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공동체 아르케 <피크닉>
40분, 촌철살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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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극장 안에 약간의 흙먼지가 오른다. 비어있는 공간이 주르륵 흐르는 작은 돌들의 소리로 요란하다. 이윽고 등장한 열과 오를 맞춘 군화의 행진이 여기가 전쟁터임을 감각적으로 주지시킨다. 연출은 의문의 사이가 길어지는 틈을 주지 않으며 총소리로, 쓰러지는 사람들의 꺼져가는 그림자로 다시 한 번 완벽히 시공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배우들과 함께한 김옥란 연출의 <피크닉>은 ‘2016 D-FESTA 대학로소극장축제 전국단편극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올라갔다. 말 그대로 단편극들의 모임인 만큼 대부분의 작품들은 2~4개의 작품이 일반적인 극 한 편의 러닝타임을 공유하며 진행되는 형식으로, <피크닉> 역시 40분 남짓한 시간으로 상연되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시간이 짧아서 모자라거나 이해 불가한 아쉬움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시간과 공간의 통제는 드라마투르그로서 작품을 섭렵한 김옥란 연출의 깔끔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특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피크닉>은 스페인 출신 프랑스 작가인 페르난도 아라발의 1959년 작 「전쟁터의 산책(Picnic on the Battlefield)」을 바탕으로 한다. 아라발의 작품은 지역적으로 동맥을 가지는 칼데론의 환상 문학적인 요소와 로르카의 그로테스크함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동시에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와 같은 알 수 없는 말들이 교차하며 만드는 아이러니도 가진다. 현실을 비트는 것, 다른 관점에서 독설을 날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소 짧은 러닝타임 40분은 그마저도 - 의도 되었든 의도 되지 않았든 간에 - 부조리극을 표현하기에 어쩌면 적절한 장치인 셈이다. 시종 무거운 분위기로 관객에게 부담스러운 압력을 가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아이러니와 웃음 그리고 그로테스크 등이 함께 들어있는 이 작품은 게릴라 같았다. 강물에 띄우는 물수제비처럼 도도한 흐름에 파문을 일으키는 방법. 머릿속에 작은 전구를 번쩍 켜는 방법. 그것이 순간이어서 비록 사라질지라도 현실이 지금과 같다면, 적절한 시도임에 틀림없었다.

연극 <피크닉>의 미덕 중 하나는 생각과 판단의 근거를 관객에게 넘겨주되 급하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쟁 통에 자녀의 근무지에 느닷없이 등장해 피크닉을 벌이는 부모로부터 극은 전개된다. 아무리 고요해도 전쟁터는 전쟁터라,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한복판에서 현명함을 놓쳐버린 것처럼,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은 걱정과 웃음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무언가 부조화된 야릇한 상황. 살짝 비틀린 상황의 현재. 이러한 두 가지의 감정들은 무대 위에서 어느 한쪽이 눈에 띄게 넘치지 않도록 적절히 계량되어 연출되어있다. 피크닉을 온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지만 즉각적으로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이 무대 위에서, 한 장면에 의해서 판결 내려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살풋 고개가 갸우뚱하게 돌아갈지언정 어느 한 쪽을 외면하여 등 돌리게 하지 않는다. 이 후에 등장하는 적군과 아군이 같은 생각, 행동과 말을 함으로써 피아를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 생명을 살려야하는 의무병들이지만 죽어간 시체에 수집, 집착하는 태도 등이 판단의 근거로서 조금씩 차곡차곡 쌓이게 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부조리와 부조화의 감정을 그대로, 점진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관객의 판단을 존중하며 또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작품은 단편이라는 형식의 빠른 전개에 맞추어 많은 은유들을 소외되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선택적으로 노출시킨다. 피크닉이라는 설정도, 전쟁터라는 배경 자체마저도 은유인 것처럼 보이는 넘쳐나는 원작의 요소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주제를 하나로 그러모으는데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 이에, 작품은 피크닉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과 두 사람의 동질성에 초점을 맞춘 은유를 선택적으로 꼼꼼히 연결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외부적인 존재인 의무병들의 등장은 축소하여, 작품의 주제와 좀 더 가까운 지뽀와 자뽀의 이야기를 좀 더 잘 드러나게 한다. 시선을 확장시키지 않고, 오롯이 등장하는 두 주체 간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로써 조화의 당위성을 아이러니하게 고발하는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는 강조된다.
포탄소리. 폭격.
총소리와 함께 평화와 행복으로만 보였던 전쟁터는 다시 죽음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 숨 한 번 내쉬는 사이 다시 현실을 인지하게 된다. 첫 장면에서 마지막까지. ‘Copmpact’한 단편의 시간 속에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상황들을 고스란히, 정확하게 챙겨 넣으며 극은 현실의 ‘Impact’를 가진다. 아이러니한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더 아이러니 한 것은 1959년의 작품의 오래 된 소재가 여전히 우리의 현실에도 유효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극의 끝에는 꼬리가 긴 생각과 여운이 남는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 현실의 우리에게까지 스미고 전이될 수 있는 연극의 매력을 짧은 작품 <피크닉>이 보이고 있다.
[사진: 창작공동체 아르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