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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사개탐사 <피카소 훔치기>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예술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103호 2016.11.03
2억 달러짜리 피카소의 작품이 사라졌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대개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도대체 감히 누가 이 비싼 그림을 훔쳐간 것인가?’ 하지만 연극 <피카소 훔치기>는 이런 ‘평범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 색다른 질문들을 던진다. ‘2억 달러라는 피카소 그림의 가격은 대체 누가 매긴 ...

2억 달러짜리 피카소의 작품이 사라졌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대개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도대체 감히 누가 이 비싼 그림을 훔쳐간 것인가?’ 하지만 연극 <피카소 훔치기>는 이런 ‘평범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 색다른 질문들을 던진다. ‘2억 달러라는 피카소 그림의 가격은 대체 누가 매긴 것인가?’ ‘2억 달러는 과연 적정한 가격인가?’

<피카소 훔치기>는 2015년 유진 오닐 재단의 ‘국내 희곡 컨퍼런스(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에서 최종 선정된 59개 희곡 중 하나다. 약 8개월 동안 낭곡과 심의, 수정을 거쳐 그 해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됐고, 올해 1월 미국 켄사스 유니콘 극장에서 초연돼 호평을 받았다. 따끈따끈한 신작을 국내 무대에서 선보이는 이들은 바로 극단 사개탐사다. <그 집 여자>, <억울한 여자>, <타바스코> 등을 선보이며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 천착해온 이 극단의 박혜선 연출이 다시 한 번 짜임새 있는 소극장 연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피카소 그림을 찾아서

“극 속 인물들은 예술가 집안사람들이라 생각하는 방식이 굉장히 색다르죠. 예술가이기 때문에 각자가 품고 있는 예술적 지향점이 있거든요. 낙오된 근대 예술가인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화가였다가 변호사가 된 아들은 아들대로 다 달라요. 예술가이자 가족인 상태에서 이상향들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부재하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근데 저는 모든 가족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생활패턴 같은 것들이 사실 동일시되기 힘들거든요. 자녀들이 자라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삶의 지향점들을 만들잖아요. 그러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살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여기 등장하는 가족은 예술가들이기 때문에 독특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반 가족과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비슷하죠.” -박혜선 연출가

<피카소 훔치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한 예술가 집안사람들이다. 하나같이 예술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생각처럼 그리 아름답고 멋있는 모습들은 아니다. 모조품을 그리던 화가였지만 이제는 변호사가 된 아들, 경찰에 쫓겨 가며 길거리 예술가로 활동하는 쌍둥이 누나, 원로 화백이지만 퇴물 취급을 받는 아버지, 예술에 대한 로망에 사로잡혀 있는 어머니가 이 극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가장 이질적인 인물, 디트로이트 미술관 관장이 등장해 사라진 피카소 그림의 행방을 찾는다.

이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은 미국 디트로이트다. 디트로이트는 산업화의 열기가 지나간 지 한참인, 폐허의 도시로 그려진다. 서울로 치면 성수동이나 문래동처럼, 한때 번영했다가 지금은 버려진 공간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라고 박혜선 연출가는 설명했다. 극 속 퇴물이 된 아버지 오토와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는 동네다. 집 자체도 이 오래된 도시와 닮은 모습으로 연출될 예정이다.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기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낡은 공간이 이들 가족의 보금자리다.

어찌 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이 무대가 활기를 띠는 것은 오로지 예술가 가족 특유의 에너지 덕분이다. 제1회 오노 요코 상 수상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4년 만에 변호사가 되어 다시 집을 찾은 아들, 예술을 거리에서도 만끽할 수 있도록 하려는 딸, 이들 각각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는 각자 엉뚱하지만 사랑스럽고 한편으로는 뭉클하게,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 거리 예술가인 딸 캐시의 바람처럼 이 폐허 같은 도시도 예술가들이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수 있을까. 작품은 이 대목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예술관으로 갈등하는 듯 보이지만 강력한 공통점이 존재하고, 작품은 바로 이 대목에 주목하고 또 기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이란 바로 자본주의에 대항하려는 태도다.

예술 이야기이자 가족 이야기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고립돼 있고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개성이 살아나면서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죠. 이들은 어떻게든 서로를 묶어서 가족이라는 구성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연속됩니다. 이들은 예술적 관점의 충돌로 이런 일을 겪지만 일반 가족으로 봤을 때 사실 마음 속 의식만 다를 뿐이지 모양새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스포일링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사랑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진정성 있는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게 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혜선 연출가

<피카소 훔치기>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예술이 과연 이 시대에서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미술작품은 갤러리에 가야 제대로 볼 수 있고, 그림에는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화가는 수상에 목말라하는 오늘날 예술 현실의 아이러니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일면 희극적인 이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해 과연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또한 종종 갈등을 빚곤 하는 가족관계에 대한 힌트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박혜선 연출가는 “대외적으로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진실한 감정을 나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세상을 볼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희곡의 결말은 참으로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어찌 보면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 즉 사랑과 자기 확신, 자기 관점과 개성 같은 아주 오래된 가치들에
<피카소 훔치기>는 주목하고 있다.

[사진: 극단 사개탐사 제공]

일시
11월 5~13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4시, 월 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
윌리엄 미조리 다운스
연출
박혜선
출연
홍원기, 정재은, 김수현, 김주완, 이봉련
문의
010-2069-7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