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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프로젝트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우리는 이렇게 이 시대를 견딘다

김슬기_공연저술가
103호 2016.11.03
이 연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저 실제 있었던 사실을, 그와 관련된 정보만을 전달하려고 하는데도, 그 기록을 옮기는 일 자체가 매우 무겁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공연되었을 때, 일간지 『가디언』은 이것이 정의와 복수, 용서의 연극이라고 썼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연극의 소재가 될 법한 강력한 ...

이 연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저 실제 있었던 사실을, 그와 관련된 정보만을 전달하려고 하는데도, 그 기록을 옮기는 일 자체가 매우 무겁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공연되었을 때, 일간지 『가디언』은 이것이 정의와 복수, 용서의 연극이라고 썼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연극의 소재가 될 법한 강력한 드라마라고 하기엔 너무 가깝다. 그렇다면 다시, 원작 희곡 말고 양손프로젝트의 신작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자. 여기, 한 순간의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남자가 있다. 이 연극은 그 남자가 관통하고 있는 매 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니, 오히려 이 연극은 매 순간 그 남자가 겪어내고 있는 현실 그 자체로 존재하려고 한다. 배우도 관객도 그 비극과 함께 있고, 이것은 분명 연극이지만 실재이고, 실재이면서도 그저 보고 듣고 결국 잊게 되는 그런 재앙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다 함께 그것을 살아내고 있으므로. 두산아트센터의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양손프로젝트의 신작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는 그런 연극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02년 7월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 위버링엔의 상공에서 비행기 두 대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모스크바를 출발해 바르셀로나로 향하던 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승무원과 승객 전원이 사망했고, 한 남자가 아내와 두 아이를 잃었다. 건축가였던 남자는 바르셀로나에서 일하던 중 소식을 듣고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수색 작업에 참여했고, 추락할 때 나무에 걸려 손상이 전혀 없는 딸아이의 시신을 직접 찾아냈다. 하지만 비행기 충돌에 책임이 있던 관제센터의 직원은 무혐의로 풀려났고, 항공사 측은 남자에게 피해 보상금을 제시해왔다. 사고 후 2년간 가족들의 무덤가를 떠나지 못했던 남자는 결국 관제센터 직원의 집을 찾아가 그를 수차례 칼로 찔렀고 살인죄로 수감되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가 정신적인 문제로 복역 기간을 다 채울 수 없다고 판단해 2년여 만에 남자를 고국으로 돌려보냈고, 러시아 행정구역의 소수민족인 오세티야 사람들은 그를 열렬한 환호로 맞이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오세티야의 건설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

원작은 남자를 중심으로 다른 한 배우가 여러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며 그에게 벌어진 일들을 추적해 들어가는 구성을 취한다. 희곡은 남자가 가족들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사고 현장에서부터 시작해, 마지막에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가 가족들을 남겨두고 홀로 떠나게 된 배경을 들춰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작가는 관객들이 거리를 두고 이 남자를 지켜보게 만들면서 여러 각도에서 그의 심리나 동기를 유추하고 판단해볼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연습실을 방문했을 때 박지혜 연출과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세 배우는 둥그렇게 의자를 둘러놓은 좁은 공간 안에서 몇 가지 장면들을 두고 그것을 덜어내는 것이 맞는지, 혹은 어느 장면 사이에 배치하는 것이 좋을지, 이미 없애기로 한 인물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효과적일지, 왜 그래야 하는지, 여러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양손프로젝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그들만의 접근법으로 풀어내면서도 원작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려는 듯 보여 박지혜 연출에게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고통을 함께 하는 것

지금 우리는 사회 전체가 공동체적으로 이런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니, 만들면서도 하나하나가 다 너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어떤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관객을 만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는데, 원작을 따라가다 보면 이 인물이 겪는 일들에 어떤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리게 되더라. 그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을 믿고 온전히 인물과 함께 그것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인물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극 중에도 자신에게 삶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상태였고 결국 복수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인물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그것이 이 사람에게 매우 양가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 수 있고, 우리 연극에서도 그것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판단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연극을 만들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우리가 이 인물의 고통을 결코 온전히 체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의 괴로운 이야기로서 그 고통의 감정을 소비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굉장히 민감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만든 작품이다. 지금은 이 인물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고 있고, 그런데 안 되는 것은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을 촘촘히 따라가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 무대 구조도 배우들이 제안한 건데, 그저 있었던 일을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좁은 원형 무대라 조금만 움직이고 시선을 돌려도 에너지가 크게 열리면서 그것이 전체 공간으로 쉽게 퍼져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다.

연극에는 무대디자이너 여신동이 미술로 참여해 양손프로젝트와 함께 극의 전반적인 호흡과 톤을 맞춘다. 배우들의 눈길을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만으로 극장의 온도가 달라지는 듯싶다. 그리고 남자의 이야기, 그것은 마치 나에게 꼭 하고 싶었던 고백인 것 마냥 폐부를 찌르며 밀려들어왔다가 당신과 나 사이 그 공간 안에 고요히 머물러 있다. 극장 밖 현실이 말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연극은 이렇게 조심조심 진짜 현실을 쌓아나간다. 이 시대를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면서.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일시
11월 8~27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3시, 월 쉼
(11월 23일 수요일 3시8시)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
매튜 윌킨슨
연출
박지혜
출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문의
708-5001