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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국립극단 <로베르토 쥬코>

나는, 발바닥인 것 같아

김소희
103호 2016.11.03
장면의 기억은 쓸쓸함으로 오롯이 박히고, 박힌 작은 틈 사이로 물기가 배어나온다. 부모님, 형사, 아이를 죽인 흉악한 ‘연쇄살인마’가 길을 잃어 성난 ‘코뿔소’가 되는 생경함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얼굴의 세포는 뻣뻣이 굳는다. 시각적 쾌락을 주며 떨어지는 검은 조각의 불행에 깔려 죽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

장면의 기억은 쓸쓸함으로 오롯이 박히고, 박힌 작은 틈 사이로 물기가 배어나온다. 부모님, 형사, 아이를 죽인 흉악한 ‘연쇄살인마’가 길을 잃어 성난 ‘코뿔소’가 되는 생경함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얼굴의 세포는 뻣뻣이 굳는다. 시각적 쾌락을 주며 떨어지는 검은 조각의 불행에 깔려 죽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불행의 조각들이 연극 무대의 삼팔선 붕괴와 함께 현실로 밀려오게 될 때, 엄습해오는 아픈 바람은 누구의 것일까. 어느 누군가에게는 병아리, 또 다른 이에게는 꾀꼬리로, 타인에 의해 정의되고 결국 그들의 안녕을 위해 옷 벗게 된 소녀의 날갯짓일까. 혹은 한 평생을 보내온 지하철역에게 배신당해 살인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먼 노인의 한숨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름을 불러준 소녀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말을 꺼내기 위해 입 벌린 틈으로 나오는 입김일까.

국립극단의 <로베르토 쥬코>는 무대연출이 연결성 없어 보이는 장면들을 이어주는 붉은 실, 개연성의 역할을 했다고 감히 말해본다. 지금 서있는 공간이 감옥의 내부인지 외부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안으로 둥근 모호한 구조물을 이용하여 수감자들만큼 비인간적인 기형적 세태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각 장면들은 그 안에서 일상처럼 담담하게 벌어지는, 구역질나는 상황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그리고 그 속에 깔린 낙엽, 먼지, 화산재, 다양한 불행의 이름, 그것은 깨진 소중한 조각상, 도망의 옷가지, 맥주의 알코올냄새와 한데 얽혀 감각을 더해 커져가고, 그 위를 또 다른 불행이 떨어져 쌓이고 덮는다. 마치 가을날 길거리에 터져버린 은행의 악취가 더해져 코가 마비되듯이. 상상되는 그들이 폭력에 익숙해져왔던 과정.

또 꽤 오랜 시간 관객석에는 불이 켜지고 경찰은 돌아다니며 차키를 가지고 있냐고 물으며 무대를 계단 아래까지 확대한다. 일촉즉발의 인질극을 보면서 코미디를 보듯 서로 아웅다웅하는 다른 등장인물들, 관객들은 그 속에서 사태를 재밌다 는 듯이 웃으며 보고만 있는 방관자 1, 2, 3… 역을 담당하게 된다. 이것으로 무대 위 그들과 심리적 거리를 비약적으로 줄여 이어지는 쥬코의 살인에 생생한 충격을 받는다. 방관하는 사이 눈앞에서 반짝 벌어진 살인사건, 총소리에 비명횡사한 웃음소리, 아, 내가, 우리가, 저 모순덩어리에 한 조각임을 깨닫는 찰나에 변하는 공기의 흐름. 모든 연출들이 보는 이를 아이 꾀어내듯 감각적으로 자극하고 완급을 조절하며 현실을 보도록, 고개를 단단히 붙든다.

그 속에서 로베르토 쥬코 역의 백성광 배우와 소녀의 언니 역의 우정원 배우의 연기에 유독 이런 맥락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설득력을 느꼈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캐릭터의 그림자와 제한이 없는 듯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몸짓 때문일까. 두 배우의 장면에서 연출에 대한 궁금증이 나름의 의미를 찾아갔다.

사실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도심 이곳저곳을 누비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흉악한 범죄를 일삼는’ 쥬코를 기대하고 간다면 오산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의 암담함은 그의 범죄들을 특별하지 않게 같은 참담함으로 뒤섞는다. 하지만 주류에서 소외되어 이름을 잃게 된 사람들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쥬코’라는 그들과 분리된 어쩔 수 없이 빛나는 상징을 가진다. 맥락 없는 모든 몸짓과 자기암시 같은 대사들의 유일한 이유, 존재를 잊어버린 사람들과 섞일 수 없었던 까닭일 것이다. 갑자기 등장한 한 할아버지는 빛을 잃어 방황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쥬코는 그를 죽이지 않고 공감한다. 태양의 앞에서 바람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이 구태여 개연성을 취하지 않은 이유를 깨닫는다. 이름 없는 이들과 닮아 있는 내가 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음을 깨닫는다.

비주류로부터 파생된 다른 반대편, 모두의 비주류. 부정당한 자신을 투명하게, 또 희미하게 만들려고 했던 그를 붙잡아 채도를 선물한 불쌍한 어린소녀에게 감사를. 인간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감옥을 매번 탈출하는. 인간이라는 핑계에 가둘 수 없는 완성형의 존재. 낯선 터전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들이받는 코뿔소를 과연 절대 악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나는 옆구리나 심장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
너의 안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고. 뜨거움이 모자랄 때마다 나는, 발바닥인 것 같아.
- 추위에 대하여, 이성미 中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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