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인어 <인어를 사랑하다>
약육강식 세계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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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세상 속 기이하게 뒤틀린 욕망들을 기묘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일상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되 비유와 상징이라는 프리즘을 덧씌우면서 인간의 본성과 세상사의 흐름 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들이다. 극단 인어의 공연 <인어를 사랑하다> 또한 그렇다. 남녀 간 부적절한 삼각관계를 그리는 듯한 겉모양새를 띄는 이 연극은 극단적인 상황 설정을 중간 중간 투입하며 인간의 탐욕은 어떻게 변형되고 전이되는지를 낱낱이 파헤치기 시작한다. 연극 <변태>로 호평을 받았던 최원석 작가와 오유경 연출가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한기’와 그의 아내 ‘소진’, 그리고 친구 ‘연오’다. 한기는 소진과 연오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되는데 이후 그들에게 의외의 제안을 내놓는다. 소진과 연오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세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공존할 것과 생명이 위독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연오의 장기를 이식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셋이 공동명의로 소유할 수 있음을 덧붙여 제안한다. 연오와 소진은 한기의 재산을 노리고 자신들의 사랑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식 수술 후 한기는 기이한 집착으로 본색을 드러내고 세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본에 기생하다
“대본이 오면 정독을 쭉 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정독이 잘 안되더라고요. 한 다섯 번 정도 읽다가 멈췄다가 하면서 정독을 했죠. 처음에는 고양이 털이 목에 걸린 것처럼 뭔가가 덜컥 걸려 쌓여 있는 듯했는데 여러 번 읽으며 작업을 시작하니 어느 순간 어떤 오물 같은 것이 탁 뱉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겉으로는 불륜드라마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 안에는 계급 간의 약육강식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작가는 그저 대본만 던져주신 후 제가 스스로 그걸 찾아내기까지 어떤 메시지도 말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소화되기까지는 사실 어려웠죠.” -오유경 연출가
한기와 연우, 소진이라는 인물은 친구관계이긴 하나 사실은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있는 사람들이다. 부유한 기업가를 아버지로 둔 한기는 자본가의 계급에 속하며 나머지 두 인물은 서민 계급에 위치한다. 그런데 다른 계급의 인물들이 서로 어울리는 과정에서 모종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극은 자본 권력의 승계자로서 충실히 자기 소임을 다하고 있는 한기, 그리고 한기와의 결혼을 매개로 자본이라는 권력에 기생하는 중인 소진의 현 상태로부터 출발한다. 작가인 연우가 이들 사이에 10년 만에 나타나 끼어들지만 결국 이들의 숙주와 기생 관계를 깨뜨리는 데는 실패한다. 한기는 자신의 아내를 탐내는 이 예술가 친구에게 배려심 넘치게도 자신의 별장을 작업실로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아내와 친구 모두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공연의 중요한 모티프이자 주 무대인 공간은 바로 온실처럼 꾸며진 한기의 별장이다. 식물 마니아인 한기는 특히 식충식물인 사라세니아에 깊이 매료돼 있는 상태다. 실제 연극의 무대도 이 사라세니아를 적극 활용해 꾸며질 예정이다. 극 중 한기는 마치 사육이라도 하듯 연우와 소진을 자기 손아귀에 두었다가 마침내 이들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파괴하려는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과정에서 식충식물의 가공할 번식력이 한기의 거침 없는 욕망을 가시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예정이다.

약육강식 세계 속 공존의 방식
“관객들이 이 인물들에 대해 동의하기보다는 흥미롭고 독특하고 이상하다고 여겼으면 합니다. ‘인물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흥미를 엮어서 장면들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대본 중에 꼭 들렸으면 하는 대사들은 놓치지 않고 가고 싶어요. ‘나의 질서 속에서 공존이 이뤄지는 것이지 평등한 가운데 공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의 한기의 대사라든가 ‘먹다가 죽기도 해?’라는 소진의 대사 같은 것들이요. 관객들이 이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 속 여러 행태들을 목격하고 스스로 ‘이것이 현실인가, 현실이 아닌가’ 하는 혼돈을 느끼며 이 공연을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유경 연출가
인물들은 극이 진행될수록 비정상적인 행태들을 보이며 어느 순간 납득 가능한 수준을 훌쩍 넘어서기 시작한다. 연출가는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기는 쉽지 않은 인물들”이라고 설명했다. 현학적인 대사와 예상을 벗어나는 리액션들이 쌓여가면서 관객들은 아마도 미궁에 빠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본에 언급된 여러 가지 사실적인 무대 설정을 생략하고 온실 부분만 부각시킨 가운데 나머지 무대의 빈 부분들을 채우는 것은 배우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인물 구축의 논리성, 행동의 인과관계를 일부러 제거한 상태에서 예측가능하지 않은 리액션들로 무대를 꾸미는 것이 바로 이번 공연에서 배우들이 맡은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극의 내용이 사실적인 줄거리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속 무언가에 대한 언급으로 받아들여지게 한다는 계산이다. 현재 출연배우들은 논리적이지 않은 다른 계기들, 이를테면 빛이나 소리 같은 다른 감각들을 스스로의 말과 행동의 동기로 삼으면서 공연의 색다른 결을 만들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무대에서 빚어지는 기이하고 변태적이며 가학적인 약육강식 세계에 대한 책임소재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공연팀은 이번 작품 <인어를 사랑하다>를 통해 세계가 이렇게 뒤틀리고 왜곡된 것은 비단 어느 한 계급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작가 연우가 첫 시작을 열었지만 차차 기괴한 결말로 치달으며 완성되어 가는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결국 이 세계 또한 연우와 한기, 소진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이 연극의 관건은 오로지 탐욕만이 모든 의사결정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이 극의 구조를 얼마만큼 역설적이고도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극단 인어 제공]

- 일시
- 11월 8~30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 장소
-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 작
- 최원석
- 연출
- 오유경
- 출연
- 양동탁, 한규남, 송인성
- 문의
- 1566-5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