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발극장 <코리올라너스>
국가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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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원작 공연이 다시 한 번 무대화된다. 이번엔 상상만발극장이 만드는 <코리올라너스>다. 올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작품들이 올라가고 있지만 <코리올라너스> 공연 소식은 드물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이자 정치극의 범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명작을 무대에서 만나볼 모처럼의 기회인 셈이다.
원작이 그대로 무대화되지는 않는다. 이번 공연을 위해 상상만발극장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동시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재창작했다. 인물 간 관계나 구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근대 이후의 정치와 외교, 사회와 시민개념 등을 적극 반영한 이번 공연에서는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국가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개인의 원칙 혹은 신념이 국가라는 개념 아래 어떤 식으로 훼손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정치 토론회를 극의 중심 형식으로 부각시킬 예정으로, 관객은 여러 가지 정치 현상을 목격하는 시민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광대가 되기를 거부한 코리올라너스
“코리올라너스는 우리가 동의할 수 있건 없건, 한 가지의 원칙과 목표를 비현실적일 정도로 확고하게 지키는 인물입니다. 관점에 따라서 그 원칙에 동의한다면 영웅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괴물로 비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해성 연출가
로마의 엘리트이자 전쟁 영웅이지만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성품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 코리올라너스(코리올라이의 정복자라는 뜻)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180도 달라질 수 있는 인물이다. 로마 최고의 영웅이지만 민중적 가치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는 코리올라너스의 최대 약점은 바로 오만함이다. 하지만 이 오만함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나약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민중도, 자기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민중의 비위를 맞추는 귀족도 모두 우매하다는 코리올라너스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지독한 원칙주의자인 코리올라너스의 가치판단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어찌 보면 이 극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는 고정불변한 성품을 지닌 코리올라너스가 주위의 변모술수와 변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매개체로 기능한다는 게 중요하다. 대중의 호응도를 의식하는 광대가 되길 거부한 코리올라너스의 주위를 맴도는 인물들은 시시각각 대중을 의식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변모하며 자기 이득 취하기에 급급하다. 이 과정에 적극 활용되는 것은 바로 정치 이데올로기다. 원로원 소속인 시시니어스, 민회 소속인 메니니어스, 시민회의 대표인 브루터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코리올라너스 주변의 ‘광대들’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상상만발극장의 연극 <코리올라너스>는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관객은 원형으로 배치된 의자들에 앉아 마치 정치 토론회를 방청하듯 극을 응시하게 된다. 극장 안에 배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는 이 토론회장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선택적으로 포착하고, 이 포착된 모습들은 무대 윗 편을 둥그렇게 감싼 스크린들에 투사될 예정이다. 정치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편집된 이야기들이 대중들에게 생중계되는 식인데 이 같은 설정은 동시대적 관점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서 극 중 로마가 작금의 한국사회에 대한 비유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박 연출가는 “미디어에 기반한 대중정치가 이뤄지는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국가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일 뿐
“국가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 자체가 다층적인 역학이 충돌하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봅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생각하는 관점들이 공존하고 충돌하며 변해가는 (혹은 변하지 않는) 현상을 지켜볼 뿐이지요.” -박해성 연출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그와 관련 없는 모든 문제들에도 안보 논리를 앞세우는 이들,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열두 살 소녀를 자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이들, 한 사람을 때에 따라 영웅으로도 살인자로도 만드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극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러 양상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극이 진행되면서 각자가 주장하는, ‘국가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라는 논리는 사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바뀔 정도로 그 기반이 허약하다.
이 와중에 코리올라너스는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왔던 로마, 즉 국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허상적인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코리올라너스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일부 정치세력이 대중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총리 후보로까지 초대된 코리올라너스를 위협 요소로 간주하고 미디어로 여론을 조종해 코리올라너스를 국경 밖으로 내쫓고자 하는 상황에 이르자 코리올라너스는 격분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테러의 배후로 지목돼온(그러나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볼스키국에 투항해 역으로 로마를 공격해온다. 국가를 아예 없애려는 그의 과격한 시도는 그러나 어머니 볼럼니아의 설득에 의해 막힌다. 완성되지 못한 쿠데타 혹은 전쟁은 결국 코리올라너스를 막다른 길로 내몰게 된다. 국가는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으며 사실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의 합집합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지만, 극 중 국가를 부정하는 자들은 모두 결국 죽음을 당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번 상상만발극장의 연극 <코리올라너스>는 섣불리 모종의 결론을 내리는 대신 정치가들의 이데올로기 활용법과 그에 쉽게 휘둘리곤 하는 대중의 변덕, 또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과정 등을 찬찬히 보여주는 공연이 될 예정이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는 코리올라너스와 그를 대하는 주위 사람들의 태도 변화 양상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대비시키느냐가 극의 완성에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해석과 가치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박 연출가는 “관객들이 특정한 주제와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전달’ 받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목격’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진: 상상만발극장 제공]

- 일시
- 10월 18~30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 장소
- CJ azit 대학로
- 원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재창작·연출
- 박해성
- 출연
- 강명주, 신안진, 선명균, 최요한, 허정도, 김훈만,
변효준, 김현 - 문의
- 070-4412-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