 선과 분위기를 더욱 분명하게 대비시키는 효과를 준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모든 배우는 역할에 따라 수많은 가면을 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적 특성은 매번 무대에 흔적을 남긴다. 특히 이 2인극에서는 두 사람의 고유한 감각이 두드러져 나타난다. 더욱이 국내 초연이므로 배우도 관객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루스와 리사라는 인물과 고스란히 결합한다.
연극 <단편소설집>은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삶을 편집하여 정리해내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엮어내어 정리하는 소설가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연극의 연출은 무대 위의 두 배우를 통해 그들이 가진 고유한 감각적인 특성을 엮어내고, 또 다시 감각들과 역할을 엮어내어 정리했다. 다행히도 이것은 루스가 동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리한 리사의 장편소설이 아니라, 작품마다 완성도에 차이가 있지만 오롯이 리사 자신의 삶을 정리했던 단편소설집에 가깝다.
[사진: K아트플래닛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