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아리랑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도망갈 수 없어서 현실(現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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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미쳐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세상이다. 1980년, 작가 이청준이 만들어낸 조만득 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스스로를 회장님이라 칭하며 빈 종이에 금액을 적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몸이 불편한 늙은 어머니도 기억에서 사라졌고,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까 근근이 꾸려가던 이발소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패악을 부리던 동생에게도 벌써 수표 한 장 적어주고 왔으니, 그 또한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병원에서야 그깟 가짜 돈 좀 펑펑 쓰기로서니 누굴 해할 일도 없었고, 세상은 참으로 단순하고도 명쾌한 곳임에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왜 작가는 조만득 씨가 살아내야 할 삶의 진실과 그 삶을 구성하고 있는 여기의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그 조만득 씨가, 긴긴 세월을 건너 건너 2016년 오늘의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창단 30주년, 그때 그 공연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 극단 아리랑이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를 다시 공연한다. 1995년 서울연극제에서 초연되었던 이 작품은 연극적 특성을 십분 살려 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재창작하면서도, 다양한 무대 문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과 평단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영화 <서편제>의 원작자 이청준의 소설을 주연 배우 김명곤이 각색, 연출하면서 두 예술가의 만남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고, 연극을 통해 시대의 아픔과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자 했던 극단 아리랑의 시도는 당대의 관객들과 깊이 공명할 만한 시대적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연극은 잦은 장면 전환에 맞춰 무대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면서도, 움직임과 소리 등 연희적 요소를 구현하는 데 있어 우리 전통의 맛과 멋에 장르를 넘나드는 재료들을 흥미롭게 엮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리랑의 배우들이 한 무대에 모여 오늘의 관객을 만나려고 한다.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요?
원작 소설 「조만득 씨」는 정신병원에 맡겨진 조만득과 그를 치료하려는 의사,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간호사를 중심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망각하려는 힘과 그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려는 힘의 충돌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무겁게 질문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담담한 필치로, 동네에서도 소문난 효자에 사람 좋기로 유명했던 조만득이라는 인물이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견뎌야했던 삶의 무게, 그 비극의 원인을 무덤덤하게 추적해나간다. 의사는 그런 조만득을 환자로 맞이해,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일방적인 치료 의지와 그러면서도 혹여나 그 결과가 더 큰 재앙을 불러 오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환자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삶은, 바로 그 양가적인 심리, 두 얼굴의 진동하는 궤적 어딘가에 놓여 있다.
이와 비교해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병원의 여러 환자들을 무대로 소환해 사회의 각종 병리적 현상들을 진단하고 그로부터 우리의 현실을 되비춰 보여주고자 한다. 각자의 이유로 자기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여기, 정신병동의 휴게실에 모여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는 놀이를 하고 있다. 헌데 한 편의 ‘시’를 낭송해 ‘주님의 음성’을 사겠다는 청년이 있는 바로 그 ‘마술가게’에 들어선 조만득 씨가 간호사에게 어머니를 팔고 싶다고 말한다.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었던 현실, 그리하여 돌아가게 되었지만 결국엔 그 현실을 정말로 없애버리길 선택한 사내, 연극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구원하고자 했던 조만득 씨를 무대 한가운데 세워두고 빙빙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이거면 되겠어요, 조만득 씨? 백만 원? 천만 원? 아니면 억? 억!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
1970년대 사회상을 반영한 1980년의 원작, 1995년의 연극 무대, 그리고 초연 이후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난 2016년 한국의 현실. 이 작품은 그 어마어마한 시간의 간극만으로 이미, 결코 간단치 않은 무수히 섬세한 층위의 질문을 쌓아나간다. 작가가 폭로하고자 했던 ‘압살적인 삶의 무게’는 지금 이 시대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을까. 백지 몇 장에 펜 한번 휘둘러대는 것만으로 마음껏 돈만 찍어낼 수 있다면 진정 괜찮은 걸까.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고, 현실에 대한 복수가 결코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한 작품은 더 나아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예술의 진리는 무엇인가, 라는 매우 근본적인 물음 앞에 우리를 불러 세운다. 이제 오늘의 관객들이 묻고 극단 아리랑의 30년이 대답할 차례다.
[사진: 극단 아리랑 제공]

- 일시·장소
- 10월 20~23일, 평일 8시, 주말 3시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10월 27일~11월 6일 평일 8시, 주말 3시 학전블루소극장 - 원작
- 이청준
- 대본·연출
- 김명곤
- 출연
- 한동규, 고동업, 김중기, 이승비, 윤혜영, 이경주, 김동순, 이경훈, 김현준, 김은주, 이정윤
- 문의
- 741-5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